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 - 궁궐의 전각 뒤에 숨은 이야기
정표채 지음 / 리얼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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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관람하면서 제대로 답사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경복궁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익숙한 장소라고만 여겼지, 조선의 궁궐로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과정이었네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경복궁이지만 문화유산답사로 접하지 못했다면 이 책이 좋은 안내자가 될 것 같네요.

저자는 15년간 궁궐 지킴이로서 경복궁에서 해설 활동을 해왔고,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경복궁이 주인공인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책의 구성은 경복궁 답사를 위한 모든 것을 순서대로 알려주고 있어요. 경복궁에 관한 기본 상식부터 관람 동선 순으로 전각, 광화문을 따라 태원전까지 모두 열여섯 항목을 소개하고 있어요.

광화문 여장 여덟 곳 중앙의 8괘는 방향과 경복궁 건축 원리가 담겨 있다고 해요. 여장을 장식하는 문양전은 기하학적인 대칭 문양과 불꽃을 가운데 두고, 외곽에는 기하학적 무늬를 둔 장식과 가로 세로를 교차한 문자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문자 무늬가 8괘에 해당되는 거예요. 음양조합의 기호인 8괘는 세상 만물이 처음 태극이라는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했으며, 이곳으로부터 음과 양 둘로 분화한다고 믿었대요. 태극에서부터 분화하여 여덟 개의 모양을 이룬 8괘가 생성된 거죠. 우리나라 태극기의 4정 괘는 선천팔괘에서 건곤감리 사괴만을 사용한 거예요.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들어오는 남쪽 방향 한가운데에 8괘와 64괘 문양이 장식되어 있어요. 이것은 단순히 광화문 여장을 장식하기 위한 문양만이 아니라 동양사상의 핵심 사상인 주역의 괘를 규칙적으로 배치하여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우와, 이토록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니, 새삼 광화문 광장이 역사의 현장이 되었던 그날 그 순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올해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공중샷으로 광화문부터 청와대까지 모두 전망할 수 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북악산이 궁궐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1995년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 조선총독부 관저를 복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는 기가 막혔네요. 과거 일본의 만행, 경복궁과 창경궁을 비롯한 조선 궁궐 잔혹사가 떠오르면서 섬뜩했어요. 이 책에도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당했던 경복궁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어요. 흥례문을 들어서면 좌우 행랑이 있고 중앙 돌길을 따라 10여 미터 앞쪽 중앙에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의 이름은 영제교예요. 일본은 경복궁 내에 있던 많은 전각을 허물면서 영제교도 철거했는데, 그 철거된 부재를 건춘문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박물관 근처에 쌓아 방치했대요. 그 영제교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거예요. 1950년대 영제교 부재를 모아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가 분실되고 훼손되었고,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가 철거되고 2001년 흥례문 권역을 복원하면서 건춘문 안쪽에 있던 영제교를 철거하여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거예요. 과거 철거 전의 사진을 본다면 왜 철거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경복궁 금천 위에 놓여 있는 영제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정확히 설명해주는 자료가 없지만 저자는 금천 또는 어구의 기능이 명당 수의 역할이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세종 13년까지 영제교 주변과 근정전까지 일반 백성들의 출입이 가능했으나 세종 13년 이후에는 영제교 등의 백성 출입을 금하면서 궁궐과 일반 백성의 공간이 금천 기준으로 구분되었대요. 궁궐의 금천은 사찰 입구에 있는 세심천처럼 냇물을 건너면서 몸과 마음의 때를 물로 씻어 정화하여 들어오라는 의미로 보고 있어요. 지금은 말라 있다는 게 매우 아쉽네요. 영제교에 있는 석수는 뿔과 갈기, 손바닥만한 큰 비늘을 지닌 천록이며 사악한 기운을 막고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해요. 비록 인공하천이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되살렸듯이 영제교에도 명당 수가 흐른다면 어떨런지, 혼자 상상하게 되네요. 궁궐의 구석구석,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뿐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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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이기는 생각 - 90년대생, 성공한 젊은 꼰대가 외친다
리샹룽 지음, 이지수 옮김 / 책장속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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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람을 단숨에 성공시켜 주는 방법이 있을까요.

2021년 당시 서른한 살의 리샹룽은 밀리언 셀러 작가이자 '카오충', '페이츠 아카데미'의 창업자, 청년 영화감독 겸 각본가로서 나름 성공한 그가 이렇게 답하네요. "없다." (7p)

대중들의 눈에는 그의 성공만 보이겠지만 정작 그는 지난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고 이야기하네요. 열정과 노력의 결과가 성공인 것이지 거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자신이 몸담은 모든 분야에서 최대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서른한 살인 지금도 소년의 마음으로 모든 것은 이제 시작되었다고 말하다니 놀라웠어요. 나이가 몇 살이 되었든지간에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리샹룽만의 비결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지는 법. 그의 말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일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인 거예요.

이 책에는 다섯 가지 키워드가 나오는데, 그것은 용기, 선택, 지금, 생각, 꾸준함이에요.

달리기를 같이 하는 모임이 있는데, 저자가 그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모임 주장 씨에 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고 해요. 어느 정도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보폭을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얼마나 오래 달릴 예정인지, 어떻게 달려야 좋은 것인지 등등 궁금한 것들을 계속 물었더니 그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면서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더래요. 그래서 지금까지 모임 사람들과 함께 뛰고 있는데, 오랜 시간을 그와 달리면서 매일 달리기를 하는 습관이 생겼고,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고 더 오랜 시간을 뛸 수 있게 되었대요.

달리기하면 떠오르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삶의 질은 성적, 숫자, 등수 같은 고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행위 속의 유동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어쩌면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고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나는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듯 내 안을 관찰한다." (313p) 라고 했다네요. 리샹룽은 이것이 바보의 사고방식이라고 소개하면서, 바보는 시간의 힘을 믿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이런 바보들만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라고 이야기하네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자기 생각대로 꾸준히 밀고 나가면 되는 거예요. 중요한 건 '나' 자신인 것 같아요. 지금 각자의 나이, 그 나이야말로 인생을 시작하기 좋은 적기예요.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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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저에 답이 있다 - 삶의 질을 훼손하는 여성 질환 뿌리 뽑기
킴 보프니 지음, 윤혜영 옮김 / 한문화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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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반저 건강이 여성 건강의 핵심이다."

《골반저에 답이 있다》는 모든 연령대 여성의 건강을 위한 책이에요.

저자 킴 보프니는 영국의 '질 근육 강화 운동 코치 (Vagina Coach)'이며, 골반저 기능 회복 운동을 연구하는 전문가라고 해요.

이 책은 여성 건강의 핵심은 골반저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저자는 골반저는 우리 신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므로 월경을 시작할 때부터 골반저의 정확한 기능부터 골반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관리방법까지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네요. 아마 대부분의 성인 여성들은 이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거예요. 여성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건강 상식이라는 점에서 여성 건강 필독서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장에서 골반저의 해부학적 구조가 나와 있는 것은 기본부터 차근차근 알아야 골반저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골반저는 하나의 근육이 아니라 골반 앞쪽의 두덩결합(치골결합)에 연결되는 세 개의 근육층과 골반 뒤쪽의 꼬리뼈(엉치뼈 아래로 달린 척추의 맨 아랫부분), 골반의 양쪽 아랫부분을 구성하는 두 개의 궁둥뼈로 이뤄져 있어요. 골반저의 주요 기능은 체액과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막는 기능과 골반 내부 장기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요. 골반저 기능이 최적으로 작동한다는 의미는 배설 자제력이 강하고, 통증 없이 전신을 원활하게 움직인다는 뜻이에요. 만약 골반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요실금, 생리통, 변비, 골반통, 장기 탈출증 등과 같은 여성 질환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본인 스스로 골반저 기능을 정확히 이해해야 증상이 생겼을 때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어요. 물론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성인 여성뿐 아니라 사춘기 소녀들도 이 책의 내용을 반드시 알아야 해요. 이 책에는 골반기저근을 강화하는 운동법, 일상에서 복압내압을 조절하는 법,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박스 호흡법 등 골반저 강화를 위한 관리법이 알기 쉽게 잘 설명되어 있어서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어요. 건강한 삶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주저없이 실천해야 할 골반저 건강 지침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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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토피아 -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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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유토피아》 는 에밀 시오랑의 책이에요.

우선 작가에 대한 소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에밀 시오랑은 1911년 카르파티아 산맥 작은 마을 트란실바니아에서 태어났고, 당시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에 속해 있었는데 아버지가 조국이 헝가리화되는 걸 저항하는 의미로 자식들에게 라틴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해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철학과에 입학한 시오랑은 그때 불면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모국어인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사유한 모든 것을 프랑스어로 옮겨놓은 허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라고 해요.


"빌려 쓰는 남의 언어 프랑스어와 씨름했던 지난 시간은 악몽이었습니다.

... 나 같은 스키타이족이 어떻게 거기에 적응해서 

정확한 의미와 관념들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 불행하게도 돌아서기에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국어를 버리지 않았겠지요.

신선한 것과 썩어가는 것의 냄새, 햇살과 진흙, 추한 슬픔, 

당당한 상스러움이 있는 루마니아어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내가 선택해야 했던 언어가 나를 지배합니다. 

내가 쏟은 노력이 인질입니다." (14-15p)


이 책은 멀리 있는 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되는데, 저자의 고백처럼 느껴지네요. 서유럽의 복잡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저자가 느끼는 고통의 근원을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사유하는 존재인 자신을 우연히 병에 걸린 환자 혹은 문명인들 틈에 있는 침입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1950년대 후반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2022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더 소름끼치는 부분이에요. 러시아는 이미 차지하고 있는 넓은 공간을 명분으로 영토 확장 계획을 변명한다는 저자의 지적이 예리하네요. "충분히 가지고 있는 바에야 넘치게 갖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70p) 그들의 선언과 침묵이 담고 있는 무언의 역설이라는 것. 러시아는 우리가 사는 역사적 순간의 어둠을 수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라라고 표현했는데, 현재 러시아가 저지른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전 세계를 신냉전 시대로 몰고 갔어요.

욕망이 넘치는 세상에 사는 한, 사소한 악덕들이 훌륭한 미덕보다 효율이 높은 법, 행위가 지배하고 역동성이 지배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들의 정치적 측면이라는 것. 자신을 안다는 것은 행위의 저질적 동기를 아는 것이고, 본성에 새겨진 고백할 수 없는 것들을 아는 것이며, 우리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단점을 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유토피아는 부질없는 환상인 거예요. 저자의 고통과 혼란 그리고 회의주의는 깊이 상처받은 영혼의 사디즘이에요. 그 상처를 들여다볼수록 우리가 해방되지 못한 존재라는 조건을 떠올리게 되고, 반복되는 역사를 지켜보게 되네요. 유토피아와 세계 종말의 개념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이어져 왔고,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을 반영하기에 적절한 도구이기도 해요. 그러나 우리의 불행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우리 내부에서 찾아야 해요. 헛된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인 거죠.


"국민을 어떻게 보는가?" 

아이러니를 섞지 않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상가나 역사가는 자격미달이다.

국민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과 통치자의 망상을 감내하는 것이다.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고 괴롭히는 계획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 국민이 누리는 단 하나의 사치가 혁명이다." (88-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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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 -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대기획
김종우.MBC <너를 만났다> 제작진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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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MBC 창사 60주년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리즈를 봤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거예요.

이 책은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했던 과정, 그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어쩌다가 VR을 통해 고인을 만나본다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기존 VR 은 대부분 게임이나 오락의 개념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기획 자체가 파격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아요. 제작진은 VR과 휴먼의 결합이라는 기획안을 세우고,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겪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자 했대요. VR로 한 사람이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를 고민하면서,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자 목표가 되었다고 해요. 방송을 만드는 모든 제작진과 이를 돕는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한 사람을 기억해내는 작업을 했다고, 이 세상에 있던 한 아이를 기억해내서 엄마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이상한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고 하네요. 다들 감성적이었다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도 울컥해서, 몇 번이나 숨을 고르느라 멈춰야 했는데, 머릿속에 이미 그때 봤던 영상들이 떠올랐거든요.

교양 PD는 타인의 고통을 담는 경우가 많아서 고통을 착취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다고 해요. 그런 비판에 대해 제작진이 할 수 있는 일은 매번 새롭게 깊이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세심한 배려와 공감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인 것 같아요. 다만 VR업계의 새로운 콘텐츠로 바라볼 때는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봐야 할 것 같아요. 메타버스 붐으로 아바타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신선하기는커녕 뭔가 묘한 거부감이랄까, 가상의 공간에서 보여주는 아름답고 멋진 연출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네요. <너를 만났다>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과는 차별되는 지점이에요.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것을 가상 현실에서 만지고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하는 과정은 애도와 다르지 않다는 걸, 우리는 그 진심을 느꼈던 거예요.



정수 씨가 "이제 안 아파?"라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는 순간, 

아픈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첫째가 왜 그렇게 이 만남을 극구 반대했는지,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라고 했는지 몰랐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서 입었던 딸아이의 옷을 태우던 나연엄마도

 "저거 아플 때 입은 거니까... 이제 아프지 말아야지"라고 말했었다.

아픈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그냥 그리워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 아파했던 모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끝까지 대신해주지 못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보고 싶지만, 또 기억하면 눈을 질끈 감을 만큼 고통스럽다. 

건강했던 모습과 아파했던 모습이 뒤섞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141-142p)


김용균이 남긴 메모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그걸 보는 순간 그냥 슬펐다.

'아빠 치아 위 380만 원, 아래 560만 원.'

... 아들은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교대 근무를 하고, 

그다음 단계를 고민하면서 수중에 들어오는 돈으로

'아빠 치아 위 380만 원, 아래 560만 원'을 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쫄지 말고 침착하고 신중하게, 너는 하면 된다'라고 적어 두었다.

그냥 열심히 산 스물넷의 청년이 보였다.

쫄지 말고, 침착하게, 신중하게... 

김용균은 그날 어두운 발전소 안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알람을 맞춰 두고 하루하루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한 기록도 마음에 남았다.

4시, 5시... 맞춰 둔 알람 아래에는 '오늘도 긴장 침착 열의'라고 써 두었다.

저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그 끝은 어디였을까.

놀지도 못하고 준비하던 그 아이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했을까. (182-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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