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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대만 작가 핑루의 <검은 강>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구성이 특이했습니다. 마치 법정 진술처럼 피고인과 피해자를 나누어 각각의 이야기를 듣고, 주변인들의 증언을 듣는 형식.
그래서 처음에는 좀 딱딱하고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지 못하고 멀찍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커피점 사장 팡거, 점장으로 일하는 자전, 커피점의 단골 손님이자 부부인 훙타이와 훙보, 자전의 남자친구 셴밍.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들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접하는 살인 사건은 얼마나 진실을 보여주는 걸까, 이 소설을 보며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전이라는 여자를 그저 살인자로만 봤을 때는 그녀의 느릿느릿한 말투나 멍한 표정마저도 끔찍하게 느껴졌는데,
그 여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안타까운 연민을 느꼈습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치밀하게 살인을 계획한 냉혈한이 아니라,
사랑에 목마른, 행복을 갈구하는 연약한 여인이라는 것.
늙은 남자 훙보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었습니다. 돈 많은 대학교수이자 골드미스였던 훙타이를 속여 결혼했고, 그 뒤에는 순진한 젊은 여자 자전을 속여 자신의 성노리개로 만들었습니다. 자전은 남자 친구 셴밍이 생기자 진짜 가정을 꿈꾸며, 훙보에게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훙보는 사악한 속내를 드러내며 자전을 이용하여 자신의 아내 훙타이를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과는 훙보와 훙타이가 죽었습니다. 이들 부부를 죽인 사람은 다름아닌 자전이었습니다.
어떻게 어쩌다가 자전은 살인자가 되었을까요?
그 진실은 검은 강 아래 있습니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저자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소설의 모티브는 2013년 대만 단수이허 기슭에서 흉기에 찔려 피살된 시신 두 구가 발견되면서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커피점 살인 사건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한 법적 처리 과정을 보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판결문에는 피고가 체포된 후 "조금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참회할 의사도 전혀 없다." 고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판사는 무슨 근거로 피고의 심적인 부분까지 단정지은 걸까요? 살인을 저지른 피고가 무고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인간의 복잡한 내면까지 평가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저자가 궁금한 점은 그녀가 무엇 때문에 살해했는가, 돈이 아닌 다른 원인은 없었는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사건 뒤에 감춰진 각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그려낸 것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이미 결말이 정해진 사건은 흥미가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저자의 의도대로 검은 강 속에 가라앉은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냈습니다. 각 인물들에게 모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에게는 <검은 강>이 문학 작품과 사회 현실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실험이었다면, 제게는 선과 악의 거리를 가늠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