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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평점 :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치열한 순간을 목격하는 곳이 병원 응급실인 것 같아요.
이 소설은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건물이 폭발하는 바람에 전신 화상을 입은 구급대원 두 명이 응급실에 실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네요.
주인공 해수는 3년차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구급대원 중 한 명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환자의 과거를 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돼요. 은하대교 아래에서 발생한 크루즈 화재 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에는 불타는 크루즈 주변에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서둘러 구조하려던 찰나, 갑자기 무전으로 전원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어리둥절했지만 중앙구조본부에서 소방청은 철수하라고, 대신 해경이 구조한다는 지시가 내려져서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이것은 19년 전 인생호 화재 사건 현장에 있었던 구조대원의 과거였던 거예요.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2014년 4월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많이 아프네요.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은 비극, 끝까지 안고 가야 할 시대의 아픔이네요. 그리고 여기,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외상을 입은 환자인데 한 명은 살고 한 명은 죽고 말았으니, 과연 인간의 생사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요.
퇴근하려던 해수는 1년차 전공의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회의실에 들렀다가 신입 전공의 연화를 보고 흠칫 놀랐어요. 왜냐하면 환자의 과거 환영이 보였던 그 시점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는데, 그때 처치실 유리창 너머로 눈이 마주친 여자가 바로 연화였기 때문이에요. 하얀 옷을 입고 있어서 귀신이나 헛것을 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그녀는 소녀 같은 단발머리에 연꽃이라는 이름처럼 맑고 순수해 보였어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이야기였다면 메디컬 드라마였겠지만 이 소설은 이무기와 선녀 등 전통적인 미스터리와 판타지 요소를 가미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해수와 연화의 로맨스에 빠져서 깜박 놓치고 있던 사실이 있어요. 은하수의 저주, 그 저주가 무엇인지 실체를 확인하는 동시에 깨닫게 될 거예요. 앞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 인간으로 산다는 건 그 답을 향해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옛날 옛적에 이무기가 인간의 얼굴로 인간 세상에서 살았대. 인간 세상에서 지낸 지 오백 년이 되는 날에 사랑하는 여인이 들고 있는 여의주를 들고 용궁으로 돌아가면 용으로 승천할 수 있었거든. 단, 조건이 있었어. 자신이 이무기인 걸 들키면 용이 될 수 없었대. 그러던 어느 날, 이무기는 사랑하는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걸 알게 됐어. 그러자 이무기는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날개옷을 꼭꼭 숨겨 버렸대. 선녀가 떠나지 못하게 말이야. 그렇게 선녀가 영원히 옆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28p)
"그 아이의 운명은 바로 그 아이의 선택에 달린 거지요."
"그래도... 인간의 운명은 옥황상제께서 정하시는 거 아닙니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명(命)을 받아, 주어진 운(運)대로 살아가오. 하지만 똑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건, 자신의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과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오."
(34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