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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 - 20년 차 숲 해설가가 만난 식물들과 삶의 이야기
최정희 지음 / 설렘(SEOLREM) / 2024년 3월
평점 :
《숲이 내게 걸어온 말들》은 최정희님의 에세이예요.
저자는 20년 차 숲 해설가이자 생태공예 연구가로서 숲에서 활동하면서 '숲이 답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요.
"숲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삶을 사는 방법, 말하자면 이생을 충분히 잘 사는 방법이 기록된 책이더라고요. 어느덧 저도 한 권의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1cm 냉이를 기억해 낸 후 시지프스의 돌을 굴리는 일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8p)
이 책은 숲에서 만나는 식물과 동물들을 다정한 친구마냥 소개하며 삶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요. 각각의 동식물들은 사진이 아닌 세밀화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사람으로 치면 증명사진 대신에 초상화를 보여준 것이라 왠지 더 정감이 가네요. 뭔가 동식물 사전을 보는 듯,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숲 속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네요. 여기에서는 둥글둥글한 귀룽나무 열매, 뿔나비, 몬스테라, 은방울꽃, 병꽃나무, 개미, 오색나무, 개망초, 사과나무, 고추잠자리, 왕솔나무, 실새삼, 괭이밥, 청설모, 해바라기, 배롱나무, 나비, 직박구리, 까치, 느티나무, 산수국, 야고, 억새, 제비꽃, 타이탄 아룸, 대추나무, 냉이꽃, 변경주선인장, 난초, 아보카도, 쇠비름, 자이언트 라플레시아, 소나무, 계요등, 쇠무릎, 콩과식물, 난쟁이버들, 사향제비나비, 쥐방울덩굴, 선인장, 낙타, 질경이, 작약, 박꽃, 계수나무, 민들레가 주인공이에요. 사람들처럼 누가 더 잘났는지 따져보고 비교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병꽃나무의 뿌리는 내년에도 병꽃을 피우기까지 땅 속의 바위나 돌을 피해 요리조리 옮겨가면서 부지런히 물과 양분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런 병꽃나무의 뿌리가 부러워졌다. 내게도 병꽃나무와 같은 뿌리가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내게도 뿌리가 있긴 하다. 병꽃나무 뿌리와 달리 장애물 앞에서 멈춰버렸던 연약한 실뿌리. (···) 나의 실뿌리에게 말한다. 천천히 피워도 괜찮아. 못 피우면 어때. 네가 살아있어 꿈틀대는 게 좋아." (39p)
세상에 꽃을 피우고 싶지 않아서 안 피우는 식물은 없을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 뿐이죠.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할 때가 많은데 식물은 열심히 뿌리를 더 멀리 뻗어나가려고 애를 쓰며 부지런히 물과 양분을 찾아낸 거예요. 땅 위의 꽃을 피우기 위해 땅 속에서는 뿌리가 제 역할을 다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는 걸, 그 간절한 마음이 합쳐져서 꽃이 되었네요. 그러니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꽃조차도 이제는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자가 2월의 어느 날,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냉이들과 냉이꽃을 보며 느꼈던 그 감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어요.
"꽃을 못 피운 냉이와 한 송이라도 꽃을 피운 냉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꽃을 피운 경험이라는 큰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40p)
인생에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일 수도 있기에 하나의 의미는 아닐 거예요. 자신만의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