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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오래 따뜻하지 않았다
차현숙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11월
평점 :
"나는 OO 사람이다." 라는 문장을 완성하려면 무엇을 넣어야 할까요.
단순히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이 문장 안에는 그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담아내야 하니까요.
이 책은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저자에 관한 설명을 읽기 전부터 햇볕이 들지 않는 응달의 기운을 느꼈고, 그로 인해 끌렸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나의 스물셋 이야기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던 응달 속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어요. 인간은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에, 타인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또다른 거울인 것 같아요.
"스물셋에 시작된 우울증이 자주 재발해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여러 차례 입원했다. 가족 중에도 우울을 앓는 사람이 많았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사라지자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세상과의 통로가 닫힌 채 오랫동안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운 은둔자로 살았다.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날들 속에서 아픈 자신을 또렷이 자각하게 되었고,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도 알게 되었다. 흐려지는 정신과 기억을 붙잡으며 어떻게든 매일 쓰려고 애쓰다 보니 열정이라는 고귀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 에세이는 오랜 고통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이자 삶을 향해 내딛는 가뿐한 한 걸음이다."
- 책 앞날개 중에서
열 살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동화책이 아닌 소설책을 처음으로 몰래 읽었어요. 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게 어른들의 세계인 것 같아서 숨기고 싶었나봐요. 소설 주인공은 어른 여자였는데 몹시 슬픈 결말이었어요. 그때는 비밀을 숨기려고 아예 잊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는데, 정말 통했는지 몇 년 뒤에는 책 제목조차 생각나질 않더라고요. 그냥 초록빛 표지였다는 이미지만 기억하는데, 뜬금없이 이 책을 보다가 그때의 나, 책을 읽던 그 마음이 떠올랐어요. 혼자 동떨어진 섬 같은... 그러나 실제로는 한번도 섬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늘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고독에 빠질 틈이 없었던 거죠. 외롭고 슬플 때는 많았지만 고독하지 않았고, 우울할 때는 있었지만 우울증에 걸리진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낯설지 않은 건 누구라도 언제든지 걸릴 수 있는 감기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내 곁에는 OO 있어서 괜찮았을 뿐이라고요.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건 본인의 탓이 아니에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거죠. 그냥 아프지 않게, 낫도록 치료하면 될 일이에요. 세상에 아파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의 고통이란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견뎌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다만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훨씬 버틸 힘이 생기겠지요. 서로 안아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 따스한 온기로 살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자와 같이 너무 오래 따뜻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건 감히 상상하기 어려워서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묵묵히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무엇 때문에 아픈 개인사를 고백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우울증을 앓는다면 꼭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장 그르니에는 산문집 『섬』에서 불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하루에 세 번 무섭다. 해가 저물 때, 내가 잠들려 할 때, 그리고 잠에서 깰 때.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 나를 저버리는 세 번......"
- 장 그르니에, 『섬』 , 김화영 옮김, 민음사, 1997, 41쪽 (167p)
미국의 작가 앤드루 솔로몬은 『한낮의 우울』 에서 이렇게 썼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두 다리가 잘린 채 알프스 산맥을 오르라는 것과 같다고.
또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라고도 했다.
그는 중증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제약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그를 돌보았다.
아버지는 프로작이라는 약을 아들에게 주었다. 다른 약을 개발하려다
항우울제가 된 프로작을 그는 평생 먹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두 번 태어나게 해 준 아버지에게 감사의 글을 썼다. (17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