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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 마지막까지 후회 없는 삶,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위한 인생철학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굿 라이프>라는 '미로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이미지가 바로 '미로 정원'입니다.
철학으로 풀어낸 '굿 라이프'인 줄 알았는데 전혀 색다른 인생 철학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장르를 규정하기가 애매합니다.
중요한 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 이것이 인생 이야기구나.'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현재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마크 롤랜즈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쓴 원고 뭉치를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별한 후 플로리다키스제도(플로리다해협의 열도) 키웨스트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시면서 원고를 쓰셨지만 아들에게는 한 번도 글을 쓴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원고에는 어머니의 주석이 일부 달려있었고 오래된 컴퓨터에서 어머니의 비평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글은 자서전과 허구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인 마클 롤랜즈는 각각의 글들마다 알맞은 제목을 달고 각주를 첨부하였습니다.
비록 사후에 남겨진 원고로 완성된 것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함께 인생 철학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고 멋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버지의 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년의 인생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가장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아닐까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를 따지고 분석한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경험치만큼 바라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다가 문득 막다른 길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매끄러운 흐름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길을 찾는 느낌이랄까. 미로 정원을 걷는 느낌?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의 원고는 자신과의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글로 남김으로써 결국 아들에게 전해졌으니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존재에 대한 글을 보면 노년의 느낌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 나는 항상 어디엔가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매 순간, 나는 이 지도의 어디엔가 있었다. 떠도는 존재...... 누군가는 방랑벽이라 하겠지만, 그저 고향이 많았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내가 곧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지도의 어느 곳에도 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생각인가? 아니다. 사실 이건 생각이 아니다.
... 생각이라기보다는 형체도 없고 어지러운 공포다. 나는 공포로부터 등을 돌리기 위해 중얼대며 자신을 무장한다. "좋은 인생이었어."
좋은 인생. 그렇다. 결국 좋고 나쁨은 인간의 행동이 아니며 규칙이나 원칙도 아니다. 또한 인간을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직 인생만이 그렇다. 피부 속에 갇힌 존재가 아닌, 탄생과 죽음이라는 일시적인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은, 진정 좋거나 나쁠 수 있는 것은 인생이다. 그리고 인생이 전적으로 좋거나 나쁠 확률은 거의 없다. - (16p)
아버지는 치매에 걸렸고 자신의 마지막 생에서 자살을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불행하게도 할아버지와 흡사했기 때문에. 몇 년간 악화된 고통으로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져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는 자신이 더 이상 삶과 맞서 애쓸 가치가 없음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멈추고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남겨진 아이들 때문입니다. 아내 올가는 떠났고 문제는 니코와 알렉산더인데, 자신의 자살이 아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까봐 두려워 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자살하지 않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다면 그 결과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병원비와 함께 산송장을 마주하는 괴로움만 줄 뿐이라고 걱정합니다.
- 오늘은 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 할아버지의 교훈이 여기에 해당한다. 할아버지는 슬프거나 절망적이서가 아니라 불행의 끝이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서 죽은 것이다.
... 빠져나갈 수 없다면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최고다. 현명한 사람은 살아야 할 때까지만 살고, 살 수 있을 때까지 살지 않는다. 누군가의 글이었는데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다. - (310p)
이 장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할 수 없었다는 아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죽음 자체를 철학적으로 논할 수는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논외의 것입니다.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이기에...
이 세상에서 좋은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아버지의 글들이 처음에는 미로 정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점점 읽다보니 미로 정원이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인생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인생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