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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 -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월
평점 :
《글로 지은 집》은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인 강인숙 님의 책이에요.
저자는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고, 이 책은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예요.
그동안 이어령 님의 책들은 읽어봤지만 강인숙 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다가, 부부과 함께 살아온 집 이야기라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내 땅과 내 집에 대한 갈망이 큰 탓에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려왔어요. 그로 인해 집의 개념을 시세, 자산가치,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랫말처럼 삶의 중요한 가치가 압축되어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집에서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고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곳, 그래서 집은 개인의 철학을 반영하며 그 사람만의 세계를 표출하는 장소인 거예요.
이 책에는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에서 시작해 삼선교의 북향 방, 대가족 이야기, 청파동 1가, 청파동 3가의 이층집, 한강로 2가 100번지, 신당동 304-194, 성북동 1가의 이층집, 평창동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1974년 평창동에 정착한 후 저자는 줄곧 그곳에 살고 있어요. 중간에 재건축을 위해 잠시 옮겼을 뿐 사십칠 년간 같은 주소, 평창동 499-3번지, 지금은 평창 30길 81번지에 살고 있어요. 거기 새로 지은 집이 부부의 마지막 집이에요. 박물관을 지으면서 박물관 위주로 공간을 분할하여 주거 공간은 삼십오 평으로 줄어들고, 건축비가 모자라 공간 배치가 엉망인 이쁘지 않은 건물이 되었지만 저자는 이 집을 '너와 나의 쉼터'라고 표현했어요.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주택으로 쓰던 부분도 박물관에 기증할 거라고, 이층에 있는 이어령 선생님의 서재는 있는 그대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이 선생님의 자료는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관하고 싶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자연 속에 문학을 생각하는 장소이자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 바로 '글로 지은 집'이었네요. 살아온 세월 속 희로애락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말미에는 "신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평창동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우니 어느 철에 가도 무방하지만, 이왕이면 송홧가루가 시폰chiffon 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387p)라고 끝맺고 있어요. 아름다운 마무리였네요. 덕분에 나의 집을 어떤 가치로 정의하고 어떻게 생활하느냐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남들과 비교하며 더 크고 넓고 멋진 집을 꿈꾸는 대신 마음 붙일 수 있는 따스한 온기를 품은 집을 원해요.
... 지금의 영인문학관 건물은 정말로 이어령 선생 한 사람이 '글로 지은 집'이다.
이십 년간의 그의 문학에 대한 대가가 거기 모두 들어가 있다. 그 건물은 그의 원고지 매수의 가시적可視的인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그 건물을 볼 때마다 눈물겹다. 문학관을 지으면서 주거 공간을 삼십오 평으로 줄였다. 그리고 같은 크기로 이어령 선생의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해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 주던 1974년이었다. 가능하다면 그에게 희랍 신전 스타일의 기념관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나의 오랜 꿈이다. 이어령 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다. (1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