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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들 -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오찬호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5월
평점 :
글로 전해지는 날카로움에 베이고 말았네요.
《민낯들》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열두 사건을 되짚어보는 책이에요.
사회학자 오찬호님은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체념과 "사회 탓만 하고 살 거야?"라는 무례함이 응축되었을 때,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반복되는지 역으로 따져 본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잊고 또 잃었던 사회의 뒷모습이에요.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어요. 故 변희수, 故 최진리, 故 최숙현, 故 김용균, 故 성북 네 모녀, 故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OOOO 명.
그리고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팬데믹, n번방 사건, 낙태죄 폐지,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조국 사태가 있어요. 이 열두 사건은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첨예한 논쟁이며, 이를 돌이켜보는 일은 아프고 괴롭지만 반드시 해야 할 과제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사건들은 힘없는 개인이 떠안아야 할 고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책임이기 때문이에요.
지난 달 개봉한 영화 <공기 살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에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2011년 3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불명 폐질환으로 입원한 산모 4명이 사망하면서,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에 이를 신고했어요. 역학조사가 진행되었고, 원인 미상의 정체가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졌어요. 1994년 처음 출시돼 지난 17년 동안 천만 병이 팔린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으로 2만 명이 목숨을 잃고 95만 명이 피해를 입었어요. 저 역시 가습기살균제를 반 년간 사용한 적이 있지만 그때 어떤 제품을 썼는지 기억나질 않아서 신고하지 않았어요.
가습기살균제가 유독물질로 분류된 것은 2012년이었고, 기업은 오만하게도 죽음의 살균제를 만들고 유통시킨 사실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어요. 사법부의 처벌은 업체 관련자 15명 정도가 유죄 (대법원) 확정 판결이며 대부분 2~5년 형이었고 옥시 전 대표는 징역 6년이었고, 일부 기업은 전부 무죄를 받았어요. (2021년 1월 1심 판결로, 2022년 현재 항소심 진행 중)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고, 대기업에 종속된 법조계, 의료계, 학계의 전문가들은 기업 편에서 증언하며 양심을 팔았어요. 사건 초기에 국가가 직접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뉴스를 챙겨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습기살균제를 몇 년이나 더 사용했고,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는 과정은 험난했어요. 보류 판정을 받은 수천 명의 사람들은 모든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고 있어요. 결국 모든 고통은 피해자와 가족들의 몫으로 남았어요.
며칠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어요.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신이 몸담았던 김앤장이 일본 전범 기업을 대리하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외국기업을 대리하고,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 BMW의 화재 사건을 대리한 것에 관해 묻는 질문에 "잘 몰랐다"고 답변했어요. 김앤장과 옥시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했다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제기한 사실에 대해서도 "저는 그 기사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요. 김앤장으로부터 고액의 고문료를 받았던 당사자가 관련 사건을 모른다고 하는 발언은 무책임을 넘어 파렴치하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이미 국무총리를 지냈던 사람이 이토록 국민들의 고통에 무감각하면서 나랏일을 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네요.
한국 사회의 공정과 정의는 권력자들만의 특권인가요. 힘없는 개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언제쯤 사라질까요.
저자는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민낯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항상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우직하게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자의 말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이 사회는 사람이 만든 거고 그걸 바꾸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주하기 싫어도 마주해야 변화가 가능하다." (265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