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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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어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붙여놓으니 뭔가 공간에도 표정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는 서울의 못생긴 곳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저자는 건축학도 출신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어서 건축가의 꿈을 접은 뒤,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고 해요. 2023년부터 시사 뉴스레터 <점선면>을 발행 중이며, 틈틈이 브런치스토리 등 온라인 플랫폼에 건축과 도시 관련 글을 쓰고 있대요. 이 책은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처음 못생긴 서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서울 모 지역에서 구청장을 지낸 사람과 그 지역에서 진행된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중 재개발 후 원주민 재정착율이 10명 중 1명도 안 될 정도로 낮다는 얘길 들었고, 마침 저자가 그 재개발로 만든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래요. 이미 1년 가까이 산 동네인데 새삼 이전에는 어떤 동네였고,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궁금해졌대요. 서울은 유난히 재개발·재건축으로 동네가 완전히 변하는 곳이 많으니까, 기자로서 서울시청을 출입하며 취재한 경험이 여정을 설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 토막촌으로 유명한 창신동, 과거 행당동의 철거현장, 신림동 반지하 주택과 종로 고시원 참사, 다산동의 골목대장들, 창신동 봉제공장들, 사라진 청계천 공구상가, 현재 진행 중인 청계천 일대의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저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서울은 유산을 망각한 도시예요. 세운상가를 마주보는 자리에 종묘가 있는데, 세계문화유산 등재 약 10년 만인 2006년, 종묘는 위험에 처한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해요. 2004년 서울시가 세운4구역을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재개발 분위기가 고조됐는데, 재개발이 종묘의 문화유산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거죠. 세운4구역 사업을 지휘한 서울주택도시공사는 문화재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매달 수억 원의 이자 등 금융 비용을 날리면서 종묘의 경관을 침해하는 걸 넘어 지배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만들려고 해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2년 5월 23일에 오세훈 시장이 최응천 문화재청장을 5월 12일 만나 문화재 인근에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 변경을 건의했다고 밝혔어요. 문화재청은 2023년 4월 한양도성을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올렸는데 서울시는 남산 주변 건축물 높이 제한선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니, 과연 서울시가 공공의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도 한때는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는데, 재개발과 재건축 같은 도시정비사업의 이면을 알게 된 이후로는 달라졌어요. 옛 동네의 정취가 사라진 도시는 사람냄새를 느낄 수가 없어요. 상권이 뜨면 원주민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그냥 묵과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오랜 세월 둥지로 삼았던 사람들을 쫓아내고 새 건물을 올리는 건 도시정비가 아니라 파괴 행위로 보이네요. 저자와 함께 못생긴 도시를 거닐고 나니 그 못생김을 지켜주고 싶네요. 못생긴 도시의 존재 이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살릴 수 있어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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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의 즐거움 - 생각의 급소를 찌르는 다르게 읽는 힘
남궁민 지음 / 어바웃어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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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허리를 펴고, 가슴 높이 정도에서 책을 세워 머리는 정면으로 시선은 15도 정도로 볼 것.

책 읽는 바른 자세, 아마 초등학생 시절에 다들 배웠을 거예요. 당연히 책을 읽는 방식도 정독이 기본이라고 여겼었죠.

근데 오독이라니, 그래도 괜찮은 건가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오독의 즐거움》은 색다른 책 읽기의 관점을 제시한 책이에요.

저자는 기자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컨설턴트로 일하며,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삼프로 TV <북언더스탠딩>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데, <북언더스탠딩>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책들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네요.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정보의 양은 현저히 많아졌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떨어졌다는 점, 무엇보다도 좋은 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세태가 안타까웠다는 점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책읽기, 정독의 굴레에 빠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만의 길을 찾다보니 그 결과물이 '오독'이 되었대요.

이 책에서는 저자가 고른 46권의 책마다 살짝 삐딱하게 바라보기 신공으로 다양한 질문과 생각들이 등장하네요. 책에 나온 인사이트가 저자의 관점이라면 이를 읽는 독자들은 나름의 오독을 즐기면 돼요.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 말고 본인의 답을 찾아보는 거예요. 물론 저자가 제시한 INSIGHT (통찰), MARKET (시장), HEGEMONY (패권), HUMANITY (인간)이라는 주제는 풍성한 먹거리 재료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각자 입맛대로 물고 뜯어볼 수 있어요. 여러 분야의 책들과 저자의 관점을 통해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교육은 어떻게 낙인이 되었는가. 교육개혁은 대체로 정권 초기에 아젠다가 되지만 늘 말만 앞설 뿐 실질적인 개혁은 거의 없는 상황이에요. 답답한 건 왜 교육 이슈에 진영 논리를 갖다가 정쟁화하느냐예요. 저자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소개하면서 교육이라는 외피를 쓴 불평등 문제를 고민하기엔 괜찮은 내용이지만 해법이 하품난다고 이야기하네요. KILLER TEXT "대한민국의 교육 이슈를 끌거가는 이른바 주요 대학을 노리는 상위권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육은 '정치'다. 교과서적으로 정치의 정의는 '자원의 권위적 배분 과정'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자원 배분을 얻어낼 뿐 아니라 그 배분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지위와 권력이 일치했던 한국 사회에선 그 의미가 더 크다." (291p)

워낙 시급한 문제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정의와 공정이네요. 팍팍한 살림살이와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 그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면 민주주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어요. 권력자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사회,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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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를 만들어간다 - 장마리아 그림에세이
장마리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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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 거예요. 하지만 정말 잘 아느냐고 제게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워요.

어릴 때는 그 질문 자체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당장이라도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마냥, 근데 아니더라고요. 지금까지 살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를 알게 됐다는 거예요. 삶이란 나를 알아가고, 채워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더 넓고 새로운 세상이 있어요. 서로 다른 나, 수많은 나로 이루어진 세상을 보는 즐거움이 있네요.

《그렇게 나를 만들어간다》는 화가 장마리아님의 그림 에세이예요.

저자는 힘들게 진행한 첫 개인전 이후 슬럼프가 찾아와 3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0대 초반 갑자기 망막 변성으로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어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그 시기에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Stop complaining and do something about it. (이제 불평은 그만하고 뭐라도 해보세요.)" (6p) 라는 대사가 자신에게 던지는 말 같았고, 그 문장이 가슴에 꽂혀서 화가로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이 책은 화가의 작업일지인 동시에 장마리아라는 사람의 성장일지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이름은, 본인의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시작해 어떠한 어린 시절을 거쳐 화가의 삶을 꿈꾸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들려주고 있어요. 책 속에는 저자와 관련된 사진과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하나의 전시회를 관람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슬럼프 혹은 시련의 시기를 지나면서 저자가 깨달은 것들이 인생의 지혜, 잠언처럼 적혀 있어요.

"갑작스러운 불행은, 길을 걷다 돈을 줍는 소소한 행운처럼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온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숨은 법칙이자 묘미이다." (68p)

"... 예술이 그렇듯 인생도 그렇다.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주도하고 선택한 시간 속에서 생을 여러 번 담금질하는 가운데 가능해진다." (130p)

장마리아님의 작품을 보면 색깔뿐 아니라 질감이 살아 있어요. 붓이 지나간 흔적과 색들이 혼합되어진 물들임이 각각의 마음으로 보였어요. 점점 다양한 재료들로 표현되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렇게 만들어간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네요.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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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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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은 김숨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664쪽의 이야기, 책으로 보자면 긴 분량이지만 우리 역사로 보면 극히 일부분일 거예요.

이 소설은 해방 전후 부산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부산이 고향이어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과 만주에서 해방 소식을 듣고 귀환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름을 적어보았어요.

천복, 동수, 석분, 말똥, 가쓰코, 쑥국, 붙들이, 도끼, 간난, 막자, 옥분, 봉금, 애신, 갑동, 상희, 복순, 장숙, 순애, 명순, 양춘이, 쇠돌, 덕순, 울순, 두꺼비, 공점, 개나리, 구북, 윤수, 매숙, 연희, 목순, 석구...... 그밖에도 익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을 견디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어요. 봉금은 광목 포대기로 둘러 업은 애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울지 마라, 집에 가 흰쌀밥 줄게." (81p)라며 달래지만 아이에게 줄 흰쌀밥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타지에서 온 천복은 부두를 배회하며, "아,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놨을까!" (241p)라며 탄식하고 있는데, 그를 데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천복은 철로 위에 아이인지, 어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이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떠올라 아른거리는 걸 보았어요.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요, 아니 누구일까요.

먹고 살기 위해 소란스러운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청요릿집 사해루의 어항에는 항상 금붕어 여덟 마리가 있어요. 손님들은 사해루의 어항 속 금붕어들이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환갑노인이 그 어항 속을 들여다보며, "저 물 속이야말로 완벽한 세계로구나!" (395p)라고 탄복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거기엔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사해루 주인이 '8'은 자손을 번성하게 하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숫자라고 철석같이 믿는 바람에 어항 속 금붕어가 죽으면 여덟 마리에서 모자란 만큼 날마다 채워 넣었던 거예요. 사해루에서 일하는 주방 찬모는 주방 일뿐 아니라 죽은 금붕어 치우는 일도 해야 했는데, 하루도 금붕어가 죽지 않는 날이 없어서 매일 금붕어 장수가 찾아왔어요. 주방 찬모로 일하는 사마귀 난 여자는 문득 어항 속 금붕어들을 들여다보다가 금붕어들이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 똑같아서 어느 금붕어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그래서 어느 금붕어가 죽어도 상관 없고 슬프지 않았어요.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했어요. "어항 속 세계가 완벽한 것은 금붕어 수가 여덟 마리여서가 아니라, 금붕어들이 부부로도 부모 자식으로도 결코 엮이지 않아서라고." (468p) 그러나 현실은, 부산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금붕어들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누군가의 이웃이고 친척이고 부모 자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나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해방 직후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질 거예요. 잊고 있었던,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생생한 역사였음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제78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언급했어요. 일본은 아직까지 한반도 불법강점의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사죄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대통령 마음대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과 손 잡겠다는 건가요. 대통령 눈에는 우리 국민들이 금붕어들로 보이는 건가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망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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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클래식 라이브러리 8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순배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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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세계문학 시리즈 '클래식 라이브러리' 여덟 번째 책이 나왔네요.

처음 세계문학을 접하는 청소년들뿐 아니라 다시 읽는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시리즈가 될 것 같아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해요.

앗,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해보니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은 단편과 동화였더라고요.

이 소설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인물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는 19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빅토리아 시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뽑히는 인물이에요. 성공의 정점에 올랐으나 퀸즈베리 사건이라는 유명한 재판으로 인해 극적인 몰락을 겪게 되고, 막중한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수감됐어요. 이 사건 때문에 영국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프랑스 파리의 작은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으니 불운한 천재의 말로인 거죠. 와일드는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 둘이 있었지만 퀸즈베리 후작의 막내아들인 앨프리드 더글라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돼요. 다혈질에 철부지 귀족 대학생인 더글러스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수단으로 둘의 관계를 드러냈다고 해요. 더글라스는 사치와 향락을 즐긴 데다가 히스테릭한 성격으로 와일드를 괴롭혔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와일드는 더글러스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다가 감옥에 가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 것 같아요. 더글러스의 아버지가 고발하는 바람에 와일드는 감옥까지 갔는데, 동성애 스캔들의 당사자인 더글러스는 무사했으니 말이에요. 근데 이해할 수없는 건 출소 이후 더글러스를 다시 만났다는 거예요.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자신이 파멸로 가는 줄도 모른 채 달려들었을까요.

이 소설은 오스카 와일드의 삶과 세기말 심미주의의 정신을 문학적으로 잘 구현해낸 수작으로 꼽히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와일드가 법정에 섰을 때 유죄의 증거로 제시되었다고 하네요.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대부분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는 1891년 개정판 혹은 확장판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출판사가 법적 분쟁을 피하고자 최초의 원고에서 500여 단어를 삭제한 내용이라고 해요. 이번에 아르테 클래식 라이브러리에서는 검열되지 않은 무삭제 원고를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소설은 화가인 바질 홀워드가 친구인 헨리 워턴 경(해리)과 나누는 대화로 시작하고 있어요. 방 중앙에는 아름다운 젊은이의 전신 초상화가 이젤에 고정된 채 놓여 있어요. 해리는 초상화를 보더니 감탄하며 갤러리에 출품하라고 권유하는데, 바질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거기에 내 존재를 너무 과하게 드러냈기 때문" (9p) 이라는 거예요. 해리가 그 말 뜻을 초상화의 주인공처럼 바질이 본인을 미남으로 여긴다고 오해하자, 바질은 미남인 도리언 그레이에게 푹 빠진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게 돼요.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의 존재감이란 아름다움 그 자체이며, 예술가에겐 최고의 영감을 주는 뮤즈인 거예요. 바질은 자신이 그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진짜 그리언과 함께 있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바로 그림의 모델인 도리언이 곁에 있는데, 그림을 진짜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림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젊은이는 늙어가고 아름다움은 사그라들겠지요. 바질이 숭배하는 건 도리언 그레이일까요, 아니면 아름다운 젊음일까요. 두 사람 사이에서 해리는 냉소적인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마치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세 인물은 본능적인 이드, 현실적인 자아, 그리고 도덕적인 초자아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에서 자기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냈어요. 바질이 초상화를 감추려고 했듯이 와일드도 이 작품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세상의 비난을 피할 수는 있었겠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힐 순 없었을 거예요.

2017년 영국 정부는 특별법인 앨런 튜링법에 의해 오스카 와일드를 포함한 7만 5천 명의 동성애자를 사후 사면했다고 하네요.



"아름다움은 천재성의 한 형태이지만

실로 천재성보다 더 고귀한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없기 때문이죠.

햇살처럼, 봄날처럼, 혹은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어두운 수면 위에 비치는 은빛 조개껍데기의 그림자처럼

세상의 위대한 것 중 하나입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그것은 삶을 통치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를 지닙니다.

그것을 지닌 사람들을 군주로 만들어줍니다.

비웃고 있군요! 아! 당신이 그것을 잃게 되면 웃지 못할 거예요.

사람들은 때로 아름다움이 허울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사고만큼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게 아름다움이란 경이로움 중의 경이로움이지요.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들뿐입니다.

세상의 진정한 신비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입니다." (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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