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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평점 :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매우 특별한 책인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두 가지 반전 때문이에요. 하나는 저자 잭 홀런드가 남성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끔찍한 주제와는 상반된 감동을 준다는 점이에요.
처음엔 이러한 책을 남성이 썼다는 사실 자체에 놀랐다면 그다음은 저자의 딸이 쓴 소개글을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뭉클했어요. 아버지와 딸이 함께 했던 애정 어린 추억 속에서 이 책의 탄생 비화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는 2002년부터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집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주제는 열띤 대화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아버지가 진행 중인 작업에 관해 말하면
다른 남자들은 흔히 그가 여성 혐오를 변호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추측하는 반응을 보여서
아버지를 놀라게 했다. ... 이에 대한 아버지의 대처는 간단했다.
그는 "왜 안 되죠, 여성 혐오도 남자가 발명하지 않았습니다까?"라고 말하곤 했다.
... 아버지는 원고를 다 쓰고 한 달이 지난 2004년 3월에 암 선고를 받았고, 그 해 5월에 ... 돌아가셨다.
질환과 치료 때문에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아버지는 책에 몰두했고 병원 침대에 있으면서도
마지막 수정 작업을 이어나갔다.
...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아버지와 나는 단둘이 맨해튼 병원의 한 환자 휴게실에 앉아서
원고를 검토했다. 나는 원고를 소리 내서 읽었고 아버지는 내가 바꾸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 그 순간은 소중했고 추억이 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에는 마치 우리를 사로잡은 조용한 과업이 아버지가 앓는 질환보다 중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암 병동을 둘러싼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0-12p)
저자 잭 홀런드가 쓴 원고는 사후에 아내의 끈질긴 노력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니 여성 혐오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가진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만약 저자의 이야기를 모른 채 이 책을 읽었더라면 분노의 감정에 빠져서 중요한 균형감을 놓쳤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자는 기원 전 8세기 무렵에 처음 등장한 판도라 신화부터 신화, 종교, 철학, 문학 등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력 현장까지 추적하면서 여성 혐오의 역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며, 또한 뿌리 깊게 자리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이라 현실이 아닌 지옥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을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것은 단 하나의 목적 때문이에요. 여성 혐오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깨부수는 일.
저자의 말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혐오는 억압과 통제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그걸 없애는 노력도 당연히 남성이 해야 할 일이에요. 인류의 역사에서 차별과 혐오는 수많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고, 이는 분명 반인륜적인 행위였어요. 여성을 비하하거나 반대로 신성시하는 것은 모두 비인간화 작업일 뿐이에요. 여성 혐오야말로 인간이 가장 혐오해야 할 주제일 거예요. 인간이라면 인간다운 본성을 되찾아야 해요.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자의 생애 마지막 원고가 인간다운 투쟁이라는 점에서 큰 감동과 각성의 계기가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