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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평점 :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서른일곱 해의 짧은 생을 살았어요.
그는 서른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고, 살아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어요. 불우한 삶을 살았던 반 고흐는 떠나고 그의 작품은 남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인간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예술가로서는 영혼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추앙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아요.
반 고흐를 생각하면 밤 하늘의 별이 떠올라요. 영원할 것 같은 별도 때가 되면 죽는다고 해요. 잔뜩 부풀어 올라 폭발하면서 최후를 맞는데 불꽃이 터지듯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러져간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죽은 별에서 다시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거라고, 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거예요.
《반 고흐》 는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서른 번째 책이에요.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테마는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에요.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떠나는 인문기행이라는 점이 굉장한 매력 포인트예요. 우리 한국의 작가가 여행 가이드가 되어 거장이 태어나고 사랑하며 방황하고 고뇌하며 명작을 탄생시킨 공간들을 가보는 여정을 담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그림으로 된 지도 한 장이 들어있어요. 반 고흐의 생애와 예술 공간을 표시한 지도인데, 대표적인 여덟 군데를 소개하고 있어요.
반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 쥔데르트, 스무 살무렵 사회에 첫 발을 대디딘 영국 런던 구필화랑, 그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신학 공부를 하던 시기에 탄광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했던 벨기에 보리나주, 예술가의 길을 모색하던 서른 살에 돌아온 네덜란드 뉘넌, 서른세 살에 인상주의 그림들을 접했던 프랑스 파리, 예술 공동체를 꿈꾸었던 프랑스 아를, 환각에 시달리다가 요양원에 들어갔던 프랑스 생레미드프로방스, 생의 마지막을 보낸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저자는 빈센트가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프랑스의 스무 개가 넘는 도시를 떠돌며 살았던 방랑자였기에 그 모든 발자취를 따라가기 보다는 생애 마지막 3년을 주목했다고 이야기하네요. 그 이유는 본격적으로 화가 생활을 한 10년 동안 약 천 점을 그렸고, 그중 마지막 3년간 300여 점을 완성했는데, 그 300여 점이 바로 빈센트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하이라이트, 걸작이기 때문이에요.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는 여정인 동시에 유경희 작가님의 영적인 방랑기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가를 이해한다는 건 인간 본연의 삶과 존재를 탐구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저자는 '빈센트로 시작해 나에게 도달하는 영적인 여행' (21p)이었다고 표현했는데, 간접적으로나마 그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빈센트는 생애 마지막 3년을 남프랑스의 아를과 생레미에서 보냈어요. 몽마주르수도원에서 내려다본 아를 전경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매료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아를 시절에 그린 <론강 위의 별이 빛나는 밤>은 하늘에도 별이 반짝이고, 일렁이는 물결 위에도 별이 빛나고 있어요. 그는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188p)라고 했어요. 빈센트가 뇌전증을 앓았다는 것은 그림을 통해서도 드러난다는 연구가 있어요. 뇌전증 환자들은 발작 바로 전에 전조 증상을 경험하는데, 이때 환자들에게 그 모양을 그려 보라고 하면 미로 같은 둥근 원으로 화면을 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요. 빈센트 그림에서 보이는 소용돌이 모양은 의식을 잃을 때 마지막에 본 번갯불의 이미지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이런 발작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건 예술을 향한 열정,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불행했던 광기의 천재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던 화가였다고,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는 따스함이 있었나봐요.
마지막으로 의사 가셰와 빈센트가 나눈 대화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가셰 : 그림을 왜 그려요?
빈센트 : 사실 생각을 멈추려고요.
가셰 : 명상 같은 거네요.
빈센트 : 그림을 그릴 때면 생각이 안 나거든요.
가셰 : 어떤 생각이요?
빈센트 : 생각을 멈추면 그때야 비로소 느끼거든요.
내가 내 안팎 모든 것의 일부라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을 너무나 공유하고 싶어요.
예전에 예술가란 세상 보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나와 영원의 관계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가셰 : 영원이라 함은?
빈센트 : 다가올 시간요.
가셰 : 그 이야기는 곧 당신이 세상에 줄 선물이 그림이라는 거군요.
빈센트 : 그렇지 않다면 예술가가 있어서 뭐 해요?
가셰 : 그림 그릴 때는 행복하죠?
빈센트 : 대부분은요. 망칠 때만 빼고.
가셰 : 가끔은 슬퍼 보여요.
빈센트 : 성공작이 하나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파기가 있거든요.
난 슬픔 속에서 기쁨을 느껴요.
슬픔이 웃음보다 더 좋죠.
그리고 천사는 슬픈 이들 가까이에 있고,
때로는 병이 우리를 치료해 주죠.
그러나 자연히 그런 게 그림을 탄생시키죠.
가셰 : 그렇게 느껴요?
빈센트 : 어떤 때는 건강을 회복하기가 싫어요.
가끔씩 내가 미쳤다지만 약간의 광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죠.
가셰 :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빈센트 : 의사가 친구라 좋네요.
(282-28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