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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평점 :
천재란 무엇이며, 우리 역사 속 천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조선 천재 열전>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천재 9인을 다룬 책이에요.
김시습, 이이, 정철, 이산해, 허난설헌, 신경준, 정약용, 김정희, 황현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적인 문장가였다는 점이에요.
과거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여 글을 익히고 시를 짓는 일을 중요시 했어요. 그러니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글을 알아듣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기특했겠어요.
첫 번째로 소개된 김시습은 온 장안에 천재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급기야 대궐에까지 전해졌는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세종은 지신사 박이창을 시켜 김시습을 승정원에 불러와 확인하도록 했어요. 박이창은 다섯 살 김시습을 무릎에 앉혀 이름 석 자를 넣어 시를 지으라고 하자, 어린 김시습은 주저 없이 시 한 구를 읊었어요.
"올 때 포대기에 쌓여 온 김시습(來時襁褓金時習)."
그 말을 받아 박이창이 "동자의 공부는 백학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추는 것 같구나."라고 읊자,
시습은 그 말을 받아서 "성주(聖主)의 덕은 황룡의 푸른 바다 가운데를 뒤집는 형국이로다"라고 했어요.
박이창이 다시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시를 지어보라고 하자,
"작은 정자 저 배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지"라고 했어요. (19p)
박이창이 곧 대궐에 들어가 아뢰어, 세종은 김시습에게 비단 50필을 내려주며 혼자 힘으로 가져가게 했는데, 이는 어린 김시습이 그 비단을 어떻게 가져가는지 보고자 했던 거예요. 이때 김시습은 너무나 간단한 방법으로 그 비단 전부를 가지고 유유히 궁중 문을 나섰으니, 그 명성이 전국에 알려져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시습'이라 부르지 않고 '신동김오세(神童金五世)'라고 불렀대요. 이토록 어린 시절에는 천재로서 모두의 기대를 받았으나 단종 폐위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등지면서 비운의 삶을 살았어요.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천재들은 가시밭길의 연속인 불행한 삶을 살다가 갔어요. 왜 그럴까요.
저자는 헤르만 헤세의 글을 통해 그 답을 찾고 있어요.
"천재는 어디서 나타나건 주변 사람들의 손에 목이 졸려 죽거나 아니면 독재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천재는 인류의 꽃으로 취급받고, 어디를 가나 위기와 혼란을 일으키며, 늘 혼자서 나타나고 고독이라는 천형을 짊어졌으며,
유전되지 않고 항상 자신을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45p)
- 헤르만 헤세 『문학에 관하여』 중에서
"우리는 흔히 천재라는 사람의 인생 역정에서 편안한 결론을 끌어내려고 한다.
진정으로 강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 걸어간 결과,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겁한 자조요 거짓이다.
실제로 많은 유명 인사들은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소질을 살리지 못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에게 맞는 길을 가지 못하며,
인생 역정이 꺾이거나 불행한 삶 속으로 휘몰리게 된다." (47p)
- 헤르만 헤세 『유고산문집』
한 개인의 삶에서도 알맞은 때, 적기가 중요한데 천재들 역시 시대를 타고나야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조선의 천재들은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없었고, 그러한 처지를 알았기에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유교문화가 지닌 해악이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불러온 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해보았어요. 양반 중심의 엘리트 문화가 유교와 결합하면서 개인의 역량보다는 가문을 따지고, 실리보다는 대의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든 것 같아요. 조선의 천재들 중에서 장영실이 빠진 것은 너무나 아쉬워요.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장영실이 세종에게 불려갔다는 것은 연려실기술에 있는 기록이고, 장영실이 그 실력을 인정받아 보호받았다는 기록은 태종실록에 남아 있어요. 그러나 세종대왕의 어가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으로 곤장 100대와 파직을 당한 장영실의 이후 행적은 더 이상 역사기록에 등장하지 않아요. 또한 장영실이 직접 남긴 기록조차 없다는 건 그가 선비가 아닌 기술자 출신인 탓일 거예요. 부조리한 신분제를 타파하지 못한 구시대의 씁쓸한 민낯인 거죠.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못지 않은 천재가 우리 역사 속에 존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시대적 한계와 문제점을 짚어보며 혁신해야 할 과제로서 바라보게 되네요. 우리 시대의 천재들은 차별과 한계에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