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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급자족한다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소설가는 소설을 씁니다.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 있는 이야기, 과연 그 속에 진실은 얼만큼일까요?
<나는 자급자족 한다>의 주인공 역시 서른네 살의 소설가입니다.
그가 겪었던 일들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시작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지금 시각은 2018년 3월 3일 오전 열 시 49분. 나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10p)
".... 뭐니 뭐니 해도 이 글의 최우선 목적은 경고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2017년 봄부터 지금까지 서울, 아니 한반도, 아니 전 세계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당신 곁에서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당신이나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목을 옥죄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시길 " (9p)
한낱 프리랜서 작가였던 그가 CIA 요원 미아 모닝스타를 만난 건 2017년 4월 중순입니다.
그녀는 CIA 한국지부 비밀공작처장으로 코드명 붉은 카멜레온입니다.
제법 큰 돈의 보수를 제시하며 모니터링 요원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라면서.
다만 앞으로 할 일은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한 업무니까 마음 놓고 투신해도 된다고.
그리하여 CIA는 소설가를 고용했고, 소설가는 특이한 창작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CIA가 소설가를 고용했다는 점입니다. 왜? 무엇때문에?
그들은 진실을 가공해내는 소설가의 창작 능력을 이용해서 적으로 규정한 자급자족단을 와해시키고자 했던 것.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이 소설을 그냥 허무맹랑한 소설로 치부했겠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대부분의 첫 반응은 "설마~"였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고, 그 설마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물며 사회 비리를 고발한 영화들이 현실을 이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안타까운 건 소설가의 아내가 자급자족단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단체에서 활동함으로써 소설가의 갈등상황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를 돌이켜보자면 전조는 있었습니다. 아내가 가입한 미니멀리즘 동호회에 쓴 게시글 - 배우자를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을 보려고 클릭했다가 회원 가입까지 하게 됩니다. 그때 가입 절차상 질문은 - 최근에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 이에 대한 답변은 "양심, 꿈, 목표, 자존심, 걸작을 쓰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소설가는 자급자족과 미니멀리즘을 경멸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정작 본인이 자급자족했다는 걸 깨닫는 모순입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현실입니다. 과연 소설 속 현실과 우리 사는 현실은 얼만큼 다른 걸까요? 소설이 소설 같지 않아서 더 소름돋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