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어티 - 오쿠다 히데오 스페셜 작품집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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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명성이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스페셜 작품집이라고 하니 덥석 읽게 되네요.

<버라이어티>는 6편의 단편과 2번의 대담 그리고 1편의 쇼트쇼트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특별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뭔가 심심하다고 해야하나...

<나는 사장이다!>와 <매번 고맙습니다>는 연작으로, 서른여덟 살 나카이 가즈히로가 주인공입니다. 대기업 광고 기획사 '다이코도'에서 유능한 직원이던 나카이가 독립하여 회사를 차린 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장이라는 명함을 달게 된 건 좋은데 사장 노릇이 영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랄까. 인생은 참 아이러니~ 대기업에 다닐 때는 직장인 스트레스는 있어도 남에게 굽실대며 비위맞출 일은 없었는데,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되고보니 오히려 거래처 눈치보느라 비굴해지는 일이 다반사가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변해가는 나카이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이밖에 다른 단편들도 일상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그런데 그 이야기가 자꾸만 나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들이지만 외면할 수는 없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암튼 작품 세계가 독특한 오쿠다 히데오.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2개의 대담을 통해서 조금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가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지만 야마다 다이치 씨의 드르마와 잇세 오가타 씨의 연극에는 영향을 받았습니다."라는 오쿠다 히데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잇세 오가타 씨와 야마다 다이치 씨와의 대담을 진행했다는데 모두 1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라네요. 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동물이니까, 10년 사이에 오쿠다 히데오 씨가 변했을 리 없다는 가정 하에 읽어볼 만 합니다. 오쿠다 씨는 장편을 쓸 때 플롯을 짜지 않는다는 것과 본인의 창작 근원은 위화감이라고 합니다. 어쩐지 그의 소설은 자유분방함과 위화감이 동시에 느껴지더라니... 소설가로서 본인의 의도를 소설에 그대로 반영시켰으니 대단하다고 해야겠네요. 무엇보다도 본인이 좋아한다는 '개입하지 않는 부드러움'이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의 고통으로 자신의 능력이 바닥났다고 엄살을 부리는 오쿠다 히데오가 아직까지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소설가는 그의 운명인 듯 싶네요. 다음은 장편으로 만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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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한 줄 - 선인들의 묘비명을 통해 읽는 삶의 지혜 30
이하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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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개울인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깊은 강이더라."

이 책에 대한 한 줄 소감입니다.

묘비명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다소 무거울 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매력적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묘비명은 대문일뿐이고 그 너머에는 생생한 삶의 정원이 펼쳐집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대답하기 힘들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세요.

이 책에는 서른 명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생애와 마지막 순간, 그리고 묘비명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서른 명의 사람들,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묘비명을 남겼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들의 이름과 그들의 삶을 기억합니다.

묘비명은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싶은,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묘비명을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정말 좋은 안내자를 만난 것 같습니다.

카프카의 소설 <시골의사>에는 한 의사가 등장합니다. 어느날 응급환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도중에 사고를 당해 자신이 환자가 되고 맙니다. 겨우 응급환자를 찾았지만 그는 오히려 멀쩡한 상태였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모순을 통해 카프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입니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꿈이지요? 당신들은 제가 '정상적인' 사회인, 또는 엘리트로 살아가길 바랍니까?

그렇게 벌레 보듯 저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아니, 그러든 말든 저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계속 소설을 쓸 것이며, 고로 실존할 것입니다." (45-46p)

... 자신의 삶에서 부조리를 발견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큰 갈등을 겪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여러 시험 속에서 연마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자. 지금은 그저 깎아내는 과정일 뿐이니 아픈 게 당연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47p)

어쩌면 우리는 책 속에 소개된 서른 명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남길 만큼의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죽음 이후의 명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순간의 행복입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것인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일을 즐겁게 하다보면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고,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 뭔가를 해낼 수도 있을테니까.

참,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잘못 번역된 것이고, 정확한 뜻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후회하기 전에 뭔가 더 해내라는 뜻이고, 후자는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아무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문득 죽음을 느낄 때에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묘비명만 봤다면 그 속에 담긴 삶의 깊이, 지혜를 다 알지 못했을 겁니다. 저자의 목소리가 더해져서 쓰여진 <인생의 마지막 한 줄> .

'이미 우리는 삶으로 묘비명을 써내려가고 있으니까'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이 책을 써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기 그가 애타게 기다려온 곳에 잠들어 있다.


 -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최상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미국의 유명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지나가는 이여, 이사람이 그러했듯

가서 지고한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시오. 


 -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였다. 


-  소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루쉰선생지묘 


- 중국 작가 루쉰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곱게 다듬으려 했다. 


 -  조선의 천재 학자 정약용

 


나는 도전하다 실패했다.

그러나 또다시 도전해서 성공했다.

 

-  세계 최초로 농축 우유를 개발한

 미국의 발명가 게일 보든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체 게바라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

 푸시킨아, 살아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라.  


-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 알렉산드르 푸시킨

 

태어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다만 지구라는 행성을 다녀갔을 뿐이다. 


-  인도의 철학 교수 오쇼 라즈니쉬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방정환


 괜히 왔다 간다. 


-  한국의 승려, 화가, '걸레스님', '미치광이 중'을 자처했던 중광스님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  프랑스의 소설가  기 드 모파상

 대향이중섭화백묘비 


-  한국의 화가 이중섭

 


그의 힘과 용맹은 마라톤의 숲이 말해줄 것이며

또 그를 겪어본 페르시아인들이 전해주리라.  


 -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아이스킬로스

 

하늘이 주신 시간에 시간을 보태고

사랑에 사랑을 보탠 다음

눈감아 여기 잠든 이.


-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

 

생각할수록 새로우며 더욱 놀랍고 두렵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 임마누엘 칸트

 

아아, 몸은 얼어 죽어도

이름은 사라지지 않으리로다. 


-  생몰년 미상의 조선 후기 화가 최북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었다. 


- 최초의 근대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순수 시인 천상병

 

이 땅은 오랫동안 신교회에 묻혀 있던

그의 유골을 덮고 있다. 


 - 네덜란드의 유대계 철학자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

 

여기 백일白日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맺고

문득 졸卒하다.  


-  천재 시인 이상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모든 생명을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루비 켄드릭

 

이제 나는 명한다.

차라투스트라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발견할 것을. 


-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시인윤동주지묘 


- 영원한 젊은 시인 윤동주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 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 


- 프랑스 작가 미셸 트루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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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절벽을 넘어 다시 성장하라
알렉스 자보론코프 지음, 최주언 옮김 / 처음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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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은퇴는 없다!

고령화 사회에서 65세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령화 사회 그리고 인구절벽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인구 절벽을 넘어 다시 성장하라>의 저자 알렉스 자보론코프는 고령화 연구를 위한 지식 관리 시스템인 국제노화연구포트폴리오(International Aging Research Portfolio)의 창시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노인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노령인구 대비 노동인구의 비율을 꾸준히 감소하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노인의 수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할 수 없는' 노인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노동력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노화'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노화 예방이 가능해진다면 고령화로 인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항노화 연구인 유전학과 재생의학에 연구자금이 투입되도록 지원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 은퇴 문화를 바꾸어 노령연금 자격 연령을 확대하는 것, 사회적으로 평생학습 구조를 만들어 전 연령층 노동자에게 정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노년층 교육은 가파른 속도로 변화하는 구직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국가의 교육 수준과 경제 번영지수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보건 개혁이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상황을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긴 수명의 시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노화에 관한 의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해주면서 최근 생물노인학과 재생의학의 연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려줍니다. 결국은 의학 연구 개혁과 은퇴 문화 변혁 그리고 예방의학 및 재생의학 연구 발전이 미래를 준비하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행동 방침은 개인 재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최대한 건강 상태를 좋게 유지하여 다가올 획기적인 항노화 연구 결과를 누리는 것입니다. 항노화 분야는 각 분야마다 발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모든 방안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예방하는 마음가짐이 미래 건강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백세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해야 될 때입니다. 이 책을 통해 좀더 심도있게 살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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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한 번 살아볼까? - 제주살이, 낭만부터 현실까지
김지은 지음 / 처음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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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한 번 살아볼까?

제주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제주살이는 어떠할지...

제주도 관광은 해봤지만 살아본 적 없으니 사람들이 왜 그토록 제주살이에 푹 빠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잘나가던 방송작가 일을 때려치우고 제주도로 '이사'간 서울 사람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 TV프로그램 중에 <체험 삶의 현장>이라고, 연예인들이 전국 방방곡곡 노동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하루 동안 일하고 받은 품삯을 기부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하루를 고생한 연예인보다는 매일 땀 흘려 일하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나였다면 하루는 겨우 버티며 일할 수 있겠지만, 매일 일할 자신은 없었거든요.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의 가치는 매우 값진 것이지만 선뜻 내 일로 삼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 하나...

근래 제주살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나도 모르게 약간의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주도로 이사가서, 올해로 4년차가 된 저자의 경험을 들으니 냉수를 마신 것처럼 정신이 번쩍들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제주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가 아니라 연예인들의 경우였구나.

별장처럼 멋진 집을 짓고 제주의 풍경을 즐기는 삶 - 이건 완전 착각이고, 환상이구나...

물론 금전적으로 여유롭다면 얼마든지 제주에서 낭만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이 흙수저라 불리는 서민이라면 하루빨리 환상을 깨야 합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자발적 생고생 미션'이랄까.

한겨울에 전셋집을 구하려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더군다나 일반주택의 상태가 너무 노후되어 벌레가 득실거리고 곰팡이로 범벅되었다는 부분에서는 비명이 절로 나왔습니다.

잠시 여행하는 것과 쭉 거주하는 것의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그러나 걱정도 잠시, 점점 제주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방인이 아닌 괸당이 된다는 건 현지적응 완료 상태!  (괸당은 친인척이나  끈끈한 이웃을 통칭하는 제주 말.)

서울 토박이로 30년을 살았던 사람이 문화적인 혜택을 포기하고 제주도를 선택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입니다. 서른 살 미혼 여성이 한창 잘나가는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혼자 제주에 내려와 산다고 하면 대부분 이해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아주 조금은, 그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녀가 제주도에 내려온 초반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외롭지 않니?"라고 합니다. 대답은 늘 "아니, 외롭지 않아." 였다고. 우리는 물리적인 공간이나 거리가 외로움의 요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없는 섬에서 혼자 사니까, 당연히 외로울 거라고 단정짓지만  정작 본인은 초연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곳'이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사람'이니까 가끔은 외로운 거라고. 

서울과 비교하면 불편하고 부족한 게 많은 제주살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 일상의 행복을 찾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곳'이라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 거기에서도 여전히 행복한 게 아닐까요. 그녀처럼 화끈하게 개척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어디든 못 살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주의 낭만은 마음 안에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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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여자
가쓰라 노조미 지음, 김효진 옮김 / 북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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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요?

빨간 약을 선택하면 꿈에서 깨어나 기계와 싸우는 참혹한 현실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고, 파란 약을 선택하면 현실이라고 믿는 환상의 세계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싫은 여자>의 원제목은 <나쁜 여자>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사람이란 참 복잡한 동물이구나... 근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가봐...'

이 소설에서는 두 여인의 일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십대부터 칠십대까지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같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한 명은 고타니 나쓰코. 예쁜 외모를 무기로 평생 남자들을 등쳐먹는 사기꾼. 젊을 때는 결혼사기를 치더니 결혼 후에는 간간히 문제를 일으키다가 결국 이혼하고는 본격적인 사기행각을 벌이며 살아갑니다. 신기한 건 대부분의 남자들이 속은 줄 알면서도 나쓰코를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눈에는 나쓰코의 흑심이 빤히 보이는데 유독 남자들 눈에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평생 자기 힘으로 돈버는 일 보다는 남자를 이용해먹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끝까지. 

또 한 명은 이시다 데쓰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나'이기도 합니다. 나쓰코와는 동갑으로 먼 친척 사이라서, 스물넷 나이에 변호사가 된 데쓰코가 처음 맡은 일이 바로 나쓰코의 결혼 관련 문제입니다. 누가봐도 결혼사기극인데 나쓰코의 변호를 맡은 데쓰코의 능력 덕분에 잘 해결되고 그 이후 쭉 나쓰코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사로 데쓰코를 찾게 됩니다. 만약 변호사 입장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나쓰코와 만날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의외라고 여긴 건, 꽤 나이들었을 때이긴 해도 나쓰코가 자기가 싫으냐고 물었을 때 데쓰코가 바로 아니라고 답했을 때입니다. 데쓰코의 진심은 나쓰코를 싫어할 거라고 짐작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니...  '나쁜 여자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처음 사건 이후로 만나지 않았다면 100% 확실히, 데쓰코는 나쓰코를 싫어하다 못해 경멸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데쓰코는 나쓰코가 변호를 부탁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도와줍니다. 단순히 일적으로 봤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점점 나이가 들수록 질긴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데쓰코 입장에서는 나쓰코의 삶이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처음에는 흥미로 시작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쓰코의 삶에 깊숙히 들어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십대의 데쓰코는 나쓰코에 대한 기억이 여덟 살 때에 멈춰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두 아이에게 커다란 해바라기 꽃 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원피스를 똑같이 만들어주셔서 갈아 입었더니 어른들이 둘 다 예쁘다며 칭찬해주셨던 것, 그래서 그 원피스를 입고 신나게 놀다가 벗어서 세탁기에 넣었는데 데쓰코의 원피스가 갈가리 찢겨져 있었던 것, 알고보니 나쓰코가 저지른 일인데, 밝혀졌을 때 도리어 펑펑 울면서 "내가 더 잘 어울린단 말이야!"라고 해서 원피스를 못 입게 된 데쓰코보다 울고 있는 나쓰코에게 동정심이 더 쏠렸던 것.

그런데 삼십대에도, 사십대에도... 나중에는 칠십대까지 나쓰코의 삶을 지켜본 데쓰코는 나쓰코에게 의외의 면을 발견합니다.

나쓰코는 남자들을 속여서 돈을 뺏었을지는 몰라도 그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줬다고, 그래서 남자들은 행복했는지도 모른다고. 비록 거짓일지라도... 어쩌면 남자들 입장에서는 나쓰코가 매트릭스에 나오는 파란 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쓰코는 정말 나쁜 여자일까요?

데쓰코는 변호사로서 여러 사람의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인생에 대해 배웁니다. 혼자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었구나...삶이란 그 자체로 소중한 거구나...

사람은 저마다 생긴 대로 살아가는 법이니까, 부디 너무 늦기 전에 깨닫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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