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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레산드로 다베니아 지음, 이승수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월
평점 :
소설을 읽으면서 '시'라고 느꼈습니다.
세상이 네모라면, 소설은 네모의 이쪽저쪽을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냉철하게 때로는 감상적으로.
그러나 시는 네모라고 판단하지 않고 그 너머 혹은 그 내부를 바라봅니다. 그 속에 숨겨진 빛을 발견하는 이가 시인일 거라고.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제목에서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일까요?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그 진실을 확인했습니다. 잠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가슴뭉클했습니다.
이 소설은 새벽 첫 햇살 속에서 빛을 탐색하는 소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소년은 열일곱 살이고, 앞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인생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사이렌(sirena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로 신체의 반은 새이고 반은 사람인 반인반수)처럼 바다와 그 빛이 소년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속절없이 마법의 덫에 빠져들게 합니다. 순간 그녀가 매혹적인 마법의 힘을 풀고 소년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며 발톱을 세워 움켜잡으려 하고, 사이렌처럼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며 가슴속에 숨겨둔 밤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소년이 사는 도시입니다. - 1993년 팔레르모 (10-11p)"
끝까지 다 읽고나서 다시 이 문장을 읽으니 막혔던 부분들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미로 속을 헤매다가, 이제는 미로를 내려다보는 듯한.
열일곱 살 소년의 이름은 페데리코. 소년은 중학교 시절에 종교학을 가르쳤던 돈 피노 신부님을 만나게 됩니다. 페데리코는 곧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예정인데, 돈 피노 신부님의 부탁을 받습니다. 브란카치오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일을 도와달라는.
소년이 살고 있는 팔레르모는 부자들이 사는 화려하고 밝은 동네와 그곳에서 몇 킬로미터 벗어난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돈 피노 신부님이 수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브란카치오는 마피아가 판을 치는 지옥 같은 동네입니다. 브란카치오에선 너무 많은 아이들이 어둠 속 씨앗 같습니다. 싹을 틔우지 못하는 씨앗, 너무 많은 아이들이 행복을 향해 뻗어나가기 전에 꺾이고 맙니다. 돈 피노 신부님은 모든 아이의 마음속에 씨앗처럼 커질 선한 조각, 상처 입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있는 영혼의 조각을 지켜주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마피아가 갈취, 살인,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만 돈 피노 신부님은 거의 1만 명이 사는 지역에 중학교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진짜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피노 신부님은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여자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러시아 학교에서 일했는데, 모두의 미움을 받는 교육하기 불가능한 아이가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였던 소년은 반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고, 선생님에게 욕하고, 친구들을 때렸습니다. 급기야 소년이 한 아이를 죽도록 두들겨 패는 바람에 퇴학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선생님들이 군부대처럼 양쪽에 도열한 가운데 소년이 한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그 소년 뒤에 교장 선생님이 교도관처럼 호위하며 따라갔습니다. 몇몇 어른들은 꾹 다문 입술에 기쁨의 미소를 띤 채 바라봤지만 여선생님은 홀로 떠나가는 소년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소년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선량한 눈빛을 반짝이면서. 교장 선생님이 아이를 밀쳐내는데도 소년은 여선생님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교장 선생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여선생님에게 달려가 포옹하며 앞으로 변하겠다고, 변하겠다고, 변하겠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날부터 소년은 선생님의 치맛자락에 강아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런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선생님에게 그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누구도 나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없었어요." 그 아이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습니다. 삶이 아이에게 가르쳐준 유일한 규칙은 파괴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파괴합니다. 하지만 소년은 선생님의 눈물을 통해 비로소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꼈습니다.
누구도 마피아에 반대하지 못하는 브란카치오에서 오로지 사랑으로 모든 걸 변화시키는 돈 피노 신부님의 이야기. 그리고 돈 피노 신부님을 통해 진짜 세상을 알게 된 소년 페데리코는 루치아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을 알게 된 페데리코는 돈 피노 신부님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모순어법. 모순.
삶은 스스로 내게 오지 않아. 삶을 얻으려면 누군가를 위해 삶을 잃어야 해." (223p)
끔찍한 브란카치오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그곳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원하면 사랑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그래서 돈 피노 신부님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아이들의 삶에서 눈물을 멈추게 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습니다. 그 중 하나가 브란카치오에 중학교를 만드는 일입니다. 돈 피노 신부님은 허가를 내줄 관청 사무실 문을 끈질기게 두드려대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피아 입장에서 돈 피노 신부님은 제거해야 할 귀찮은 존재였고, 그들은 결국 사냥꾼을 보냈습니다. 돈 피노 신부님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사냥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다렸소." 신부님은 이 마지막 말과 함께 그에게 미소를 보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것처럼. 1993년 9월 15일 20시 40분에 돈 피노는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며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떠났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였다는 것입니다. 브란카치오 중학교는 '돈 주세페 풀리시'라는 이름으로 2000년 1월 13일 개교했다고 합니다. 종교를 떠나서 사랑은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해주는 기적이었음을 돈 피노 풀리시 신부님은 보여주었습니다.
"이게 문제야. 침묵. 일반 사람들, 말하기로 결심한 사람들 주변에 침묵이 있는 한 이 도시에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 돈 피노 신부님처럼 해야 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엄성을 찾을 용기를 주는 거야. ..." (28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