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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자연, 숲에 놀러가는 건 늘 즐거워요.
하지만 어둠이 짙어지면 막연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와요. 야생동물이나 예상치 못한 것들에 대해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고 즐기면서도 그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집이라고 느낄 정도로 안락하고 편하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늘 손님처럼, 잠시 다녀가는 방문자로서 자연을 대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여우와 나》 는 캐서린 레이븐의 책이에요. 소설이 아닌 실화, 생물학자가 쓴 회고록이며, PEN 에드워드 윌슨상과 노틸러스 북어워드 금메달 외 다수의 출판상을 휩쓸며, 올해의 책으로 꼽힌 교양과학서라고 하네요. 이러한 소개 없이 읽었다면 현대판 <어린 왕자>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로키 산맥 자락의 인적 없는 땅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사는 그녀에게 야생 여우가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열이틀 연속으로 오두막에 나타난 여우, 열사흘째는 약간의 기다림이 생겼고, 여우가 나타나는 오후 4시 15분이 다가올수록 여우를 생각하게 됐어요. 재미있는 건 야생 여우가 방문하는 시간에 그녀는 캠핑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는 거예요. 여우에게 <어린 왕자>를 소리내어 읽어주었고, 대화도 나누었어요. 물론 남이 볼 때는 그녀 혼자 떠드는 줄 알겠지만 저자는 여우에게 질문한 다음 응시하며 마음속으로 열다섯까지 세었고, 그 침묵의 시간은 '말 없음'이 아니라 여우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어요. 사람 간의 대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냥 너와 나, 서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한 대화랄까요. 제겐 여우 친구도 없고, 그런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아요.
캐서린은 여우와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둘이 왜 매일 오후 4시 15분에 접선했는지 생각해내야 했어요. 왜냐하면 과학자로서 도저히 밝힐 수 없는 비밀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대학에서 자연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야생동물을 인격화하는 건 누가봐도 웃을 일이니까, 사실 제나에게 살짝 떠봤더니 "여우와 대화하는 건 정상인이 할 법한 일이 아니에요." (41p)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나에게 <어린 왕자>의 저자, 그의 보아뱀 그림처럼 세상에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했더니, 제나는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어요.
"생텍쥐페리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고역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그냥 무시했죠."
"그렇게 살면 외로울 거란 생각 안 들어요?"
"그는 외롭지 않았어요. 그에게는 어린 - ."
제나가 말을 끊었다. "당신이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요? 환상의 친구들을 이미 충분하지 않나요?" (41-42p)
음, 제나는 캐서린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사람들과 동떨어진, 숲 속 오두막에서 여우와 대화를 하는 캐서린을 외로운 사람으로 규정해버렸어요. 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저자는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레인저(공원 관리자)로 일했고, 가끔 대학 강의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오두막에서 지내고 있지만 외롭지 않아요. 외로움보다는 불안감이 큰 편인데, 그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수은이 되는 거라고 하네요. 그 이유는 수은이 실온에서는 증발하여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금속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수은에 빗대어 숲으로 사라지면 불안을 유발하는 질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나요? 왜 혼자 살죠?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49p)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로부터의 탈출, 저자는 열다섯 살에 가출했고 이후 스스로 먹고사는 일거리를 구했다고 해요. 열여섯 살이 되자 근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 국립공원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자원봉사자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자연인의 삶.
원래 여우는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 붉은 여우는 지속적으로 캐서린을 찾아왔고, 겨우 2미터 거리에서 머무르다가 사라졌어요. 캐서린은 그 여우를 언젠가부터 '우리 여우'라고 불렀고 점점 관심사가 우리 여우에서 여우들로 확장됐어요. 여우들이 안전히게 다닐 수 있도록 도랑을 청소하고 가시 돋힌 회전초를 제거했어요. 여우와 시간을 보내면서 여우를 닮아갔고, 여우 덕분에 사라지려고 애쓰는 짓을 그만뒀어요. 여우는 연결을 원했고, 관심을 원했으며 홀로인 것보다 기분이 훨씬 좋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보름달 아래로 사뿐사뿐 걷거나 햇볕에 달궈진 바위에서 몸을 뻗을 때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고 해요. 저자는 우리에게 자연이 외로움을 치유해준다고, 자연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우리가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그 문을 활짝 열어준다고 말이에요. 붉은 여우와 같은 친구들, 소중한 자연을 우리는 더욱 사랑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