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경제편 - 벗겼다,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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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경제편이 나왔어요.

tvN 교양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 에서 경제에 관한 사건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네요.

이 책에서는 열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중세 유럽의 메디치 가문 이야기부터 영국 노예무역, 오스만 제국의 흥망성쇠와 커피,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기축통화 달러 이야기, 영국 산업혁명, 경제 도시 상하이의 수난사, 석유 패권 전쟁, 미국의 지하 세계를 지배한 마피아 조직,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실체인 마약 카르텔, 일본 경제 붕괴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경제사를 만날 수 있어요.

세계 경제 질서를 뒤흔든 결정적인 사건들을 통해 돈과 권력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역사를 되짚어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근데 요즘 세계 정세와 국내 사정을 보면 경제보다 앞선 것이 외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 정부의 외교정책으로 중국과의 무역 적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무너진 균형외교로 인해 여기저기 경제 분야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어요. IMF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가 올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의 화폐인 위안화를 석유 대금 결제 수단으로 고려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실제로 실행된다면 달러 패권은 약화되고 미-중 경쟁 판도에도 영향을 줄 텐데 우리나라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판이네요. 강대국의 행보에 주목하되 끌려가서는 안 되는데 현재 상황은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다가 국내 반도체 업계가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미래 경제는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라고 하는데 그 중요한 기둥이 흔들리고 있네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에서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고,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멀어진 틈을 타 어부지리 전략으로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꾀하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타산지석 삼아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은 일본 경제를 돕는 발판 역할이라니... 세계 역사 속 경제 이야기,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를 보면서 추악한 권력의 최후를 떠올렸어요. 돈과 욕망의 역사가 알려주는 따끔한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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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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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명주를 만난다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쏟아지는 빗속에 홀로 서 있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우산 아래 있다고 해도 그 비를 맞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어요.

이 소설은 어찌할 수 없는 불행의 굴레에 갇힌 이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은 문미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해요.

고령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노인 간병, 돌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어요. 가족이 모든 걸 떠안기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인데, 실질적인 관리 시스템은 전무하다는 게 현실이에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인식해야 할 때인 거죠.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뜨악했는데 점점 읽어나갈수록 두 주인공의 참혹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임대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살아가는 명주와 준성, 그들은 간병과 돌봄이라는 삶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며 살아왔고,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어요. 힘들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더 버텨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히 누가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요. 치열하게 살아남으려고 애썼을 뿐...

시련 혹은 불행이라는 겨울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요. 명주는 엄청난 일도 농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그녀의 말투 때문에 준성도 견딜 수 있었어요. 소리도 없이 내리는 눈송이들, 엄청나게 쌓여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뒤에는 너무 늦다는 걸 알면서도 속수무책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소설은 도로 위에 내리는 눈발이 더 굵어질 때 명주와 준성이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마치 두 사람을 위한 노래처럼 느껴지네요. 쌓여가는 하얀 눈이 달갑지 않지만 때로는 눈으로 덮인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추운 겨울을 잘 보내려면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요. 늘 춥고 외로웠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희미하게 미소지을 수 있었네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냐고 묻고 싶지만 그들이 활짝 웃는 모습 덕분에 조금 안심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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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어요 -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들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안해린 옮김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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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슬픔, 그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위로를 받을 때도 있고, 위로할 때도 있지만 늘 어려웠어요. 그래서 차라리 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그것 역시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혼자라고 느껴진다고 해서 혼자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내가 여기 있어요》 는 프랑스가 사랑하는 정신의학자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책이에요.

첫 장에 적힌 "위로가 절실하다"라는 문장이 크게 와닿았어요. 저자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위로에 대해 무지했음을 고백하고 있어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작가로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용기를 주며 격려했던 자신이 중병을 앓게 되자 정반대의 입장이 되었고, 자신에게도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일시적인 격려보다 강력한 위로를 발견한 덕분에 평온해졌고 살아있음에 더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네요.

"위로는 폭풍과 공존하는 방법이자, 사랑의 고백이며, 아름다움과 역경을 모두 끌어안은

이 세상과 다시 이어주는 감미로운 노래이다.

위로는 마치 붉은 실처럼 탄생부터 죽음까지 우리의 삶 내내 이어진다.

우리는 평생 위로를 가까이하며 어릴 때는 솔직하게,

성인이 되어서는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나 내심 위로를 필요로 한다.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가 바라는 것도, 줄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위로뿐이다.

위로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 잠시나마 절망과 체념에서 벗어나게 하며,

살며시 삶의 의욕을 다시금 불어넣어 준다." (11p)

이 책은 위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주네요. 잠시나마 위로를 쓸모 없다고 느꼈던 건 진정한 위로의 가치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위로란 무엇인가, 위로는 곹오을 덜어주고 싶어 하는 거예요. 위로의 목적은 해결책을 찾아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감정을 경감시키는 거예요. 위로받는 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집중하며 마음을 어루만지는 거예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로의 힘은 놀라워요. 고통이 클수록 위로가 제 길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위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건 희망이며, 위로받는 사람이 슬픔과 고통의 확신에서 벗어나 계속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그래서 저자는 위로가 마법의 묘약이 아니라 어둠 속을 파고드는 빛이라고, 그 빛이 우리를 버틸 수 있게, 살아내게 만든다고 이야기하네요.

인간이라면 피해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어요. 고통, 노화, 죽음이에요. 언젠가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우리를 찾아와 위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거예요. 고통은 우리를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단절시키는데, 위로는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위로의 본질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면서 어떻게 위로를 주고 받는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위로를 잘 못하는 이유는 본인의 감정에 당황했기 때문인데, 평소 감정을 억누르고 차단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그럴 수 있어요. 위로의 기술은 공감의 기술이라서 타인의 감정이 메아리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해요. 우리에게는 수많은 위로의 길이 열려 있고, 그 길을 선택하는 건 우리 몫이에요. 누구도 그 길을 대신 가줄 순 없어요. 니체는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이 때로는 우리를 더욱 약하고 슬프며 우울하게 만든다." (225p) 라고 이야기하네요. 우리를 죽이지 않는 고통이 어떻게 행복까지 막아버리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돼요. 고통받고, 고통받고, 고통받다가 결국 죽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이해할수록 괴로워하는 이가 있고 경이에 찬 사람이 있어요. 후자는 위로를 받아들였고, 삶과 사람을 다시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회복한 거예요. 회복력이든, 버텨낼 의지든, 우리 존재의 위대한 자원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 고통과 시련에 맞서는 모든 힘의 원천은 사랑과 그것이 주는 위로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사는 동안 위로를 평생의 과업으로 여겨야 해요. 《내가 여기 있어요》 는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위로'의 지혜를 알려주는 값진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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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나, 감정에게 - 적는 즉시 감정이 정리되는 Q&A 다이어리북
김민경 지음 / 호우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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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분이 어때요?"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죠. 근데 의외로 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자신의 기분을 바로 말할 수 없다는 건 본인의 감정을 읽지 못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왜 그럴까요. 내 감정인데 나도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또 하나의 나, 감정에게》 는 나만을 위한 Q&A 다이어리북이에요.

이 책은 날마다 다른 이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민경 원장님이 알려주는 감정 사용설명서라고 볼 수 있어요. 저자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감정을 가족들에게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숨겨진 속감정을 찾아본다고 해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그것을 안전한 사람에게 터놓고 표현했을 때 그 감정은 위로받고 옅어지며, 타인의 깊은 감정도 더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고 하네요. 평소와 다른 몸의 감각을 느꼈거나 유난히 방어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면 내 안의 진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자신의 마음과 몸의 상태를 점검해봐야 해요. 그 방법은 이미 알려진 감정 단어와 내 상태를 연결시켜 보는 것으로 시작해볼 수 있어요. 여기에서 다룰 감정은 모두 열 가지예요. 우울, 분노, 슬픔, 불안, 행복, 수치심, 감사, 질투, 외로움, 사랑.

어떻게 이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친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네요. 핵심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살펴보고 글로 표현해보는 것, 즉 감정 다이어리를 작성해보는 거예요. 책의 구성은 열 가지 감정에 관한 질문들이 나와 있어서 각각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적도록 되어 있어요. Q&A 는 크게 세 단계인 '마주보기 - 깊이 보기 - 흘려보내기' 이며 실제 상담처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자세히 말하듯 적으면 돼요. 내 안의 숨은 감정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짧더라도 최대한 서술형으로 적는 것이 좋아요.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고,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 질문은 넘기거나 '나의 경우는 ~ 하다'라고 쓰면 돼요. 중간에 '감정 정리 팁'이라고 해서 정신과 전문의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네요.

"신체의 반응을 통해 내 감정을 같이 느껴볼 수 있습니다. 분노의 감정은 우리 몸이 싸울 준비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혈압이 오르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상기되면서 편두통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항상 화가 나 있고 긴장한 상태라면 몸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쳐서 혈압이 오를 수도 있지요. 한 번 화가 나면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고통스럽나요? 화를 내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한번 나온 호르몬들은 사라지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그러는 동안에 화가 더 커지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가 가라앉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근육을 긴장시키고, 때때로 통증을 느끼게 하고, 장을 불편하게 합니다. 불편한 신체 감각을 통해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화가 더 나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긴장한 몸을 조금씩 이완시켜봅니다. 통증이 많이 느껴지는 몸의 부위에 집중해보세요. 어깨에서 뻐근함과 긴장이 느껴진다면 최대한 어깨 근육이 풀어지도록 천천히 호흡하면서 이완시킵니다. 그런 다음 감정에 변화가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78p)

매일 일기를 적는 습관이 없다면 쓰는 행위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책은 친절한 Q&A 방식이라서 감정을 기록하는 일이 크게 부담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책을 읽고 적는 과정이 혼자가 아니라 저자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편안하고 좋았어요. 신기한 건 내 감정을 알게 될수록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거예요. 은밀하고 특별한 감정 수업을 받은 것 같아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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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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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냥 바라기만 해요? 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기만 하세요?

왜 모든 일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있는 거예요?" (252p)



윌라 드레이크를 향한 뼈 때리는 조언이에요. 

이 말에 움찔했다면 당신에게 꼭 맞는 소설을 만난 거예요.

《클락 댄스》는 앤 타일러의 소설이에요.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으니까? 흥미로운 이야기에 끌리기 때문이에요. 억지로 우리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만드는 힘이 있어요. 마치 주인공이 된 듯,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느끼다가 문득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솔직한 선택이었느냐인 것 같아요. 과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는지, 진심으로 원했는지를 스스로 물어야 해요.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망설이고 주저하다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앤 타일러는 주인공 윌라 드레이크의 인생을 열한 살, 스물한 살, 마흔한 살 그리고 예순한 살의 모습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어요.

똑같은 소설도 언제 어느 때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이 소설은 시간 차를 두고 여러 번 읽기를 추천해요. 그래야 윌라의 인생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미처 몰랐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어요. 책 뒤표지에는 이 소설을 "희망과 자기 발견, 또 다른 기회에 관한 이야기" 라면서 "윌라 드레이크에게는 인생을 바꿀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라는 친절한 소개글이 적혀 있어요. 그래서 타임슬립과 같은 특별한 장치가 숨어 있다고 상상했어요. 미리 귀띔해주자면 스펙타클하거나 판타지적인 요소는 없어요. 만약 그런 부분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겠지만 순수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면 놀라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인데도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이 소설에서 윌라 드레이크가 사와로 기둥 선인장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겉보기에 윌라는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현모양처인데 그 이면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주변을 위해 희생하는 경향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내면 아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열한 살의 윌라가 경험했던 일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벌어졌던 사고였고, 그 충격이 평생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한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사와로 기둥 선인장은 윌라 드레이크의 내면 자아상일지도 모르겠네요. 처음엔 윌라가 자신을 속인 채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생존을 위한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선인장과 달리, 윌라는 자신의 터전을 바꿀 수 있어요. 약간의 용기만 낼 수 있다면 말이죠.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소설은 잠들었던 용기를 깨우라고, 힘차게 응원하고 있어요.



윌라가 드니즈에게 화분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기둥 선인장 본 적 있어요?"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원래는 아주 큰 선인장이에요. 키가 최소한 6~9미터 정도 될 거예요."

윌라는 선인장을 보호하듯이, 거의 방어적으로 말했다.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호랑이를 볼 때와 같은 동정심을 느꼈다.

사와로 기둥 선인장은 귀여운 식물이 아니었다!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먼 웅장한 식물인데!

원래 사와로 선인장은 아파치의 화살이 난무하던 시절부터 현대식 상점들이 들어설 때까지 모든 걸 담담하게 참고 견딘 차분하고 인내심 많은 식물이었다. 그러나 피터는 자기가 미니 선인장을 사온 것에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윌라는 인사를 해야 했다.

"고마워요, 여보."

"천만에." 피터가 말했다. (173-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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