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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지 않는 삶은 없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와 철학
민이언 지음 / 디페랑스 / 2023년 11월
평점 :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뭉게꿈이 피어난다.
첫 소절만 나와도 바로 따라부르게 되는 만화 주제곡이에요.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미래소년 코난」 인데, 제 기억엔 '뭉게꿈이'가 아니라 '뭉게구름'으로 불렀던 것 같아요.
이 만화가 일본 만화였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어른이 된 뒤에야 알게 됐는데 뭔가 속았다는 배신감이 컸어요. 편협한 생각인 줄 알지만 그때는 싫다는 감정이 앞섰기 때문에 차단의 벽을 세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나온 애니메이션을 접하면서 약간 심경의 변화가 생겼어요. 작품 자체로서 좋다면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는.
《이해되지 않는 삶은 없다》 는 민이언 작가님이 들려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와 철학 이야기예요.
제목부터 '나에게 하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뭔가 싫다고 거부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봤냐고 묻는 것 같았거든요.
마침 「미래소년 코난」 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한껏 몰입할 수 있었네요. 어릴 때 이후로 다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자의 작품 해설을 통해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됐어요. 지구 멸망 사건 이후에 살아남은 인류는 인더스트리와 하이하버라는 곳에 모여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를 그려냈고, 디스토피아의 원인은 문명이 지닌 야만성이며 저주받은 욕망이라는 것이 현재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네요. 1978년 NHK에서 처음 방영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KBS 1TV로 방영되었던 추억의 만화를 2023년 다시 소환하면서 지금 시대를 향한 경고장 같기도 했어요. 저주로 내려앉은 폐허가 되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이죠.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봐야 할 이야기였던 거죠. 하야오가 그려 내는 세계가 저 파란 하늘과 바다에서 비롯된 푸르름이며 어른들의 판타지라는 것을 저자는 우리에게 열일곱 편의 작품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어요.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면서 아주 서서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마음을 열면 이해되지 않는 삶은 없는 게 아닐까요.
「천공의 성 라퓨타」 에서 '라퓨타'는 잊혀진 전설의 도시예요. 하야오의 작품 속에는 기본적으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가 어려 있다고 하네요. 시대는 변해가는데, 그 변화가 꼭 발전이자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획기적인 기술 혁명으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를 얻게 됐지만 우리가 잃은 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은 이대로 괜찮은 건지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날에 과연 저런 공동체가 존재할까?
예전에는 아이들을 그 마을에서 다 키웠다.
동네 형아들 따라 다니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가곤 했었는데,
오늘날에는 그 골목문화가 사라졌다. 때문에 주부들의 육아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 시대의 조건이 달라지면 인간의 조건이 달라진다던 아렌트에 빌리자면,
'정'으로 해결되던 사회적 문제들에 비용이 들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점점 경제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커뮤니티도 개인주의적 성향의 집단으로 변해간다.
... 이 시대의 '우리'라는 개념은 날 중심에 두는 1인칭이나 다름없는,
내가 필요할 때만, 내가 필요한 방식 안에서만 '우리'인 건 아닐까?
(82-83p)
「바람이 분다」 는 호리 다쓰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폐결핵에 걸린 약혼녀를 향한 남자의 순정과 제국주의 시대에 젊은이들이 겪는 절망을 그려내고 있어요.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106p)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시의 일부인데, 절망과 체념 속으로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다시 생의 의지를 다독이는 싯구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하네요. 하야오의 가족사를 알고나니 그의 작품이 새롭게 보이네요.
『꿈과 광기의 왕국』에서는 「바람이 분다」의 제작기를 다루고 있다.
한 애니메이션 평론가는, 일본인들에겐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이 있단다.
극우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간에, 독일과 그 방식이 다를 뿐,
일본인들은 결코 덜어 낼 수 없는 가책을 지니고 살아간단다.
역사 왜곡도 결국엔 그런 가책의 증상일 테고···.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자신들이 잘못을 저지른 역사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의 프레임 안에 갇혀 버린, 하늘을 날고 싶었던 소년의 꿈은 '선택'을 해야 했다. 하야오의 말따나,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포기를 매개한다. 그런 갈등은 비행기 부품으로 돈을 벌었던 하야오의 가문과도 닿아 있다. 전쟁에 일조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지만, 또 그 가업에서 비롯된 하늘의 꿈을 평생 그려 온 자신이라는 모순. 그 '저주받은 꿈'은 청춘에게 그런 삶을 강요한 시대의 폭력이기도 했다. 그 연장에서 자본의 시대가 잉태하는 모든 꿈이 저주받은 꿈이라고 말하는 그에게는 애니메이션 업계도 마찬가지다.
(109-11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