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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평점 :
어린 시절 아빠에게 사람만큼 커다란 곰 인형을 갖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어요.
몸집은 제법 컸지만 털이 너무 길고 축 늘어진 곰 인형은 제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고, 끝내 정을 주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예쁜 소녀 인형도 받았는데, 눕히면 눈을 감았다가 앉으면 눈을 번쩍 뜨는 모습이 무서워서 친해지지 못했어요.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떠는 강아지와는 달리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인형에게는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착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잠들기 전 마음을 달래주는 건 따스한 손길이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어 있는 마음 한 조각을 찾아냈어요.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조예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일단 굉장히 몰입감이 좋아서 단숨에 읽어나간 작품이에요. 곰 인형 속에 영혼이 들어갔다는 설정이 흔해빠진 괴담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어요. 묻지마 범죄 유형으로 볼 수 있는 독극물 사건이 고급 아파트에서 벌어졌고, 사건의 피해자들과 관련된 유가족들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펼쳐지네요. 주인공 화영은 독극물 사건으로 엄마를 잃었고, 홀로 생활하다가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영진 무리에 합류하게 되는데... 화영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프고 속상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돌봐줄 가족도 없는 열일곱 살 화영에게 세상은 잔인하고 살벌한 무법천지 같아요. 화영이가 깨달은 건 이 시대에 새로운 신이자 흉기는 돈이라는 거예요. 돈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돈으로 끝맺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소설의 끝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
곰 인형이라고 하면 유명한 테디베어를 떠올릴 텐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곰 인형은 주방용품 회사가 광고를 위해 임시로 만든 캐릭터였는데 대히트를 치면서 굿즈와 실물 인형으로 판매된 '해피 스마일 베어'예요. 화영이 초등학생이던 열세 살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인데, 집이 폭삭 망한 뒤에는 엄마와 하루 종일 그 곰 인형에 눈동자를 붙이는 일을 했어요. 가난했지만 엄마와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고, 화영은 순수하게 그 일을 좋아했어요. 알록달록한 곰 인형들에게 플라스틱 눈을 붙여주는 행위가 꼭 생명을 불어넣는 것처럼 느껴졌고,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해피 스마일 베어의 따뜻함과 순수함은 바로 그 눈에서 나왔으니까.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화영은 틈나면 곰 인형을 꺼내 눈을 꿰맸고, 주변 아이들에게 '눈깔 귀신'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어요. 화영은 그 별명이 꽤 마음에 들었고, 아주 잠깐이지만 베어의 눈알을 꿰던 친구도 있었어요. 엄마의 죽음으로 모든 걸 잃게 된 화영의 삶은 어둠 뿐이었는데,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해피 스마일 베어가 나타난 거예요. 마지막 장면에서 "해피 스마일 베어는 죽지 않아." (358p) 라는 말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그래서 다행이라고요. 살아남기를 바랐으니까요.
"이곳에는 죽은 자들의 악의가 가득해.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는 게 아니라 진해지지.
이 이야기는 그래서 중요해.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해.
그 구덩이에서, 해소되지 못한 삿된 감정으로부터." (255p)
"후회해 본 적 없는 사람은 후회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 대신 되돌리려 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를 붙잡고
끊임없이...... 손을 댈수록 더 망가진다는 걸 모르는 채로." (286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