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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평점 :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남편을 잃고 3일 만에 아버지마저 잃었던 나는
상실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후 나의 삶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무심코 던진 말에 아들과 떠나온 여행길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는 여행을 하기로 용기를 냈다. (20p)
<오늘이 여행입니다>는 좀 남다른 여행 에세이예요.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인 여행 이야기예요. 어디를 가느냐보다 떠난다는 것,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여행 이야기예요.
저자는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여행을 시작했으나 두 달 만에 각자 여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그 이유는 아들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여행의 목적과 방향을 잃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온전히 혼자가 되는 여행을 시작했고 900일의 시간 동안 31개 나라와 160개 도시를 다녔다고 해요. 이 책은 900일 여행의 기록이자 33명의 예술가들과의 만남 그리고 치유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는 어느 저널리스트가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작가와 그 작품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는 데는 자서전 수천 페이지를 읽는 것보다 작가가 살던 집에서 1시간을 머무는 게 더 낫다" (76p)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여행을 하면서 그 말을 실감했다고 해요.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어요. 오직 예술가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그의 생가를 찾아간다는 것이 정말 설레고 행복할 것 같아서요.
"화가 모딜리아니의 집에 가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37p)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생가를 가기 위해 이탈리아 리보르노를 방문한 저자는 비아 로마 거리에서 모딜리아니의 흉상을 보았고, 화가가 다녔다는 고등학교, 1층 룸을 얻어 조각을 했다는 시장, 자주 갔다는 카페, 가족이 다녔다는 유대교회당 등 모딜리아니의 숨결을 느끼며 그 길을 걸었고, 드디어 화가 집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해요. 화가는 평생 아내 잔 에뷔테른의 영혼이 담긴 눈을 그리고 싶어했는데, <스카프를 맨 잔 에뷔테른>(1919)의 그림 속에 잔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보여요. 그의 대부분의 그림들이 긴 목과 눈동자가 없는 눈, 무표정한 모습의 쓸쓸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데 실제 아내 잔 에뷔테른의 사진을 보면 매우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졌네요.
모딜리아니 생가를 다녀온 지 약 1년 만에 파리를 세 번째로 방문하여 페르 라세즈 묘지에서 모딜리아니와 잔의 합장묘를 찾아갔다고 해요. 모딜리아니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따라갔다는 잔 에뷔테른. 화가가 사망한 지 3년 후에야 합장되었다니 죽음도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놓진 못했네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슬퍼했을 잔 에뷔테른과 저자의 고통이 겹쳐져서 울컥했네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상상하기도 싫기 때문에 현실로 닥친다면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아요.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겪었던 저자는 여행을 통해 예술가들의 영혼을 만나며 애도하고 있어요. 위대한 예술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곳에서 위로받고 치유되고 있어요. 뭔가 그 과정들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 같아요.
요즘 부쩍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마음 준비인 것 같아서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여행과 예술의 힘을 깨달았어요. 뜨거운 감동이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리니, 오늘 이 순간이 여행이자 예술이어라.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 모딜리아니 묘비명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 파리에서 죽다."
- 잔 에뷔테른 묘비명 (44p)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마부여, 지나가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묘비명 (296p)
"죽은 자는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내면의 가장 고요하고 깊은 곳에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예이츠 (29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