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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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소설은 묘해요.

주인공의 잔잔한 일상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대단한 사건도 없는데 시선을 뗄 수가 없어요.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정들

중년이 된 주인공은 혼자 살면서 이따금 찾아오는 애인, 여동생이 있어요.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밀물과 썰물, 낮과 밤처럼 그녀의 삶은 사랑으로 충만했다가 한순간 절망으로 가득차곤 해요. 

그래서 그녀에게 절망은 아주 오래 전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쭉 거기 있었고,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나봐요.


절망은 때로 옛 친구를 찾듯 나를 만나러 온다. 잘 지냈어?  (11p)


주인공이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웨하스였어요. 우리가 아는 그 웨하스 과자.

웨하스라는 말은 영어로 얇은 조각을 뜻하는 웨이퍼스(wafers)가 변한 말이라고 해요. 일본에서 우에하스(ウェハㅡス)라고 하던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웨하스가 된 거죠.

제가 어릴 때도 웨하스 과자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나요. 얇고 바삭해서 아이들이 먹기에 딱 좋은 식감이에요. 입안에 넣으면 바삭 씹히자마자 사르르 달달함이 퍼져요. 손으로 잡기도 편하게 납작하고도 긴 직사각형 모양이에요. 신기한 건 어른이 된 뒤로는 거의 먹은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냥 어릴 때 먹던 과자, 어린아이가 먹는 과자로 남은 것 같아요. 한때의 추억처럼... 그땐 그랬었지,라며 떠올리는 기억 혹은 감정.

그 웨하스 과자로 의자를 만든 주인공은 그게 자신의 행복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눈앞에 있지만 - 그리고 당연히 의자지만 - 절대 앉을 수 없다.  (72p) 


지금 주인공의 사랑은, 애인과의 관계는 너무나 완벽한 듯 행복해보이지만 그들에게 미래는 없는 것 같아요.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애인 입장에서 주인공의 집은 진짜 집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보여요. 분명 애인은 다정하고, 둘은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건 애인이 주인공을 찾아오는 순간뿐이라 그 사랑은 왠지 신기루 같아요. 평화롭고 안정된 삶처럼 보이지만 몹시 불안하고 외로운 이유는 모두 사랑 때문이에요. 그녀가 사랑이라고 믿는 그것 때문에 매일 조금씩 망가지는 게 아닐까요. 누구나 쉽게 사랑을 말하지만 진짜 사랑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아요. 진짜 사랑이라면 결코 웨하스 과자 같은 행복일 리 없을 테니까요. 주인공은 이미 그 끝을 알고 있었어요. 사랑과 절망 사이에서 휘청대는 서른여덟 살의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너와 나는 다른 존재지만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속삭인다.

그것은 마치 느릿느릿 진행되는 자살 행위 같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종점. 그곳은 거친 벌판이다.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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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써! CREATE NOW! - 디즈니, 드림웍스, BBC가 선택한 크리에이터 맥라우드 형제의 창작 기법 바이블
맥라우드 형제 지음, 이영래 옮김 / 북드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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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라우드 형제는 말했죠. 

이 책은 '창작의 바이블'이라고요. 와우, 바이블!  성경책이 아니고, 성경 같은 책이란 거죠.

제목마저도 "당장 써! Create Now!"라서 그 단호하고 강렬한 문구에 끌렸어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역시 남다른 표현 방식에 감탄했어요.

글을 쓰는 마일스 맥라우드와 그림을 그리는 그레그 맥라우드의 합작품답게 창작 기법의 A부터 Z까지, 그림과 글로써 보여주고 있어요.

일단 재미있어요. 딱딱한 창작 수업이 아니라 창작 놀이 같은 느낌이 들어요.  

줄줄이 설명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그려보고 글을 써볼 수 있는 빈칸이 마련되어 있어요. 눈으로만 읽고 끝낸다면 원래 취지인 "당장 써! Create Now!"에 어긋나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맥라우드 형제가 제안한 대로 실습을 해야 돼요. 아이디어를 떠올려라, 그려라, 써라!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아이디어나 이야기, 그림이 있어? 

그걸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봐. 겨우 두 페이지에 불과해!

멈추지 말고 가득 채워봐! 

반짝반짝 빛나는 기록이 될 거야." (38p)


평소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제대로 주제를 정해서쓰거나 그린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은 일단 그려보고, 생각나는 것을 써보고, 캐릭터를 만들면서 하나씩 차근차근 빈칸을 채워가게 되네요. 부담 없이 그냥 즐기는 놀이 같아요.

아마 뭔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의욕이 싹 사라진 적이 있을 거예요. '제대로 못 할 거면 때려치워!'라는 식의 부정적인 목소리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는 거죠.

맥라우드 형제는 이럴 줄 알고, 미리 주의를 주고 있어요. 멋진 창작자가 되려면 그 의심과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고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향해 크게 외쳐봐요.


 "넌 자격이 충분해!  You are allowed to be an Artist ! " (16p)


창작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건 '멈추지 않는' 거라고, 그래야 끝까지 완성할 수 있고 점점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시작이 반'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잖아요.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얼른 도전하라는 응원의 의미가 크죠. 

맥라우드 형제 역시 그 점을 강조했어요.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이런저런 핑계대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 앉아서 쓰라는 거죠. 뭘 쓸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이디어 작업부터 세계관을 창조하는 과정을 일일이 안내하고 있어요. "전적으로 믿으셔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던 전설의 쓰앵님처럼.

어려운 창작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기 두렵다면, 이 책이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유쾌한 맥라우드 형제의 믿을 만한 창작 가이드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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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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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2021년 에드거상 수상작이에요.

인도 빈민가 아이들이 직접 실종된 친구들을 찾아나서는 본격 탐정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인공 자이는 아홉 살 소년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경찰 순찰대>와 <범죄의 도시>의 열혈 시청자인데, 사라진 학교 친구를 찾기 위해 일명 '보라선 정령 순찰대'의 리더를 맡게 돼요. 파리는 자이의 학교 친구인데 똑똑하고 지적인 소녀라서 자이와 파이즈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줘요. 파이즈는 처음엔 자이의 요청을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단순 조수 역할을 하는데, 자꾸 정령에 대한 지식으로 수사를 헷갈리게 해서 파리와 만나기만 하면 싸워요. 자이와 친구들은 사라진 아이들의 행적을 좇다가 모두 보라선 열차를 탔다는 걸 알아내고, 그 보라선 열차를 타기로 하는데... 과연 어린이 탐정단은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어린 소년이 탐정을 자처하면서 빈민가의 현실을 조목조목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탐정추리소설인 거죠. 그러나 순수한 아이의 시선은 굉장히 섬세하게 많은 것들을 담아 내고 있어요. 일부러 뭔가를 고발하거나 비난하는 의도가 조금도 없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게 빈민가의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자이와 친구들이 직접 탐정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경찰들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실종된 아이들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이한 부분은 정령의 존재인 것 같아요. 정령이 아이들을 데려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의 관점일 수도 있지만 암울한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인지도 모르겠네요.

저자는 인도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례를 많이 목격했고 취재했다고 해요. 지금도 인도에서는 하루에 180명이나 되는 어린이가 실종되고 있지만 유괴범이 체포되거나 잔혹한 범행이 세간에 알려져야만 비로소 뉴스에 나온다고 해요.  그러니 뉴스와 기사에 나오지 않은 아이들의 실종 사건은 묻혀질 수밖에 없는 거죠.  왜 아홉 살 소년 자이가 주인공이었나... 저자는 취약계층을 소설로 묘사하면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걱정했다고 해요.  어쩐지 자이와 친구들의 순수함이 되려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온 것이 그러한 이유였네요. 이 소설은 오직 그 아이들, 숫자 뒤에 숨겨진 수많은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하네요. 디파 아나파라, 그의 존재가 멘탈의 정령처럼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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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여행이 있다 - 여행 좀 해본 스튜어디스 언니의 여행 썰
엘레나 정 지음 / 문학세계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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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달력이 한 장 남았어요.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가야지,라며 미뤄둔 여행인데 뉴스에서는 또다른 변이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 발생으로 들썩대네요.

아직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있다니 좀 놀랐어요. 위드 코로나를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싶네요.

지금은 여행을 떠나야 할 때가 아니라 여행에 관한 책을 읽으며 잠시 기다리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여행 대신 책으로 마음을 달랠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여행이 있다>는 10년간 승무원 생활을 했던 저자의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이에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에게는 삶의 흐름을 바꾼 특별한 여행이 있었대요. 뉴욕으로 교환 학생이 예정된 절친이 제안한 3주간의 LA 여행.

당시 영어가 서툰 저자가 믿을 건 친구뿐이었고 무사히 미국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 사건이 터졌대요. 친구는 LA 에서 뉴욕으로 바로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친구의 탑승 시간에 맞춰 발권과 탑승 수속을 밟고 오랜 시간 LA 공항에서 버티다가 탑승했는데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LA 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나리타 쪽으로 가다가 시애틀로 돌아오게 된 상황을 혼자만 몰랐던 거예요. 영어를 못해서 당황하던 그때, 다행히 한국 유학생이 있어서 상황을 이해했고, 시애틀 공항 근처 호텔에 하룻밤 머물면서 그야말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경험한 것이 저자의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게 해준 사건이었대요. 수많은 여행 중에서 시애틀의 밤이 기억에 남는 건 '처음'이라는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저자가 승무원으로 일했던 경험담뿐만이 아니라 여행자를 위한 꿀팁과 추천 여행 일정이 나와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서로 성격이나 취향은 달라도 여행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운 것 같아요. 특히 배낭여행은 힘들게 고생한 이야기일수록 더 재미있어요. 저자 역시 40일 동안 홀로 배낭여행을 하며, 이른바 멍청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했다고 해요. 멍청비용이란 부주의로 인해 안 써도 되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인데, 일상에서 할인 방법을 몰라 제값을 내고 물건을 사거나 미리 현금을 인출하지 않아서 수수료를 내는 비용 등을 말한대요. 처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허탈함과 자괴감이 드는데, 점차 완벽을 버리고 어설픔을 인정했더니 그 상황들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대요. 그래서 배낭여행의 첫 번째 준비물은 '무한 긍정 마인드'라고 해요.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여행이란 예측하지 못한 일들과 뜻밖의 인연들을 만나는 일이니까 저자의 말처럼 긍정 마인드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인 것 같아요. 물론 긍정 마인드는 기본 장착이고,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과 각종 정보들을 놓치면 안되겠죠. 꼼꼼하게 챙길수록 더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저자만의 여행 꿀팁과 전 세계 승무원들이 애정하는 핫 플레이스는 완전 굿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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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의 움직이는 찻집
레베카 레이즌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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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즐겁고, 사랑은 시작할 때가 가장 뜨거운 것 같아요.

<로지의 움직이는 찻집>은 마법 같은 이야기예요.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들려주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요.

그건 전부 로지 덕분이에요. 주인공 로지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러나 남편이 만취한 채 인터넷 결제한 캠핑카 포피를 만나면서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게 돼요. 영국 런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셰프였던 로지는 캠핑카 포피 덕분에 '로지의 움직이는 찻집' 주인이 되었어요. 푸드 트럭처럼 옛날식 힐링 푸드와 직접 블렌딩한 차를 찻주전자에 담아 팔면서 영국 각지를 여행하게 된 로지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돼요.  굉장히 낭만적인 캠핑카 여행 같지만 로지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이건 뭐, 부부의 세계 셰프편이라고 해야 될 것 같네요. "사랑한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뻔뻔한 멘트를 날리던 그 놈처럼, 로지의 남편도 최악이에요. 남편의 여자도 요리사라서, 로지 빼곤 요식업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으면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도 충격이고, 남편과 헤어지자마자 그 여자의 페이스북에 줄줄이 축하 댓글이 달렸다는 게 너무 끔찍한 것 같아요. 로지도 알고 지낸 지인들인데 어떻게 그 커플의 앞날을 축복할 수 있는 건지, 마치 로지라는 존재는 삭제된 것처럼 투명인간인 것처럼 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앞에서 로지가 캠핑카 포피를 만났다고 표현한 건 진짜예요. 포피가 없었더라면 과감하게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비록 캠핑카지만 포피에게 말을 거는 로지를 보면서 못된 인간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포피와 함께 하는 여행은 상처 입은 로지의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었어요. 남편의 배신은 너무나 괴로운 고통이지만 피할 수 없는 불행이었고, 로지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였어요. 누구나 돌아보면 불행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로부터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인생에서 뼈아픈 경험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현실은 동화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지만 로지의 움직이는 찻집은 따스한 차 한 잔의 온기처럼 행복한 여운을 남기네요.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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