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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도 개봉한 <오! 수정>이라는 한국영화가 있었어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보다 더 뇌리에 남는 건 '관계에 대한 양성(兩性)의 차이'였어요.
여자와 남자가 이토록 다른 시각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결코 합쳐질 수 없는 평행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을 한다는 미스터리.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11)』를 읽은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그의 신작『연애의 기억』을 읽었더니 마치 연작처럼 느껴졌어요.
일흔을 넘긴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첫사랑의 기억.
달달함을 기대했다면, 그 기대를 접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원제는 <The Only Story>예요. 인생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 즉 사랑 이야기예요.
그는 맨처음부터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요.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13p)
이해하셨나요? 줄리언 반스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는 더 괴로운가, 덜 괴로운가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어요.
이 소설은 열아홉 청년과 마흔여덟 유부녀의 사랑 이야기예요.
폴은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고, 수전은 두 딸을 둔 중년 여성이에요. 두 사람이 테니스 파트너가 된 건 우연이었어요.
어떻게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 건지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원래 사랑이란 감기처럼 찾아오는 법.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사랑은 파격이자 불륜이에요. 그러나 당사자들에겐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 거예요.
시작부터 끝이 보이는 사랑.
폴은 아직 어려서 몰랐겠지만 수전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다만 수전은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폴의 시점에서 바라본 수전은, 그가 사랑했던 첫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는 처음 함께했을 때의 그녀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싶어해요.
그들 곁에서 지켜보던 조운은 알고 있었어요. 모든 게 망하고 잘못되어버리면 폴은 아마 극복하겠지만, 수전은 못 할거라고.
진실은 친절하지 않아요.
스물다섯의 폴, 서른이 된 폴은 사랑했던 그녀를 점점 버겁게 느꼈어요. 나쁜 꿈을 꾼 것처럼. 그게 현실이에요.
남녀가 헤어졌을 때 여자는 "x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모든 게 좋았는데" 하고 말할 가능성이 높았다.
... 반면 남자는, "안됐지만 처음부터 다 잘못된 거였어" 하고 말할 가능성이 높았다.
... 그가 처음 이런 어긋남에 주목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높은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인생의 건너편 끝에 이르러, 그는 둘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330p)
『연애의 기억』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사랑은 그냥 거기 있었다" (353p)인 것 같아요.
폴과 수전의 사랑은 서로 행복했던 그 순간, 그 시점에 머물러 있어요.
단 하나의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기억일 뿐이에요. 한때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복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진실은 항상 변하고 있어요.
폴의 사랑도 진실이고, 수전의 사랑도 진실이니까. 양립할 수 없을 때도 진실인 것이 바로 사랑인 것 같아요.
삶의 슬픔... 찰나의 사랑을 기억하며, "안녕, 수전"이라는 작별 인사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