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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의 신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2월
평점 :
"모두 다 얕은 숨을 쉬고 있다.
타인의 귓가에 큰 숨소리를 내지 말 것, 누가 내뿜었는지 모르는 술 냄새 풍기는 공기를 들이마시지 말 것,
코앞에 바짝 서 있는 이성의 냄새를 맡지 말 것.
그리고 조심성 없이 꾸물꾸물 움직이지 말 것.
모두가 완전히 똑같은 규칙을, 딱히 누구에게 강요받지도 않았는데, 스스로에게 부과한다.
만원 전철이 아닌 곳에서 타인과 이렇게 밀착한다면,
그 즉시 이상한 행위로 취급받는다.
그런 이상한 행위를 지금 이 차량에 탄 거의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반복한다.
하루에 두 번, 반드시 이상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7-8p)
정말 이 부분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완전 똑같잖아~~'
사람들로 꽉 찬 전철 안에 갇혀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평소라면 절대로 타인에게 허용하지 않을 물리적인 거리 혹은 간격이 허물어지는 당혹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밀착된 상태에서 불편한 시선을 피하며 버티다가, 문득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게 되는 순간들.
<막차의 신>은 아가와 다이주 소설입니다.
철도를 소재로 한 단편 미스터리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고 고민하다가 '막차'라는 소재가 떠올랐고, 한 편 두 편 쓰다가 일곱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참고로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은 아닙니다.
사람들로 꽉 찬 전철이 운행 도중 급정차를 합니다.
안내방송에서 다음 정차역인 K역에서 인사사고가 발생했다면서 30분 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시간은 점점 자정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저마다 막차 시간을 걱정합니다.
우연의 일치로 같은 시간, 전철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급정차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그 파급력이 달라집니다.
<파우치>는 자신의 치마 허리를 더듬는 치한에게 말 한 마디로 한 방 먹이는 서른둘 직장인의 반전 스토리이고,
<브레이크 포인트>에서는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벤처기업 엔지니어의 퇴근길 이야기가,
<운동 바보>는 근육질 경륜선수와의 사랑에 끝을 고하는 30대 직장여성의 현실고민이,
<오므려지지 않는 가위>는 평생 이발사로 살아온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달려가는 아들의 애타는 마음이,
<고가 밑의 다쓰코>에서는 K역에서 발생한 인사사고와 관련된 숨겨진 사연이,
<빨간 물감>에서는 오해가 오해를 낳게 된 여고생의 이야기가,
<스크린도어>는 철로에 떨어진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만나기 위해 역 매점에서 25년간 일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장 남자라는 색다른 소재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막차의 신>은 신이 아니면 알 수 없었을, 그들만의 속사정을 보여줌으로써 차가운 타인의 시선에서 따뜻한 이웃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재미있는 건 책의 겉표지 그림은 막차 시간인 한밤중인데, 표지를 걷어낸 책의 그림은 환한 살구빛이라는 것입니다.
일부러 들춰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림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우리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