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평점 :
기묘한 이야기는 제 취향이에요.
막연하게 상상하던 것들이 뛰어난 이야기꾼에 의해서 새롭게 그려질 때, 정말이지 소름돋는 쾌감이 있어요.
<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카카오웹툰을 소설로 만든 책이에요.
경성 골목에 자리한 오월중개소는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곳이에요. 중개상 최두겸은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오월중개소에는 두겸을 찾아오는 기묘한 손님들이 있어요.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는 혼령 고오, 부처를 날려버린 담비 동자, 손님을 내쫓는 세화를 가진 찻집 주인, 인간을 사랑한 샘물 신, 삼십 년간 비밀을 간직해온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님 등이 두겸에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와요. 두겸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있는데 영물인 뱀 치조예요. 치조는 두겸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요.
세상에 사람만 구구절절 사연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기묘한 존재들에게도 애달픈 사연이 있었네요. 그 중심에서 두겸은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지만 정작 본인이 상처받은 존재였음을 감추고 있었네요. 치조 덕분에 새로운 삶과 능력을 얻게 된 두겸의 활약도 멋지지만 두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주목하게 되었어요. 끔찍한 봉변을 당하면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주려고 해요. 그러나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 법.
두겸은 똑같은 피해자였지만 원혼과는 다른 선택을 했어요. 오히려 원혼들을 달래며 저승길로 인도해줬어요. 원혼들이 분노로 불타 사라지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잃게 되므로 그건 더욱 슬픈 일이니까요. 두겸의 영혼은 선하고 강력한 힘을 지녔어요. 맑고 따스한 빛을 내뿜는 두겸의 영혼 덕분에 비극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어요.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어요. 우리의 눈은 어둠 너머를 볼 수 없어요. 하지만 두겸을 통해 어둠 속, 그리고 어둠이 걷힌 자리를 볼 수 있었네요. 신비롭고 기묘한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세상만사가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드네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사연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탐험한 느낌이었어요.
무엇이, 누가 이런 상황을 지속되게 하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들의 삶은 어찌해야 하나.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 그들이 지금 지옥의 아귀들에게 매일 내장을 뜯어 먹히는 고통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겸은 옅고 길게 숨을 쉬었다. 떨지 않으려고 양손을 움켜쥐었는데도 자꾸 떨렸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원혼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위협적인 압박이었다.
두겸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영원히 상처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300-301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