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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평점 :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착각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중심적 사고와 믿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때의 평온함이 가짜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신기하게도 가짜는 늘 들키기 전까지는 진짜 같으니까요.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상대에겐 굉장히 불쾌하거나 괴로울 수 있다는 걸 상대가 전혀 티를 내지 않는다면, 나는 모든 게 잘 흘러가고 있다고 여길 테니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끔찍한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거짓에 매달리게 되나봐요.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는 헬레네 플루드의 심리스릴러 소설이에요.
전작이자 데뷔작인 《테라피스트》를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번 신작이 무척 반가웠네요. 저자는 소설가이기 전에 심리학자이며, 전문 분야는 폭력성, 재피해자화, 트라우마와 연관된 수치심과 죄의식이라고 하네요. 역시나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예사롭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부부의 세계만큼 스펙타클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네요. 고요한 호수 아래 펼쳐지는 롤로코스터, '이것이 심리스릴러구나!'라고 감탄했네요.
주인공 리케는 남편 오스먼드와 큰딸 엠마, 네 살배기 루카스와 살고 있어요. 어느 날, 아파트 이웃 중 한 사람이 살해당했고 이웃 사람들 모두가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이 되었어요. 리케는 남들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기 때문에 경찰에게 사실대로 진술할 수가 없었고, 이웃들 중 누가 살인범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중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을 전부 의심하게 되면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듯이, 리케의 입장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조금씩 차곡차곡 진실을 향한 퍼즐들이 맞춰지면서 드디어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네요. 의심의 눈초리로 모두를 바라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설마 아닐 거라는 마음이 더 컸는지, 결말 부분에서 말도 안 되는 배신감이 밀려왔네요. 사람 마음은 절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어요. 죄책감과 수치심, 이 두 감정이 어떻게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뚜렷하게 보여주는 심리스릴러였네요.
"리케, 당신은 어떤 일을 하나요?" 그가 물었죠.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소비자 행동의 인지적, 정서적 구성 요소에 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죠." 내가 대답했어요.
요르겐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어요. "구성 요소에 어떤 것이 있죠?"
"글쎄요." 나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어요.
"이를테면 죄책감 같은 것이 있죠."
"죄책감이요?"
"네. 나는 태도와 행동의 교차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종종 한 가지를 도덕적으로 옳다고 간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 돼요. 예를 들자면 나는 스스로를 환경에 관심이 많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만일 휴가 기간에 뉴욕으로 쇼핑 여행을 갔을 경우 가치관의 충돌이 생기게 될 거예요. 스스로를 환경을 의식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에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행동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거죠."
"기후 수치처럼 말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는 없죠. 수치심과 죄책감은 다른 감정이고, 기능도 다르니까요. 죄책감은 우리가 망가뜨린 것을 고치게끔 동기를 부여하지만, 수치심은 그것을 숨기라고 동기부여하니까요." (59-6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