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범죄 대책과 시라타카 아마네
가지나가 마사시 지음, 김은모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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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몰입해서 술술 책장을 넘기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는 이야기.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의 양면인 것 같아요.

《조직범죄 대책과 시라타카 아마네》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가지나가 마사시의 대표작이라고 해요.

일본에서는 <하쿠타카 시라타카 아마네의 수사파일>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다고 하네요. 추리소설의 매력은 주인공이 내뿜는 아우라와 독특한 사건 전개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시라타카 아마네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에요. 처음부터 입에 붙질 않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이름을 불러봤네요.

시.라.타.카.아.마.네. 한자를 보니 白 鷹 雨 音, 흰백 매응 비우 소리음으로 하얀 매와 빗소리를 뜻해요. 뭔가 외롭지만 고고한 느낌이랄까요.

굳이 이름에 집착한 이유는 작가의 작명에는 분명 숨은 뜻이 있을 테니까, 역시나 소설 속에 이름에 관한 내용을 언급했더군요.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시라타카 아마네를 기억하게 될 거예요. 사명감과 투지를 지닌 경찰관의 모습으로 말이죠.


"매의 눈이라."

"네?"

"서장한테 자네 소문은 들었어. 이름대로 매 같은 녀석이라고.

높은 곳에서 사건을 조망하다 핵심을 찾아내면 급강하한다나.

그리고 단독 행동을 좋아한다는 점도 매와 똑같다더군." (120p)


아마네라고 이름을 지은 건 하치오지의 작은 조산원에서 태어났을 때,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라고 부모님에게 들었다.

비가 내릴 때는 밤에도 울지 않고 잘 잤다고 한다.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비 내리는 날에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175p)


한때 우리나라에는 경찰의 부실한 대응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어요. 피의자의 범행을 목격하고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하고, 피습상황을 전달받았음에도 현장에서 추가 범행을 제지하거나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능력 부족, 사명감 부재였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건 사명감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시민 입장에서 못미더운 경찰을 탓했는데 정작 경찰관들의 노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 소설에서도 아마네는 피해자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던 레이나짱 사건 때문에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개인의 행복보다는 형사로서의 사명감이 앞선 아마네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녀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친구인데 말이죠. 마블영화처럼 영웅이 등장해서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하고, 악당을 처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초조지 연쇄살인 사건은 범인이 복어독 테트로도톡신(TTX)으로 피해자들을 독살했는데, 범행 현장이 특이했어요.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원, 광장, 골목길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왜 범인은 모두가 볼 수 있는 그곳을 선택했을까요. 범행 현장에 답이 있다, 그 답이 밝혀지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어요.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각각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쩔 수 없는, 가슴 아픈 비극이네요.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요.


"또 잊힐까?"

"이번 사건? 뭐, 그렇겠지. 사람은 결국 잊어버려."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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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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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TI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처음엔 재미로 생각했는데 걔 중에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어서 좀 걱정되더라고요.  모 아니면 도, 딱잘라 구분짓기 어려운 성격도 있는 법인데, MBTI 유형을 맹신하여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선 안 될 것 같아요.

MBTI 를 개발한 어머니 캐서린 브릭스와 딸 이저벨 마이어스는 둘다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제 심리검사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어요. 무엇보다도 MBTI 문항은 응답자 스스로 판단하여 점수를 매기는 자기보고형 검사라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다를 수 있어요. 또한 MBTI 이론은 카를 융의 심리유형론을 토대로 비전문가가 만든 지표라는 점에서 과학보다는 철학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객관적인 성격진단 도구로서보다는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는 거울로서 활용하자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에요.

"나는 고전 속 어떤 인물일까요?"

저자는 전 세계인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고전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MBTI 유형과 4기능의 발현 양상을 분석했다고 해요.

이 책에는 위대한 작가들의 대표작에서 모두 서른두 명의 인물들을 선별하여 MBTI 유형별로 소개하고 있어요. 다들 알고 있는 MBTI 유형 분류를 정리하자면, 외향(E) / 내향( I ), 감각(S) / 직관(N), 사고(T) / 감정(F), 판단(J) / 인식(P) 인데, 여기에 추가된 MBTI 기본 4기능이 핵심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의 언행과 심리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MBTI 의 4기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MBTI의 기본 4기능은 다음과 같아요. ① 주기능 (정체성 : 가장 강력하고 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기능), ② 부기능 (조력자 : 두 번째로 강력하며 주기능을 보조하는 기능), ③ 3차 기능 (놀이 :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일상 환기식으로 부담없이 자주 쓰게 되는 기능, 불건강할 경우 부기능을 건너뛰고 3차 기능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임), ④ 열등기능 (약점 : 노력으로도 개선되지 않는 기능, 포기하는 게 편함) (10p)

이미 읽었던 작품도 있지만 제목과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아는 작품은 인물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 덕분에 독서 욕구가 상승했네요. 고전 명작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가! 직접 부딪히며 경험할 수도 있지만 나와는 다른 캐릭터의 삶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인생 교과서인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인물은 누구인지, 닮고 싶은 인물은 어떤 성격인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네요.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보면 그의 성향과 가치관, 심리 상태가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성격이 팔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타고난 성격대로 그냥 살아간다면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닐까요. 기왕이면 좋은 성격으로 바꿔서 원하는 인생을 살면 좋잖아요.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더 나은 나로 발전할 수 있는 똑똑한 MBTI 활용법을 배웠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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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드 아웃 -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세계 경제를 파괴하는 공급망 위기와 부의 미래
제임스 리카즈 지음, 조율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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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드 아웃》은 금융 전문가 제임스 리카즈의 책이에요.

이 책은 2019년에 시작된 글로벌 공급사슬(공급망) 붕괴와 새로운 글로벌 공급사슬을 구축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다루고 있어요.

소비자가 겪고 있는 물건 부족 현상, 솔드 아웃은 왜 지속되는 걸까요. 공급사슬은 반도체부터 자동차 공장, 물류 운송, 고객 서비스까지 뒤얽혀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공급사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그 증거와 원인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저자는 공급사슬에서 생기는 문제를 알아차릴 수는 있어도 해결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네요. 왜 그럴까요.

단순한 평면 공간 안에서 붕괴가 일어나면 시스템은 새롭게 재건될 수 있지만 복합적이고 동적인 시스템이 무너지면 다시 합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붕괴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걸리고 시스템의 규모가 클수록 이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고 해요. 공급사슬 1.0 (1989~2019년)에서 공급사슬 2.0 (2020년~)으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기존의 공급사슬이 붕괴하고 새로운 공급사슬이 만들어졌는데, 새로운 공급사슬은 기존의 공급사슬과 유사점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크고, 공급사슬을 재건하는 과정은 최소 5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요. 그동안의 공급사슬은 신뢰하기 어려우며, 대체할 수 있는 공급사슬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의 공급사슬이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보여요. 공급사슬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계속되는 무역 전쟁, 물류 병목현상, 팬데믹과 공공 정책 대응 실패, 에너지 위기, 기후 위기론 때문에 이전의 구조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위기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공급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 관한 전망을 보면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인 판단이 아닌가 싶어요. 중국의 실패를 곧 마주하리라 간주하면서 국제무역의 공급사슬이 재편되고 있다는 거예요. 글로벌 무역 강국들이 중국과 갈라서고 대체 공급 채널을 생성하는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서 단정짓긴 어려운 것 같아요.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싸우지 않을 거라고 밝혔지만 물밑작업을 해왔고, 가장 광범위한 경제 제재를 가했어요. 러시아는 곧장 미국과 EU, 그리고 그들의 동맹국에 보복을 시작했어요.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 효과는 전략상의 목표와 비교해보면 총체적 실패였지만 글로벌 공급사슬과 물가상승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저자는 공급사슬 붕괴와 금전적 혼란에 대한 해결책은 민주적 규범을 지키고 인권과 공화주의적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국가들끼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과연 자국 이익보다 인권과 신뢰를 키우는 쪽으로 기울까요. 현재로서 확실한 건 공급사슬 1.0 의 막은 내렸고 혼란은 한동안 지속될 거라는 전망이에요. 이러한 변화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솔드 아웃》이야말로 돌파구를 모색하는 출발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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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 오디세이 - 미지의 나를 찾아서
우주살롱 지음 / 비엠케이(BM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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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으로 해가 지면, 밤에는 달이 뜨고 별들이 빛나지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관측했고, 각 별들이 매일 같은 위치에서 뜨고 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북쪽 하늘에는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별들이 있어요. 북극성과 지평선 사이에 있는 별들은 하루종일 땅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지지 않는 별이에요. 북극성은 항상 북쪽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이라서 나침반 역할을 했어요. 북극성을 찾으려면 북쪽 밤하늘에 보이는 별자리인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자리를 이용하면 돼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가 지평선 위로 떠오르면 곧 우기가 시작되고 나일강이 범람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는 농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걸 의미했어요. 이렇듯 별의 운행을 보고 미래에 일어날 자연현상을 예측하는 패턴 읽기가 사람의 운명과 결부되어 점성술이 탄생했다고 해요.

요즘은 MBTI 가 대세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혈액형과 별자리로 알아보는 성격 유형이 즐거운 수다 주제가 되곤 했어요. 오늘날의 별자리 명칭은 오래전 각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게 사용되던 것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생긴 거래요. 국제천문연맹은 하늘 천체에 황도를 따라 12개, 북반구 하늘에 28개, 남반구 하늘에 48개로 총 88개의 별자리를 확정하였고, 모든 별자리 이름은 라틴어 고유의 이름이거나 단어로 되어 있어요. 대부분 그리스 신화와 라틴어에 기원을 두고 있어 별자리에 얽힌 설화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등장하여 흥미롭네요.

다음 세 가지 단어 중 하나라도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나 자신, 별자리 그리고 인생.

《별자리 오디세이》는 '미지의 나를 찾아가는 별자리 여정'이라 부제를 단 책이에요.

'나'를 알아가는 데 별자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바로 책속에 그 답이 있어요. 별로 점을 친다는 의미의 점성술, 점성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는 정말 간단하게 별자리 출생 차트를 만드는 방법과 해설이 나와 있어요. 현대 서양 점성술에서 사용하는 황도12궁은 각각 탄생 시기를 나타내며 사람의 성격을 분석하는 자료인데, 동양의 12간지로 하는 띠별 운세와 비슷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달라요. 모든 행성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에너지 양상과 관계를 살펴 조화로운 균형을 찾고,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나를 파악할 수 있어요. 천문해석학자 리즈 그린이 해석자로 참여한 웹사이트인 어스트로닷컴을 통해 무료 출생 차트를 만들 수 있어요. 그 별자리 출생 차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단계별로 친절하게 나와 있어서 내 성향과 특징을 확인할 수 있어요. 묘하게 잘 들어맞아서 신기했어요. 별자리 출생 차트를 해석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다보니 숨겨진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주제인 '나'와 재미있는 별자리 출생 차트의 조합, 색다른 경험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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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 덕수궁 인문여행 시리즈 10
이향우 글.그림, 나각순 감수 / 인문산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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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옆 정동길은 오래전부터 즐겨 거닐던 곳이에요.

추억의 장소라서 그곳을 떠올리면 늘 기분이 좋아져요. 근래 우리몇 년간은 발길이 뜸했던 터라 이 책을 보고 무척 반가웠네요.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덕수궁》은 인문여행 시리즈 열 번째 책이에요.

저자는 우리궁궐지킴이와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해요. 원래 동일한 제목의 책을 2014년 출간했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달라진 모습들을 전하기 위해 2023년 개정판이 나온 거예요. 현재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은 월대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고 고종 황제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 광명문도 제자리에 세워졌고, 석조전 뒤편의 서양식 건축물 돈덕전은 내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해요.

이 책은 우리 궁궐 덕수궁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인문산책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선 덕수궁의 명칭 변화는 해당 시기의 역사를 엿볼 수 있어요. 1593년부터 1611년까지는 정릉동 행궁으로 불렸는데, 정릉동은 조선 초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있던 지역명에서 유래되었대요.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 갔다가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궁궐들이 소실되어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던 곳을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광해군이 1608년 이곳에서 즉위하고 3년 후인 1611년에 임시 행궁을 경운궁이라 이름 지었대요. 경운궁이 다시 궁궐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예요.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새로 환구단을 지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 황제의 자리에 올랐어요. 대한제국 선포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분명히 밝혀 정국을 주도하고자 한 고종의 선택이자 강력한 의자였어요. 대한제국의 위상에 맞게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워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고종 당시의 덕수궁 권역은 현재 정동과 시청 앞 일대를 아우르는 규모로 현재 궁역의 3배 가까이에 이르렀다고 해요. 그러나 고종의 의지와 시도는 일제에 의해 좌절되었고, 1907년 고종은 강압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났어요. 이때부터 경운궁은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고종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공덕을 칭송하여 올리는 칭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된 거예요. 고종은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빠르게 해체, 축소되었어요. 그래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어요. 석조전은 국권으로 빼앗긴 1910년 준공되어 대한제국의 정전으로 사용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건물이자 황제가 그토록 원했던 근대화의 꿈이 담겨 있어요.

덕수궁 곳곳에 숨은 역사를 알고 나면 그곳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책속에 담긴 예쁜 지도와 부록에 실린 덕수궁 십경, 정동길 십경은 아름다운 우리 궁궐의 매력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게 해주네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그곳이 힐링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건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에요. 뛰어난 민족의 얼을 되살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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