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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폴리카르포 신부님 묵상, 무심의 다스림
김종필 지음, 김혜남 그림 / 포르체 / 2022년 11월
평점 :
《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 는 김종필 폴리카르포 신부님의 묵상집이에요.
저자는 성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도자로서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좌우명으로 삼아, 자연 앞에 겸손함을 느끼며 기도와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요.
이 책은 김종필 폴리카르포 신부님의 아름다운 묵상 글과 함께 정신과의사 김혜남 선생님의 따뜻한 그림이 실려 있어요.
수도회의 신부님들은 기도생활 외에도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고, 장마에 허물어진 돌 축대를 다시 쌓고, 제초 작업이나 하수구를 청소하는데, 이런 일들이 사계절이 순환하듯이 이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처음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작업복 차림의 신부님에게 신부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대요. 나무와 화초를 심고 가꾸다 보니 사계절의 변화를 잘 알아차려 분별하는 일, 자연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신부님의 글은 하루의 일기 같기도 하고, 절절한 마음이 담긴 한 편의 시 같기도 해요. 매사에 모든 사소한 일까지도 그리스도께 찬미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를 찾는 모습은 수도자의 참다운 면모를 보여주네요.
맨발로 땅의 체온을 느껴보았나요. 땅의 생명력, 그 따스한 기운을 느껴본 일이 너무 까마득하네요. 일상의 고뇌에 매여 자연이 주는 위안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 날에 걸친 고된 일 뒤끝이며 다시 스스로의 일에 몰입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흙 작업부터 시작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순수하고 부드러운 작업, 마음의 정성을 다모아 하는 작업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떠올렸네요. 채마밭에서 열무, 배추, 갓, 비타민, 케일 등과 언덕 오르는 길에 옆으로 스치는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있는 그곳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사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네요. 저자는 '껍질에서 나와 비상하는 자유로운 신뢰와 사랑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아침 햇살이고 싶습니다.'(209p)라고 했는데, 제게는 기도문으로 느껴졌네요. 우리가 한 줌의 햇살이 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겠지요. 저마다의 가슴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거슬러 다시 되잡아 행할 수 있는 시간이여.
마음이 산란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하는 순간이여.
바로 이 순간에도 시간은 줄달음쳐 뺑소니치는데,
무엇을 꼼꼼히 잘 챙겨보려는 마음의 시간이여.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공허함을 어찌할 줄 모르게 하는 시간이여.
허망한 심사를 달랠 길 없게 하는 순간이여.
문자의 앞뒤만을 돌이질 하듯이 되잡았다 되놓았다 하게 하는 순간의 시간이여.
애타는 마음을 스스로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때로 님은 너무나 멀리 있는 듯합니다.
손끝에 가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마음의 문에 검은 천을 덧씌워 놓은 듯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불길한 기운으로 들썩입니다.
내 마음에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 따사로운 숨결은 어디 있습니까?
때로 암벽에 부디짗고 잦아드는 파도의 하얀 거품처럼
의혹의 풍랑에 휩쓸려 잦아드는 슬픔은 무엇에 대한 여운입니까?
그토록 아름답던 호수와 산천경개도 밤의 어둠에 묻히거나
뽀얀 안개에 묻히거나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대자연의 면면을 마음으로 본 사람에게는 검은 어둠 너머로,
뽀얀 안개 너머로 그것에 대한 상을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소중한 체험은 인생길의 칠흑 같은 어둠이
지척을 바라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도 사랑의 길을 향하게 하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78-8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