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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그림 읽기 - 고요히 치열했던
이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북적대는 세상, 그곳의 떠들썩함과는 달리 나의 하루하루는 참 고요하고 치열했다.
줄 위의 숭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글을 썼다. 「줄타기 곡예사」 의 그녀는 특별하지 않은 이가 고귀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기 선택에 충실한 삶. 자기만 아는 희열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만 내려올 마음이 아니라면 계속되는 불안과 불만에 제 발을 묶어두기보다 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에 빠져드는 편이 더 숭고한 결정이었다." (7p)
《사적인 그림 읽기》 는 이가은님의 책이에요.
책 제목에는 "고요히 치열했던"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요. 저자는 학업과 진로 사이에서 흔들리던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고요히 반복되는 삶의 기록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그 결과물이라고 하네요. 미디어를 공부하다가 역사학에 뛰어들면서부터 미술 감상을 즐기게 됐는데, 저자에겐 그림이 유용한 사료이자 상상력의 소재가 되었대요. 그림 속 인물, 풍경, 소품 하나하나에 사연과 감정이 궁금했고, 역사서를 읽듯이 그림을 읽다가 사색의 시간으로 이어졌다고 해요. 이 책은 미술, 역사, 개인의 사색이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똑같은 그림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저자의 시선으로 본 그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나만의 그림 읽기가
처음 소개한 그림은 장루이 포랭의 「줄타기 곡예사」 인데 19세기 파리 야외 서커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에요. 발레복 같은 하얀 스커트를 입은 곡예사가 장대를 쥐고 줄 위에 서 있고, 줄 아래에는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아무도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아요. 어쩐지 곡예사만 다른 공간에 있는 듯, 그림 속 여인은 줄 위에 집중한 채 흔들림 없이 당당해보여요. 저자는 곡예사를 통해 고요하고 치열한 순간의 소중함을 발견한 거예요.
제 눈길을 사로잡은 그림은 마티아스 스톰의 「촛불 밑에서 독서하는 젊은 남자」 (1630년경, 스웨덴국립미술관)와 헤릿 다우의 「독서하는 노파」 (1631년경~32년경,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예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는 홀로 독서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고 해요. 서양사에서 독서의 대중화를 논할 때마다 두 가지 사건을 언급하는데, 하나는 기술적인 사건인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기술의 힘을 빌려 발생한 종교개혁이에요. 종교개혁 이후 글을 배우려는 민중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독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 거죠. 독서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아주 제한적이었던 시절에 책은 고가의 귀중품이었는데 지금의 책들은 너무 소홀히 취급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독서 인구는 꾸준히 감소 추세라니 말이죠. 책 읽는 사람을 그린 두 그림을 보면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몰입감이 강렬하게 느껴져요. 흔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우리는 그 소중함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할 것 같아요. 외롭지 않은 고독, 아름답게 치열할 것, 고요히 바라보는 시간까지 저자가 읽어준 그림들을 감상하며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