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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
안드레스 곰베로프 지음, 김유경 옮김, 이기진 감수 / 생각의길 / 2019년 2월
평점 :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다가 문득 에너지보존법칙이 떠오른다면?
'에이, 누가 그러겠어?'라고 장담하지 마시길.
<어느 칠레 선생님의 물리학 산책>은 우리 일상 속에 숨겨진 물리학을 끄집어내는 책이에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에서도 특별한 뭔가를 발견하는 능력을 가졌어요.
그런데 그 특별한 발견을 널리 알리는 일에는 서툰 것 같아요. 바로 과학의 대중화!
이 책의 저자는 과학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믿는 물리학자이자 교수, 작가, 과학연구가 안드레스 곰베르로프예요.
현재 칠레 아돌포 이바녜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과학자들에게 과학은 즐거움과 열정의 대상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정반대라는 사실.
도대체 왜 과학은 비호감과 두려움 더 나아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그것을 '가지 효과'라고 불러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요리를 싫어하는데 그건 가지 탓이 아니라는 거죠.
어릴 때부터 먹는 습관이 안 되어 있거나, 가지를 요리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오~ 맞는 말이에요. 저희집은 어머니가 가지를 엄청 맛있게 요리해주셔서 가족 중에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요.
그래서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던 것 같아요. 맛있는 가지를 왜?
과학도 마찬가지예요.
이 책은 과학을 가지처럼 싫어라 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한 '과학의 맛'이에요.
살짝 맛보기 시식용?
일단 책을 펼쳐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를 괴롭힐 끔찍한 맛은 전혀 없어요. 해치지 않아요 ㅎㅎㅎ
과학보다 더 지겹고 따분한 사람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느니, 이 책을 읽는 게 훨씬 더 유익하고 즐거울 거예요.
"매년 9월 26일 나는 올리비아 뉴튼 존(Olivia Newton-John)의 생일을 기념한다.
그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나를 감동하게 한다.
나는 그녀가 음악사에서 평론가들에게 가장 부당한 대우를 받은 예술가 중 한명이라고 여긴다.
그녀가 부른 <제너두 Xanadu>를 한 번 들어보라.
... 그녀가 출현했던 《그리스》에서 춤을 추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80년대 초 사춘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 주인공 샌디가 남긴 영향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46p)
아하, 48년생 미국 가수이자 영화배우 올리비아 뉴튼 존~~
잘 모르지만 다행히 영화 《그리스》는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어요.
그 올리비아가 6세 때,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막스 보른(Max Born)은 물리학에서 비결정론(상태나 결과의 인과론적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의 아버지이고,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라고 썼던 유명한 편지에 맞섰던 인물이에요.
하지만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외손녀와 똑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요.
그가 1954년 노벨상을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30년도 전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양자역학 창시의 업적으로 그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았지만,
사실 이것은 보른이 처음 만든 용어였어요.
20세기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은 인간이 만든 과학 이론 중 가장 막강하면서 묘한 이론 중 하나라고 해요.
양자역학 초기에 가장 유명한 연구는 슈뢰딩거가 완성했는데, 슈뢰딩거의 방정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요.
아무도 해석할 수 없는 이상한 부분인 파동함수가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을 내놓은 사람이 바로 올리비아의 외할아버지 막스 보른이에요.
보른 이전에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이 결정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동전을 던지면 특정 위치와 방향, 속도로 떨어지도록 정확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요.
뉴턴의 이론을 사용해서 이 모든 변수를 정확히 잴 수 있다면, 던지기 전에 결과를 알 수 있을 거예요. 뉴턴은 측정할 때 발생하는 우연을 우리 무지의 결과로 봤어요.
하지만 양자역학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이론에서 불확실성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전자를 생각해 보면 뉴턴 역학에서는 연구 대상이 매 순간의 전자 위치라면, 양자역학에서는 연구대상이 정해진 순간에 특정 장소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이에요. 그것을 관찰하지 않는 동안에는 그 어디에도 전자가 없어요. 따라서 전자는 우리가 관찰할 때 입자로 나타나고, 그때 그 위치를 결정할 수 있어요.
이로써 양자역학은 물리학에서 결정론의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어요. 오~ 놀라워라, 양자역학!
처음으로 과학 이론의 근거에서 비결정론적 요소가 드러났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이자 문화적인 의미가 크다고 해요. 과학뿐 아니라 철학까지도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새삼 놀랍네요.
이 책을 읽고나서 올리비아 뉴튼 존의 <제너두>를 찾아서 들어봤어요. 정말 올리비아의 목소리는 맑고 청량해서 좋았어요.
Xanadu(제너두)가 "이상향, 도원경(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곳)"을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1980년 영화 <제너두>에 삽입된 곡이었더라고요.
저자의 탁월한 비유였어요. 이 책은 물리학의 세계에 대해 몰랐던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제너두"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