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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눈, 귀, 입 -
만약 셋 중 하나를 잃게 된다면...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
도저히 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불행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블라인드 라이터>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인도 출신의 유명한 맹인 작가 아닐 트리베디와 그의 아내 미라, 아닐에게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 대학원생 라케시.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결말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신문을 읽어줄 사람이 남학생이라면 안심이라고 여겼겠지만, 그 남학생이 젊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걸 간과했습니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세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가면서 이미 머릿속에는 결말이 그려졌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결핍에 대하여...
62세의 쇠약한 몸, 거기에 시각장애를 가진 남자는 부와 명예, 아름다운 아내를 가졌습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 미라는 스물여섯 연하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항상 아닐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합니다. 마치 미라의 인생에 아닐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아닐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라케시는 작가를 꿈꾸는 역사학 전공 대학원생으로 아닐을 통해 작가의 삶을 꿈꾸지만 그를 사로잡은 건 미라였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들 세 사람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진실을 볼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아닐 트리베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내적 욕망과 사랑.
마침 라케시가 아닐의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눈먼 욕망』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부유한 인도의 가정에서 맹인 아들로 태어났고, 어둠 속에서 혼자 있던 나에게 황홀하고도 유일한 위안거리는 수음이었다."(31p)
아닐은 이 책에서 성경험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함께 잠재된 분노를 드러냅니다.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아닐에게 부모는 여전히 아이 취급만 했기 때문에 걸핏하면 화만 내는 아이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삼촌의 방문으로 아닐의 인생은 바뀝니다. 무례하게 행동하는 아닐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삼촌은 아닐을 미국에 데려가게 됩니다. 그 뒤로 버클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아닐은 졸업작품으로 제출했던 원고가 훗날 첫 책의 도입부가 됩니다. 화려했던 여성편력, 그러나 아닐은 "나는 평생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겉모습에 감추어진 깊은 내면을 탐색했지만, 아무도 내게 진실로 화답하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합니다. 라케시에겐 아닐의 아내 미라의 아름다움이 보이지만, 아닐에겐 미라의 무엇이 보였을지...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볼 수 있는 것들과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