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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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본격적인 이야기는 220페이지부터.

초반에는 답답하리만치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마치 주인공인 14살 소녀 페이스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답답한데,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그러니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릴 것.

어느날 갑자기 온가족이 외딴 섬으로 떠나게 됩니다. 섬에 도착한 아버지는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힌 채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며 예민하게 굴고, 눈치를 살피던 페이스는 몰래 아버지의 서류함에서 한 통의 편지를 보게 됩니다. 그건 아버지가 그동안 발굴한 화석들이 모두 가짜라고 주장하는 편지였던 것.

사실 아버지는 학계에서 신뢰를 잃게 되면서 야반도주하듯 섬으로 도피했던 건데, 곧 섬에도 학계 소문이 퍼지면서 페이스 가족은 왕따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 와중에 페이스의 아버지 에라스무스 선더러 목사가 절벽에 떨어져 죽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살로 단정짓지만 페이스는 아버지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페이스는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고 합니다. 바로 그 부분이 220페이지부터 시작됩니다. 

단서를 찾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 중 일기장처럼 보이는 가죽책을 발견합니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거짓말 나무'에 대한 연구가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우연히 거짓말 나무의 표본을 구하게 되고, 그때부터 아주 조심스럽게 은밀한 실험을 하게 됩니다. 바싹 마른 덩굴 같아 보이는 식물이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거짓말 나무는 어둡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모든 밝은 빛에 고통을 받습니다. 아주 살짝 소금기 있는 물을 양분으로 흡수하며 사람들의 거짓말을 먹으며 자랍니다. 이 식물에게 거짓말을 먹이는 방법은 나무에 대고 거짓말을 속삭이고 나서 그 거짓말을 널리 퍼뜨리면 됩니다. 거짓말의 내용이 중요할수록, 그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큰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를 먹는 사람은 가장 비밀스러운 지식, 그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을 알게 됩니다.

페이스의 아버지는 거짓말 나무를 통해서 그 누구도 모르는,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알고 싶었던 겁니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비밀, 그 심오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조작한 거짓말이 아버지를 과학자로서 유명하게 만든 화석 '뉴 펄튼 네피림'이었던 것. 

충격적인 건 페이스에게도 이 화석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는 겁니다. 페이스가 7살 때,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페이스를 데리고 해변 산책을 갑니다. 아버지는 조약돌을 바구니에 담으며 작은 홈이 여기저기 패여 있는 돌을 보여주며 똑같이 생긴 돌을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마냥 좋았던 페이스는 열심히 돌을 찾았고 마침내 나선형 모양의 무늬가 움푹 패여 있는 돌을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어린 페이스에게 첫 화석을 발견한 순간을 잊지 말라고, 이 순간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모두 아버지의 거짓말이었다니.... 이후로 아버지는 친구, 동료, 가족뿐 아니라 온 세상을 완벽히 속였습니다. 가장 믿었던 아버지의 거짓말.

놀랍게도 페이스는 아버지가 인류를 돕기 위해 그랬던 거라고 받아들입니다. 이제 페이스는 어떻게든 알아내야 합니다. 정말로 거짓말 나무가 원하는 지식을 알려줄 수 있다면 아버지 죽음의 의문도 풀 수 있을테니까. 아버지가 동굴에 몰래 숨겨둔 거짓말 나무를 찾아간 페이스는 이 식물에게 거짓말을 들려줍니다. 아버지 유령이 걸어 다니면서 그를 중상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고. 슬슬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나요?

거짓말 나무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저주처럼 느껴집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그런데도 너무나 납득이 되는 건 왜 일까요?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고약한 거짓말 나무가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진실은 믿는 게 아니라 거짓을 밝혀내는 거라고.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매우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진실을 알려줍니다. 진실을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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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시각 퍼즐 - IQ 148을 위한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존 브렘너 지음, 지형범 옮김, 멘사코리아 감수 / 보누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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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학은 재미 없지만 퍼즐은 재미있다!

<멘사 시각 퍼즐>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북입니다.

제목만 보면 아이큐 148 이상의 멘사 회원을 위한 것 같지만 일단 책을 펼쳐보면 누구나 도전해볼 만한 문제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출연자들이 다양한 문제를 푸는 내용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풀릴 때까지 방송은 끝나지 않습니다.

원래는 각자 문제를 푸는 방식인데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결국에는 풀어냅니다. 정답을 얼마나 맞췄느냐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는 그 과정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사실 쉽게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있으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마저도 뇌를 자극하는 좋은 스트레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봤을 때, "우와,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니북 사이즈라서 언제든지 휴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심풀이용으로도 좋습니다.

단 번에 풀리는 문제도 있지만 한참을 헤매는 문제 등 문제의 난이도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 실력 문제겠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집중해야 풀리는 문제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림이나 도형을 바라볼 때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보는 건 연습이 필요합니다. 미세한 차이를 알아채는 능력이나 순발력이 중요하지만 조금 부족해도 상관 없습니다. 저는 문제를 잘 푼다기보다는 문제 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빨리 못 푼다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습니다.

이 책 속에는 모두 170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맨 뒤쪽에는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이나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퍼즐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서로 누가 먼저 푸는지 경쟁을 해야 더 재미있겠죠?

대부분 퍼즐에는 몇 가지 공통된 유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워도 반복적으로 퍼즐을 풀다보면 유형마다 쉽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퍼즐의 즐거움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답을 찾다가, 딱 답이 보이는 그 순간인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천재 가능성 진단>이 나옵니다.  각자 퍼즐 풀이 능력으로 천재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인데, 121개 이상 풀었다면 아이큐 상위 2%에 속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멘사에 도전해도 충분한 실력이라고 합니다.

사실 멘사 회원이 아니면 어떤가요, 사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말이죠.  퍼즐을 즐기는 데에는 그 어떤 자격도 필요 없답니다.

<멘사 시각 퍼즐>로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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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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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끝까지 읽어야만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아무도 믿지 마라.

스릴러 공포 영화의 광고 문구 같은 말들이 마구 떠오릅니다.

매력적인 정신과 의사 데이비드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아델.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묘한 관계를 맺게 된 루이즈.

소름끼치는 건 우연은 없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연한 만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 반전입니다.

더 무서운 건 예측했던 반전이 틀렸을뿐 아니라 전혀 예상 못했던 결말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이미 많은 부분에서 단서가 있었는데, 눈앞에 놓고도 제대로 보질 못했습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 가지 시선을 보여줍니다. 그때, 그후, 현재. ... 루이즈, 아델, 그리고 그 사람.

루이즈는 이혼 후 여섯 살 아들 애덤을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파트타임 비서 일을 구했는데 자신의 상사가 며칠 전 바에서 만난 남자 데이비드였던 것.

첫눈에 호감을 느껴 키스까지 했던 남자를 직장 상사로 마주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 암튼 그나마 다행인 건 선을 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데이비드는 유부남이니까.

루이즈와 데이비드는 매우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고... 그 와중에 루이즈는 아델과 길가에서 부딪힌 인연으로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점점 데이비드에게 끌리는 루이즈는 술김에 선을 넘게 됩니다. 한편 루이즈는 친해진 아델과의 관계 때문에 데이비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겉보기엔 루이즈야말로 천하의 못된 X  욕을 들어야 마땅한 불륜녀인데 루이즈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어 보인다는 게 함정입니다.

완벽한 외모와 조건을 갖춘 데이비드와 아델은 쇼윈도우 부부.  특히 데이비드는 집에서조차 아델과 거리를 둘 정도라서 별거 상태로 봐도 무방합니다.

도대체 데이비드는 왜 아름다운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건지, 처음에는 이들 부부의 비밀이 궁금했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정말 이 말을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비하인드 허 아이즈>에서는 인간의 겉모습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속이고, 감추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반전이라고 생각했던 결말조차도, 결국 진실은 저 너머에 있습니다. 마지막 소름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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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 인간의 종말
이반 자블론카 지음, 김윤진 옮김 / 알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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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시아 - 인간의 종말

제목만 봤을 때는 '레티시아'가 특정 용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레티시아는 18세 소녀의 이름입니다. 레티시아 페레. 2011년 1월 18일 밤에서 19일 사이에 납치되어 살해되었습니다.

쌍둥이 언니 제시카와 함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며 서빙 알바를 했던 소녀의 죽음.

저자는 왜 레티시아에게 주목했을까요.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살인범에 대해 내린 형벌을 비판하며, 판사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엄중히 징계하겠다고 공언했고,

이로 인해 사법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파업을 초래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의 개입과 사법계의 파업은 그야말로 국가적 사건이 된 것입니다.

또한 뒤이어 사건 속의 또 다른 사건이 드러납니다.

2011년 8월, 위탁가정의 양부가 레티시아의 언니 제시카를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습니다.

양부가 제시카를 성추행했다면 레티시아 역시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레티시아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죽은 후에야 인간다운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레티시아의 본모습과 존엄성, 자유를 되돌려주고자 합니다.

레티시아의 생명과 인간성을 앗아간 범죄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복원시킨 이 책은,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굳이 비극적인 소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건, 그들을 외면했던 사람들과 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근래 영화 <청년 경찰>을 봤습니다.

경찰대학생인 두 청년은 밤길을 걷다가 우연히 여자가 납치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급한 마음에 납치 차량을 좇아가지만 놓쳐버립니다. 인근 파출소를 찾아가 납치 사건을 신고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경찰 선배를 찾아갔으나 높으신 분의 자녀가 실종되었다며 긴급출동에 나섭니다.

결국 두 청년은 직접 납치된 여자를 찾아나섭니다. 여자는 아직 미성년자인 18세 소녀로 가출한 상태였고,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동거하며 알바하던 중이었습니다.

가출한 소녀들만 계획적으로 납치하여 불법적으로 난자를 추출하여 팔아먹는 나쁜 놈들.

소녀들의 난자로 불임부부의 인공수정을 시술하며 돈벌이에 급급한 산부인과 의사.

만약 두 청년이 아니었다면 납치됐던 소녀들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거나 인신매매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결말은 극적으로 구출된 소녀가 두 청년을 찾아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해피엔딩인가요?

아닙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청년 경찰>에서 피해소녀들을 구한 건 경찰이 아닌 경찰대학생이었습니다. 선량한 두 청년이 슈퍼맨이 된 영화.  현실에서 슈퍼맨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무너진 가정, 학대받는 아이들, 가출 청소년, 성폭행 피해자들....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는 약자들.

우리 사회의 레티시아... 누가 그들을 지켜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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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bookbogo 2019-06-17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레티시아 인간의 종말> 저자와의 만남 안내
서울책보고 인문학토크쇼2 <역사와 현대문학:이반 자블론카의 앙케이트>
-‘레티시아 인간의 종말‘ 저자인 역사학자이자 작가
이반 자블론카 작가가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한국을 방문합니다.

서울시 최초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에서는 6월 19일 인문학토크쇼를 통해
이반 자블론카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였습니다.
작가의 기조 강연 및 북토크, 저자 사인회가 진행됩니다.

*일시 : 6.19.(수) 15:00-17:00
*신청링크 : https://www.onoffmix.com/event/182549
*문의 : 02)6951-4977
 
시를 읽는 오후 - 시인 최영미, 생의 길목에서 만난 마흔네 편의 시
최영미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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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논 바닥이 쩌억 갈라지듯이,

내 안의 시가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겨우 물 한 바가지 퍼올려 마른 가슴을 적셔봅니다.

최영미 시인이 들려주는 마흔네 편의 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존 던, 사포, 윌리엄 블레이크, 조지 고든 바이런, 토머스 무어, 딜런 토마스, 실비아 플라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승자, 마크 스트랜드, 로버트 프로스트, 에즈라 파운드, 월리스 스티븐스, 퍼시 비시 셸리,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마야 안젤루, 세라 티즈데일, W.H. 오든, 밥 딜런,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도로시 파커, 오마르 하이얌, 에밀리 디킨슨,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크리스티나 로제티,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T.S. 엘리엇, 어니스트 헤밍웨이.

근래 셰익스피어의 명문장을 뽑아놓은 책을 보면서 문득 영어로 된 원작시 소네트가 궁금해서 충동적으로 원서를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펼친 순간, 아차!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400년 전에 쓰인 영시라서 지금은 사라진 고어가 섞여 있는데, 음미는 고사하고 해석조차 어려운 수준... 아쉽지만 번역본으로 만족해야 됐음을 뒤늦게 안 겁니다.

영시는 누가 어떻게 번역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우리말로 옮겨야 시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습니다. 시 번역은 단순히 언어전환이 아닌 감성전달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영미 시인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를 어떻게 우리말로 옮겼을까요?


소네트 73

     - 윌리엄 셰익스피어


찬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노란 잎사귀들이 몇 개 매달린, 혹은 잎이 다 떨어진

계절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사랑스러운 새들이 노래하던 성가대는 폐허가 되었지.

해가 서쪽으로 진 뒤에

희미해진 석양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모든 것을 덮어 잠들게 하는 죽음의 분신인

검은 밤이 야금야금 황혼을 몰아내고,

불이 꺼져 죽을 침대 위에서

그를 키워준 나무에 잡아먹히는 장작불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누워

빛나는 불꽃을 그대는 내게서 본다.

이걸 알게 된 그대는, 사랑이 더 강렬해지지.

머지않아 그대가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되지.


Sonnet 73


That time of year thou mayst in me behold

When yellow leaves, or none, or few, do hang

Upon those boughs which shake against the cold,

Bare ruined choirs where late the sweet birds sang.

In me thou see'st the twilight of such day,

As after sunset fadeth in the west,

Which by and by black night doth take away,

Death's second self, that seals up all in rest.

In me thou see'st the glowing of such fire

That on the ashes of his youth doth lie,

As the death-bed whereon it must expire,

Consumed with that which it was nourished by.

This thou perceiv'st, which makes thy love more strong.

To love that well which thou must leave are long.


최영미 시인은 마지막 14행에서 시인의 대화 상대인 그대가 떠나야 할 것을 '젊음'으로 번역하려다가 '사람'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영어단어의 뜻을 알아도, '사랑'의 대상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시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시인이 해석해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은 가을이라는 계절을 흠뻑 느끼게 해줍니다.

찬바람에 흔들리는 잎, 희미해진 석양, 젊음이 타고 남은 재.... 그리고 그대는 빛나는 불꽃.

이 가을에, 계절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떠나보내야 할 운명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은 깊이 사랑하는 것뿐.

이 책에서는 시뿐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합니다. 시를 읽으며, 시인의 삶을 들춰보고, 다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최영미 시인은 <시를 읽는 오후>를 통해서 우리 삶에 '시'라는 멋진 프리즘을 비추어줍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시어들.

우리가 비록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는 없어도, 이 책을 통해 시의 매력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시.

도로시 파커의 <베테랑>을 읽으며... "세상이란 원래 그런거야." (178p)

마야 안젤루의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를 읽으며 ... "하지만, 먼지처럼, 나는 일어날 거야." (145p)

에밀리 디킨슨의 <사랑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

 "사랑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

우리가 사랑에 대해 아는 모든 것;

 이거면 충분하지, 그 사랑을 우리는

자기 그릇만큼밖에 담지 못하지." (200p) 

어쩌면 시를 읽어도, 딱 자기 그릇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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