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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은 그 물음에 대한 이야기예요. 당연히 사랑 이야기겠죠?
마르크 레비의 장편소설이 처음이라면 분명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뭉클한 감동과 반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 테니까요.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라니, 뭘 더 바라겠어요. 무엇보다도 마르크 레비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아들을 위해서였다는 것, 그 소설을 가장 먼저 읽은 독자는 그의 아버지였다는 걸 알고나서는 더욱 열렬한 팬이 된 것 같아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사랑과 가족에 대해 이토록 멋진 이야기를 들려준 마르크 레비 작가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후회없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면 이 소설이 좋은 안내서가 될 거예요.
원래 이 소설은 49개 언어로 번역되고, 5천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인데 이번에 재출간되었어요. 2022년 프랑스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 드라마를 국내에서도 곧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책 표지도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바뀌어서 분위기가 확 다르네요. 소설의 주요 줄거리는 딸 줄리아와 안드로이드 아빠 안토니 왈슈가 일주일 간의 여행을 하는 내용이에요. 드라마에서는 아빠 역할을 <레옹>의 장 르노가 맡았네요. 가깝고도 먼 관계가 가족 사이인 것 같아요. 줄리아와 아빠 안토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해와 갈등을 단 일주일만에 해소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지만 소설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정말 최고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자세한 내용은 꼭 책으로 확인해보세요. 일단 첫 장을 펼치면 휘리릭, 끝까지 읽게 되는 매력적인 이야기예요. 소설 속에서 많이 안타까웠던 부분은 아빠 안토니가 일하느라 놓쳤던 딸과의 시간인 것 같아요. 딸 줄리아가 아빠를 간절히 원했던 그 시기에 아빠는 너무 바빴고, 줄리아는 혼자 버려졌다고 느꼈어요. 그때 아빠는 먹고 살기 위해 아둥바둥 일했던 건데 그 상황을 어린 줄리아가 이해하긴 어려웠으니,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아빠의 잘못도 있어요. 딸을 엄청 사랑하는 아빠지만 표현하지 않으니 딸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줄리아가 토마스와 사랑에 빠져 도피를 선택한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그는 첫사랑이자 운명의 남자였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아빠 안토니의 입장에서 보면 딸의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으로 인해 모녀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던 거예요. 결국 십칠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아쉽고 마음이 아팠네요.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진심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소설은 운명의 끈으로 되돌렸지만 현실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겐 결심이 필요해요. 사랑할 결심,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보여줘야 해요. 후회없이 오늘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줄리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상상할 때 우리는 헛되이 현실의 빛을 찾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의 꿈이 너무나도 강렬한 현실의 빛에 부딪혔을 때는
그저 잠시 그 꿈을 포기하면 된다는 것을.
그러면 잠시 그 꿈이 사라진다는 것을. (89p)
... 너는 아니? 너는 여름이 찾아오듯 그렇게 내게로 왔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침에 깨어 느낄 수 있는 찬란한 빛의 파편을 몰고 그렇게.
네 손이 내 뺨에 닿았지. 너의 손가락은 내 얼굴을 어루만졌어.
그리고 넌 내 눈에 입을 맞췄지.
"고마워." 멀어져가면서 네가 했던 말이야.
... 세월은 전혀 다른 두 인생을 살게 만들어버렸지. (179p)
솔직히 대답해보렴. 그 칠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남김없이 네 자신을 누군가에게 희생할 수 있겠니?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사람이 언젠가는 너와 함께 보낸 모든 시간들을 다 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근심 없이, 어떤 걱정도 없이 그렇게 다 줄 수 있을까?
너의 모든 정성, 너의 모든 사랑이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니?
공백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게 인간인지라, 정성과 사랑이 잊힌 자리에는 후회와 비난이 자리잡지.
넌 과연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이유로
혹은 나쁜 꿈을 꿨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함께 깨어나줄 힘을 찾아낼 수 있을까?
... 분명 그 사람의 미래는 너에게서 멀어져 살아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너의 대답이 '그렇다'는 것이라면, 나를 용서하렴. 내가 널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것 같구나.
넌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아는 셈이니 말이다."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아니, 바로 너의 이야기란다. 지금 내가 말한 사랑은, 자식을 향한 어느 아버지 혹은 어느 어머니의 사랑이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식을 걱정하며, 혹시라도 닥칠 위험을 대비하며, 자식들을 바라보며,
자식들을 잘 자라도록 도와주며,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며, 그들을 웃게 만들며 보냈을까?
... 이곳저곳 얼마나 많은 데를 다니고, 또 얼마나 많은 말을 반복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보냈을까?
하지만 ... 이 자식들에게 있어서 첫 번째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무엇일까?
자식들만을 위해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사랑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니?
그 자식들이 태어나고 몇 년간은 아예 기억을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후의 시간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언젠가는 자식들이 자유를 찾아 분명 내 품을 떠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항상 네 옆에 있어주지 않았다고 날 나무랐지?
그럼 자식들이 떠나는 날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고 있니?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어떤 기분이라는 걸 알고 있니?
내가 설명해주마. 부모들은 자식이 떠나는 모습을 문턱에서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야.
다 큰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은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내 피요 살인 자식을 떠나게 만드는 그 무심함,
자식들로 하여금 부모를 떠나게 하는 그 무심함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그 어떤 아버지도, 또 그 어떤 어머니도 덕을 보자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야.
이게 바로 사랑이라는 거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우린 자식을 사랑하니까 말이다.
(387-38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