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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수많은 말들로 둘러싸인 채 지나다보면 투두둑 의미 없이 쌓이기만 할 때가 있어요.
말, 말, 말... 스쳐가는 소음처럼, 쌓이는 먼지처럼 느껴져서 한동안 말 자체가 싫었던 적이 있어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까... 왠지 말 때문이라고 탓했는데 말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사람 간의 관계에서 말은 곧 마음의 표현이니까, 그 마음이 어둡거나 비뚤어지면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워요, 마음도 말도...
너였다. 지금껏 내가 만난 최고의 문장은.
나는 오늘도 너라는 낱말에 밑줄을 긋는다.
너라는 말에는 다정이 있어서, 진심이 있어서,
쉬어갈 자리가 있어서, 차별이 없어서,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나는 너를 수집했고 너에게 온전히 물들었다.
- 프롤로그 첫 문장... (4p)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는 림태주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제목이 달달해서 끌렸는데 역시나 저자는 시인이었네요. 프롤로그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 '아하, 이것이 시인의 마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누구나 끄적끄적 글을 쓸 수는 있으나 시는 그냥 글과는 다른 것 같아요. 우리가 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마음이 담긴 시적 언어뿐이에요. 그래서 시인은 시집을 출간한 사람만이 아니라 별처럼 반짝이는 사랑, 그리움, 온갖 감정들이 스며든 언어로 노래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저자는 이 책 속에 말의 빛과 어둠과 열에 관한 글들을 담았다고 이야기하네요. 울고 웃는 것들이 모두 말의 분비물이며, 시인의 글들은 뭔가 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언어의 화학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서서히 익어가는 발효음식처럼 시인의 언어도 상당 기간 가슴속에서 발효되고 숙성된 말들이라는 거죠. 특히 사랑의 고백은 사랑이라는 마음의 화학작용이 발열반응을 일으켜 진지하고 잘 익은 언어들로 표현될 때 강렬한 떨림과 울림을 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은 "사랑해."라는 말이 공허한 거짓말인 경우가 있다고 해요. 설렘도 없고 눈빛도 흔들리는데 입에서만 사랑한다고 떠드는 건 거짓말이면서 지독한 연민이라고요. 아직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미련인 거죠.
가슴보다 말의 속도가 더 빠를 때 말에게 경고해야 한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너의 영혼이 뒤처질 수 있으니."
나는 이 잠언에 덧붙여 나의 말에게 타이른다.
"너무 빨리 말하지 마라. 뒤늦게 도착한 너의 영혼이 진짜 할 말을 잊게 될 수 있으니." (110p)
말의 홍수에 휩쓸리기 전에 튼튼한 동아줄을 잘 잡은 것 같아요. 세심하게 감정을 돌보고 소중하게 언어를 담아낼 줄 아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이 되네요.
시인은 우리가 일생 동안 내뱉는 말이 삶과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면서, 자신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네요. 사는 동안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될 수 있고, 나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다고요.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는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와 나를 만드는 거라고요. 타인이 바라보는 색깔이 아니라 내가 칠하는 색깔이 온전히 나이며, 내가 정의하는 언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말한 색깔로 불리고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에겐 자신만의 언어가 꼭 필요한 거예요. 스스로 제련한 언어의 연금술로 자신을 비출 수 있다면 가장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될 거예요.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가.
사람답게 말하고 사람답게 사는 일,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그 일을 소홀히 하여 혼란과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시인은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심의 언어를 알려주네요. 좋은 글은 삶의 진정성으로 완성되는 법, 그러니 우리가 좋은 글을 쓴다는 건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겠지요.
...진실을 말하고 사랑을 쓰고 아름다움을 전해라.
가슴을 펴고 머리를 쳐들고 얼굴을 드러낸 이유를 사는 동안 잊지 말아라.
부디 멀리 보고 먼 데까지 다녀라. (20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