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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윤순식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9월
평점 :
어린 시절, 우리집 책장에는 양장으로 된 전집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어요.
몽테뉴의 수상록, 파스칼의 팡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그리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빽빽하고 작은 글씨들로 채워진 책, 호기심에 읽었지만 그냥 읽은 것이지 뭘 느끼거나 생각할 정도로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래도 세상에 이런 책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도움은 된 거죠.
2022년 9월, 빨간책으로 다시 만났네요. 공교롭게도 지금 이 시기라는 것이 살짝 소름 돋았어요. 차라투스트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었어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고, 들었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거예요.
"슬프도다. 세상이 이리 잘못되어 가다니! 타락했구나! 타락했어! 세상이 이토록 깊이 가라앉은 적은 없었다." (392p)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동굴에서 나와 홀로 산을 내려가고 있어요. 서문에서는 이 장면을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숲속에서 만난 노인은 차라투스트라에에 이렇게 말했어요. "... 몇 해 전에 이 길을 지나갔던 사람이군. 지금은 아주 딴 사람으로 변했군. 그때 그대는 자신의 재를 지고 산으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지고 골짜기로 가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방화범으로서 받을 형벌이 두렵지 않은가? ...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되었는데 새삼스레 무엇을 하려고 저 잠든 사람들 곁으로 가려고 하는가?" (13-14p)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나는 인간을 사랑하오."라고 답했고, 성자는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할 게 아니라 자신처럼 신을 사랑하라고 조언했어요.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구나.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16p)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만으로 구원될 수 있나요.
여기서 '신이 죽었다'는 건 인간에게 변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경고라고 생각해요. 차라투스트라는 일곱 개의 봉인, 긍정과 아멘의 노래를 통해 "내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 영원이여!" (369p) 라고 일곱 번 말했고, 강조했어요. 제자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그가 만난 왕, 늙은 마술사, 교황, 자발적으로 거지가 된 자, 그림자,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 슬픔에 잠긴 예언자, 나귀, 가장 추악한 자는 유혹하고 시험하려 들었어요.
가장 추악한 인간은 신이 인간의 심연과 바닥, 숨겨진 모든 오욕과 추악함을 보았기 때문에, 그걸 지켜보았던 목격자였기에 죽지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창자 속까지 얼어붙는 느낌이 들어 그곳을 떠나려고 했어요. 인간이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얼마나 추악하고, 얼마나 골골거리며 불평하고, 얼마나 남모르는 수치로 가득한 존재인지를 마음속으로 생각했어요. 저 사람도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그 자기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그만큼의 경멸이라는 것을. 그래서 슬퍼했어요. 차라투스트라가 인간을 향해 품은 감정은 사랑이자 슬픔이고, 연민이었어요. 사랑이란 뭘까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줄 정도의 마음이 아닐까요. 고뇌에 빠졌던 차라투스트라는 아침 해가 떠오르자 자신의 동굴을 떠났어요. "나는 나의 할 일을 찾을 뿐이다!" (525p)
인간 세계, 인간의 바다... 그 바다를 향해 나는 지금
황금 낚싯대를 던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열려라, 그대 인간의 심연이여! (378p)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에게 초인 超人 을 가르치고자 했어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그러니 인간은 희망의 씨앗을 인간의 대지에 심어야 한다고 말했던 거예요. 인간이 위대한 점은 짐승과 초인 사이의 다리일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고, 인간이 사랑스러운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고 했어요. 인간이 초래한 재앙, 엉망이 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신이 아니라 인간들 자신이며, 스스로 극복되어야 할 존재임을 깨달아야 해요.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인간들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한번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그대들 내면에는 아직도 혼돈이 있음이라." (2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