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피팅의 정석 - 안경을 완성시키는 피팅의 모든 것
손재환 지음 / 라온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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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피팅의 정석》은 안경 피팅을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 안경업계의 전문가들이 이 책의 발간을 반가워하며 추천하는 이유로는 안경테 피팅에 대한 전문 서적이 많지 않은 현실 때문이라고 하네요.

제가 관심을 가진 건 지금껏 한 번도 편안한 피팅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늘 어딘가 불편해서 장시간 착용하지 못했거든요. 순전히 사용자 입장에서 피팅의 정석이 궁금하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이 책은 안경사들을 위한 전문서적이었네요.

저자는 30여 년 동안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경험들을 다른 안경사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한국안경아카데미'를 설립했으며, 안경원 창업 컨설팅과 안경 착용의 불편함을 없애는 피팅 노하우 등의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고 해요. 국내에는 안경 피팅에 관한 서적이 전무하여 일본, 미국 등 해외 교재를 참고하여 안경 피팅을 위한 기초 이론과 실습을 정리하였다고 하네요.

우선 안경 피팅이란 뭘까요. 안경사는 정확한 시력검사와 양안시 기능검사를 통해 최고의 시력을 처방하고 정밀한 조제 가공을 하고 난 후, 시력을 유지하고 오랫동안 안경을 착용해도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마지막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최종 단계의 기술을 '피팅'이라고 한대요. 아무리 정확한 처방을 해도 피팅이 잘못되면 결과적으로 잘못된 안경 처방이 되기 때문에 피팅은 안경의 처음과 끝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고객이 편안하게 안경을 착용하려면 안경사들의 피팅 기술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피팅은 세 가지 목적을 충족해야 완벽한 최적의 피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광학적인 조정, 해부학적 조정 그리고 미적 조정이에요. 그래서 피팅 과정은 [ ① 두부 사이즈, 코 각도, 코 폭 측정 ⇒ ② 안경테 선정 ⇒ ③ 1차 기본 피팅, OH 설정 ⇒ ④ 렌즈 설정 ⇒ ⑤ 조제 가공 ⇒ ⑥ 2차 정밀 피팅 (해부학적 피팅) ] 이라는 6단계를 거치게 돼요.

이 책은 피팅 마이스터가 되기 위한 이론과 기술을 담은 교재예요. 현재 안경사들의 피팅은 눈으로 배우고 익힌 손기술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이론 지식과 함께 손기술을 마스터해야 피팅 마이스터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의 구성은 기초 이론과 세부적인 피팅 순서를 다룬 실습편, 그리고 안경 피팅의 임상 철칙들과 클레임 사례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안경 피팅은 안경사의 업무인데 일반인이 피팅에 관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굳이 권하고 싶진 않지만 책의 내용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안경테 피팅을 위한 해부학 이론을 보면 안경과 관련된 얼굴 근육과 혈관, 신경 위치가 그림과 함께 자세히 나와 있어요. 안경 착용과 관련한 불편감은 잘못된 피팅으로 얼굴 근육, 혈관, 신경을 압박하여 생긴 증상이에요. 또한 코뼈와 측두골을 잘 확인해야 안경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는데, 잘 모르면 안경이 흘러내리거나 무게(압력)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그러니 얼굴 구조를 정확하게 알아야 완벽한 피팅이 가능한 거예요. 안경을 오래 끼다 보면 콧받침이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책에 나온 사진을 보니 잘못된 코받침 피팅과 안정적인 코받침 피팅의 차이를 확실히 알겠네요. 워낙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라서 직접 피팅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불편감을 초래하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어서 유익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피팅이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인지, 안경사라는 직업이 가진 전문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부디 이 책을 통해 피팅 마이스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완벽한 피팅으로 편안하게 안경을 쓰고 싶은 일반인의 작은 바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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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너의 집, 우리의 집 - 2016 볼로냐 라가치상 스페셜 멘션 수상작 웅진 모두의 그림책 45
루카 토르톨리니 지음,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이현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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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너의 집, 우리의 집》은 2016년 볼로냐 라가치상 오페라 프리마 부문 스페셜 멘션 수상작이라고 해요.

이 그림책의 작가는 두 분이에요. 글을 쓴 루카 토르톨리니와 그림을 그린 클라우디아 팔마루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라고 하네요.

이번 한국어판이 특별한 이유는 오직 한국어판에만 실린 그림 덕분이에요. 작품의 메시지를 잘 살리기 위해 새로운 표지를 만들었고, 두 저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였기 때문에 클라우디아 팔루마치 작가가 한국어판만을 위해 새롭게 작업한 본문 그림 일부를 수록할 수 있었대요.

우와, 멋지다!

그림책 크기가 거의 8절지 스케치북만큼 큼직해요. 책 표지를 보면 3층으로 나뉘어 굵은 나무와 긴 나무 사다리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어요.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자코모네 집이 나와요. 그 다음은 마테오네 집, 로레나네 집, 신델네 집, 밈모네 집, 오타비오네 집, 릴로네 별장, 시모네네 집, 줄리아네 집, 마르코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호텔, 클라우디아네 집까지 모두 열 명의 아이와 열 개의 집이 등장해요.

아참, 마르코는 집 대신 호텔에서 살아요. 한번은 마르코의 엄마 아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는데, 엄마가 "집은 잠만 자는 호텔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잠시 후 엄마 아빠는 웃고 말았어요. 엄마가 하려던 말은 '집'이 가진 의미, 즉 가족이 화목하게 오순도순 함께 지내는 분위기를 표현하려던 건데, 진짜 마르코네 집은 호텔이니까 말문이 막힌 거예요.

열 명의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은 하나도 똑같은 집이 없어요. 저마다 다르지만 아이와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건 똑같아요.

그렇다면 '집'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자신의 집을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그림을 들여다보면 더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어요.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거예요. 가장 마지막에 나온 클라우디아네 집은 바닥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는데, 그림에는 흰 종이에 그려진 네모난 틀만 보이네요. 이 집에는 종이와 연필, 붓과 물감이 가득한 방이 하나 있는데, 클라우디아는 어른이 되면 하루 종일 이 방에서 일할 거래요. 이야기를 만들고 아이들과 집, 어른들을 그릴 거래요. 하얀 여백 아래에는 배를 타고 있는 아이가 보여요. 양쪽에 노를 젓고 있어요. 아마 호수일 거예요. 집 근처에 호수가 있어서 작은 배를 타며 여행하는 꿈을 꾸는 클라우디아의 집은 아직 세상에 없어요. 클라우디아가 어른이 되면 진짜 이 집을 볼 수 있을까요. 왠지 이 그림책을 보는 이들에게 묻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겐 "너는 어떤 집을 꿈꾸고 있니, 흰 종이 위에 한 번 그려 볼래?"라고, 어른들에겐 "너의 어린 시절은 어땠어, 그땐 무슨 꿈을 꾸었니?"라고요.

진짜 마지막 장은 책 표지 그림과 함께 다음의 문장이 적혀 있어요.

"우리가 어린 시절의 집을 떠난 적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집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설령 집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 페르잔 오즈페텍 (이탈리아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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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소크라테스 - 사람이 있다
곽경훈 지음 / 포르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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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의 소크라테스》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곽경훈님이 응급실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예요.

부제는 '사람이 있다'인데, 그 사람이라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다가오네요.

'나도 사람이야.'라는 권리를 내세울 때, '네가 사람이냐?'라고 질책할 때... 똑같은 '사람'인데 무엇이 다른 걸까요.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너와 나를 구분짓고, 다름은 틀리고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기도 해요. 이런 행동을 하는 부류는 뻔해요. 나쁜 권력자들.

응급실에서도 마찬가지인 게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을 찾고, 그 권력을 휘두르며 특별 대우를 요구하고, 의료진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악용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분명 정의롭지 못한 현상이지만 막상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그것이 씁쓸한 현실인 것 같아요.

그동안 의사 선생님이 쓴 몇 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의사도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느꼈다면,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병원이라는 세계는 환자,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과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특히 응급실은 나이, 성별, 종교, 정치 성향, 인종, 교육 수준, 재산,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환자가 처한 의학적 필요에 따라 진료를 진행하는 공간이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걸, 저자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어요. 뭔가 병원은 다를 거라는 환상 혹은 착각은 직접 겪어보면 금세 사라질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솔직한 고백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있는 곳에는 온갖 종류의 진상들이 섞여 있어요. 돈과 권력으로 갑질하는 것들은 어딜가나 똑같이 추잡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라 그 꼴불견을 피할 수가 없네요.

닥터 히스테리와 같은 비열한 인간이 끼치는 악영향도 있지만 닥터 구제 불능처럼 자신의 원칙과 정의를 고수하는 이상주의자의 선한 영향력도 있으니, 이 세상은 힘겹게 균형을 잡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환자의 입장에서는 굿닥터를 원하겠지만 의사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누구든지 합법적인 경계 안에서 얼마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고, 그 행동이 사명감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비난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다만 그런 의사도 본인이 환자가 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열정적이고 고전적인 의사의 의무에 충실한 굿닥터를 간절히 원하겠지요. 여기에 나온 이야기들은 누굴 탓하거나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였다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이 있는 곳에는 황금률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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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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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소환한 스물다섯 명의 인물에 관한 책이에요.

이 책이 소개하는 스물다섯 명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건 바로 투옥이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끝내 지키려 한 '삶의 원칙'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저마다 추구하는 목표는 달랐지만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과 그 가치들을 실천하기 위해 도전하고, 맞서 싸우며, 기꺼이 자신을 내던졌어요. 중요한 건 그들이 이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거예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하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백퍼센트 맞다고 볼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기 때문이에요. 역사를 배운다는 건 사실의 나열을 암기하는 게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즉 올바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한때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이 벌어진 것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시켰기 때문이에요. 이는 친일파 청산 실패의 역사가 계속 이어진 탓이에요.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들이 권력을 휘두르며 이념 갈등을 조장했으니,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하고 잊혀졌던 거예요. 이 책에는 조선공산당 여성 트로이카 3인(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이 등장해요. 일개 여자라서, 기생 출신이라서 폄하된 독립운동가 정칠성은 만세 운동에 참여한 뒤 열혈 민족주의자로 변신한 인물이에요. 그녀는 사회운동가로 변모했지만 세간에는 기생 출신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고, 여성 독립운동가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이 있었대요. 심지어 50년이 지난 1978년 신문에도 정당한 평가 대신 기생으로 세평했다니 한심하네요. 반면 그녀는 대범하게 자신의 출신을 인정하며 세상에 힘껏 맞섰고 여성 사회주의 지도자가 되었어요.


"이 사회를 알고 또 이 사회에 대한 나의 지위와 의무를 깨달은 뒤부터는 생리적 조건 같은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 되었습니다. 여자라고 사내들이 할 일을 못 하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당면한 일은 사내가 더 잘하고 여자가 더 못하란 법이 없는 그런 엄숙한 일이외다. 그리고 돈이 있어 무얼 하며 또 없으면 어떠합니까. 모든 것은 우리 앞에 문젯거리가 아니 됩니다.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겠지요. 다만 피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뛰어들고야 말 그 일에 우리 몸을 바칠 생각만이 있을 뿐이겠지요."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삼천리>, 1929년 6월호) (31p)


한국 최초의 고공투쟁 노동자 강주룡은 식민지 조선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1960년생 김진숙은 유일하게 복직되지 않은 노동자로 살고 있어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은 노동자 해고와 임금 삭감에 항의하기 위해 85호 크레인에 오른지 129일째 되던 날, 크레인 난간에 목을 매 숨졌고, 이에 흩어졌던 노조원들이 다시 모여 투쟁하자 정부와 한진중공업은 항복을 선언했는데 이때 단 한 명의 해고자 김진숙만 구제되지 않았어요. 김진숙은 85호 크레인에 다시 올랐고 유례가 없던 309일간의 고공농성으로 사측의 복직 약속을 받아냈으나 비열하게도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손해배상 소송으로 수십 억 원의 배상금을 요구했어요. 투쟁에 공감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모여 만든 희망버스가 아무리 애써 모금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징벌적 배상금이라니 참으로 잔인하고 야만적이네요. 그럼에도 그녀의 투쟁은 계속 되었고, 37년 만인 2022년 3월 23일 김진숙의 명예복직이 이뤄졌어요.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꿨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37년 만에 복직한 김진숙이 남긴 퇴직 인사 중에서) (127p)


이 책은 우리에게 역사책 너머, 숨겨진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불꽃처럼 살다간 이들을 보면서 기형적으로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줄기가 어떠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네요. 이제는 진정한 역사의 승자가 누구인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역사에서 불꽃처럼 맞서 싸운 이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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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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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 철이 들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엄마를 생각하다가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이 있어요.

강인하게만 여겼던 엄마가 한없이 약하게 느껴졌고, 스스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여전히 엄마는 내 삶에 있어서 커다란 존재이지만 이제는 내가 안아주고 싶어요. 엄마를 꼬옥 안으니 내가 컸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 책은 '어머니'라는 단어와 저자가 이어령 선생님이어서 읽게 되었어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강력한 두 가지였어요.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이어령 선생님의 산문집이에요.

2010년 처음 출간된 책인데 이번에 새롭게 리커버 개정판으로 나왔네요. 올해 2월,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그 빈자리를 채우고자 선생님의 책들을 찾아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어령 선생님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 이전에는 무신론자이자 냉철한 지성인으로서 사적인 신변 이야기를 쓴 적이 없었는데, 그 책에서 공개한 가족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문의를 많이 받았다보니 후속편을 대신하여 어린 시절의 자신과 어머니에 관한 글들을 담은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하네요.

열한 살 소년에게 노란 귤은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이에요. 수술을 받으러 서울에 가신 어머니는 병문안 온 손님들이 가져온 귀한 귤을 막내 아들에게 주려고 고이 간직하셨대요. 그 귤은 하얀 상자 속 유골과 함께 집으로 왔고, 끝내 먹을 수 없었던 그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혔다고 해요. 서울 가시기 전 날 밤에 어머니는 막내 아들에게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하셨는데, 숙제를 해야 한다며 핑계를 부리고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드리지 않았대요.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인 줄 몰랐던 거죠. 겨우 열한 살 아이가 무얼 알았겠어요. 하지만 평생 속앓이를 했겠지요.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걸.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에요. 다정다감했던 어머니를 한순간에 잃은 아이의 마음, 그 슬픔과 아픔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리움이 사무쳐 더욱 커졌을 것 같아요. 그리움이 쌓인다고 표현하지만 그리움은 커질수록 마음 깊숙히 후벼대며 구멍을 내는 것 같아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 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세상에게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 아마도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기 위해선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나'와의 이별 과정인 것 같아요. 머무르지 않고 길을 나서야 성장할 수 있어요. 이어령 선생님은 영상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어요.

"여러분들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 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잘 있어. 틀림없이 너희들은 잘 있을 거야'라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 잘 있으세요, 여러분들 잘 있어요."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이 나를 따라다닌다.

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했다.

...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19-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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