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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우리 정서와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게 돼요.
특히 학교나 가족 이야기는 너무 닮아서 옆집 사연을 보는 듯 친밀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개가 있는 계절>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다만 그들 곁에는 강아지 '고시로'가 있어요.
우연히 하치료 고등학교에서 발견된 유기견인데 미술부원들이 그 자리에 없던 '고시로'의 이름을 붙이는 바람에 학교에는 고시로가 둘이 되었어요.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개를 키울 수 없는 사정이라, 교장선생님의 허락 하에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고돌모)를 만들어 미술부실에서 돌보기로 했어요. 미술부원인 3학년 시오미 유카의 집은 빵집을 같이 하기 때문에 개를 키울 순 없고 가게문을 닫는 며칠만 고시로를 맡았어요. 그때 유카는 또다른 인간 고시로, 하야세 고시로와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듣기로 약속했고, 그 밤에 강아지 고시로를 데리고 갔어요. 풋풋한 첫사랑의 장면을 상상했으나 고3답게 입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살짝 가슴이 떨리고 달아오른 뺨은 오롯이 유카만의 추억이 되었어요.
"네가 평범하다면, 그 평범함은 무척 좋은 걸 거야. 고시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고시로가 하야세에게 달려갔다. 몸을 숙인 하야세가 그 등을 쓸어주었다.
"'그렇다'고 하네."
미소 짓는 하야세의 옆에서 고시로가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하야세, 고마워......, 고마워." (94p)
유카는 집 근처 명문 국립대와 도쿄 사립대 모두 합격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쿄행을 결정했어요. 하지만 하야세는 원하던 도쿄 미대에 합격하지 못했어요. 유카는 하야세에게 내년에 도쿄에서 보자며 헤어졌고, 하야세는 끝내 유카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도쿄 대신 이곳의 교육대를 다닐 예정인데, 그건 가정형편 때문에 재수는 힘들고, 교육대를 나와 미술 교사가 되면 엄마의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도 널 좋아하지만 자기 처지가 부끄러워서 무뚝뚝하게 굴었다고...
"정말로, 정말로 좋아했어." (98p)
이 소설은 강아지 고시로가 하치료 고등학교에 머물게 된 1988년부터 2000년까지 고돌모 친구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요. 강아지 고시로는 변함없는 상수, 고돌모 친구들은 변수지만 교장 선생님이 직접 건네준 5년 일기장인 고돌모 일지 덕분에 고시로와 함께 한 시간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20년, 30년 뒤 세월은 흘러 강아지 고시로는 노견이 되었는데 시끌벅적 십대 아이들의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열여덟 살 무렵에 겪게 되는 고민과 감정들을 겉으로는 숨기지만 고시로는 전부 느낄 수 있어요. 어쩐지 고시로의 눈으로 보면 인간들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요. 그냥 단순하게 솔직하게 살면 좋을 텐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건 아쉬움이라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대로 시작도 못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사는 거라고. 그러니 괜한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도록 좀더 용기를 내라고, 개 고시로는 늘 그 자리에서 바라보며 말해주고 싶었을 거예요.
... 'However'라는 단어부터 막혔다. 거침없이 '영원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번역하자, ....
"이건 '하지만'이라고 번역해. '영원하게 만드는 방법'은 좋은 말이긴 한데, 어디서 온 거니?"
"'how'가 'how to'니까 방법? 'ever'는 'forever'랑 비슷하니까 영원?
그렇게 생각했더니 입에서 멋대로 나왔어요." (277-27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