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신달자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9월
평점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 「서시 序詩』 , 윤동주
서늘한 바람이 부는 2023년 10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느꼈어요.
윤동주 시인은 괴로워했고, 신달자 시인은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시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길어올려 말갛게 씻은 얼굴마냥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 는 신달자 묵상집이에요.
저자는 팔순의 아침에 흰 백지를 펼쳐 인생의 반성문을 적고 있어요. 팔십 년을 한 마디로 축소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냐는 질문에 "잘못하였습니다." (11p)라고 답했어요. 참담한 후회의 고백이라며 지난 삶을 돌아보니 미치고 흐느끼고,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왔노라고 했어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자연에게 고개를 숙이고 온몸을 낮게 낮게 땅에 엎드리며 "잘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것은 바로 기도였어요.
이 책은 팔순이라는 나이를 짊어진 시인의 고백이자 기도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을 들려주며 반성하는 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그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어요. 아직 겪어보지 못한 팔순의 삶이라서 특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 모든 걸 내려놓고 참회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잘못해도 아닌 척 감추기에 급급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왜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지... 요즘들어 세상이 너무 뻔뻔하고 모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착하게 사는 건 바보라고 여기는 세상이니, 아득바득 제 것만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거죠.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쳐버린 거예요. 그 비어 있는 틈 때문에 삶이 자꾸만 삐걱거렸나봐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정답은 없지만 누군가의 삶을 통해 배울 수는 있어요.
"이 세상에 나만 겪는 고통은 없습니다. 견디는 것도 인간에게 주어진 밥과 같습니다. 외로움은 내게 소금과 같습니다. 약간은 간을 맞추는데 유용하지만 조금만 넘치면 망쳐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싸웁니다. 용용 죽겠지 하고 외로움이 화를 내게 하면서 달아나려 애씁니다. 외로움 그거 별거 아니라고 얕보면서 때론 안고 뒹굴기도 합니다. 한 번도 이별이 없었던 나의 외로움, 노년의 내 친구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 또한 감사합니다." (64-65p)
저자는 독일 시인 릴케를 좋아하는데, 그 릴케가 조각가 로댕의 제자로 일할 때 항상 들었던 말이 있대요. "힘내라구! 밤에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도 로댕은 곧잘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이 말이 나에게 매일매일 필요한 말이었던가를." (128p)
나이들수록 칭찬과 격려, 응원과 같은 말들을 듣는 경우가 드물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남에게 듣고 싶은 말을 왜 바라기만 하고 남들에겐 못 해줬나 싶어요. 힘내라는 말, 진심으로 건네면 진짜 힘이 나더라고요. 팔순의 시인은 치열했던 지난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도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있네요. 잘 견뎌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