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알고 있다
엘리자베스 클레포스 지음, 정지현 옮김 / 나무옆의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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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는 알고 있다>라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과거에 봤던 공포 영화가 떠올랐어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이 왜 소름끼치는지 알 거예요.

도대체 지난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소설의 압권은 '진실게임'과 같은 서사 방식이에요.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요. 딸 찰리 캘러웨이, 엄마 그레이스 캘러웨이, 아빠 앨리스테어 캘러웨이.

열일곱 살 찰리는 뉴욕 부동산 업계의 거물 캘러웨이 집안의 맏딸로, 명문 사립 기숙학교 놀우드에 다니고 있어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찰리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십 년 전 엄마가 호숫가 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아빠가 엄마를 죽인 살인자인 것처럼 떠들어 댔다는 거죠. 아빠에게는 당연히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법적 처벌은 없었어요. 실종된 엄마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2007년 8월 4일은 그레이스 캘러웨이가 사라진 날이에요.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진실은 단순히 그 날 하루만으로는 알 수 없어요.

더 오래 전 과거, 1996년 가을 그레이스 페어차일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수영 장학생으로 뉴저지 트렌턴 주립대학에 합격했어요. 그러나 미술에 집중하려고 열아홉 살에 대학을 그만뒀고, 트렌턴에 산 지 삼 년째 되던 스물두 살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어요. 그 남자가 현재의 남편 앨리스테어는 아니에요.

그 당시 앨리스테어 캘러웨이는 마고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우와, 정말 얽히고 설킨 관계라서 우리나라 일일드라마 보는 줄 알았어요. 소름돋는 반전!


현재 찰리는 아주 은밀한 초대장을 받았어요. 바로 캠퍼스 비밀 클럽 에이스(A's)예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비밀리에 운영되는 막강한 클럽이에요. 오로지 클럽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입회할 수 있는 테스트를 받을 수 있어요. 정식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되고, 이 모든 과정은 비밀로 지켜야 돼요.

찰리가 에이스의 입회 권유를 받은 건 캘러웨이라는 이름 때문이지만 정식 멤버가 되는 건 자신의 능력 문제라서, 꼭 회원이 되고 싶었어요.

선배 렌은 찰리와 사촌 레오를 자신의 차로 데려가서 키스를 하라고 시켰어요. 망설이는 두 사람에게 에이스 자격을 운운하며 강요했고,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카메라로 찍었어요. 다 끝나고 렌은 찰리와 레오에게 윙크하며 말했어요.
"비밀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거야."  (42p)

첫 번째 미션은 낸시 레이건의 목걸이를 금요일 자정까지 가져오는 것.  한 마디로 훔치라는 뜻.

여기에서 낸시 레이건은 사람이 아니라 콜린스 교장 선생님의 애완견 핏불의 이름이에요. 얼마나 예뻐하는지 개를 위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어요.

음,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미션이다 싶었는데 점점 도가 지나친 미션이 주어졌어요.

자신의 미션을 실패한 사람에게는 처벌이 내려졌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처벌인데, 당하는 사람은 에이스의 정체를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어요.

찰리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엄마의 실종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됐어요. 지금껏 믿어왔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자신이 봤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모든 비밀은 진실을 감추는 게 목적이에요. 그 진실이 밝혀지면 누군가는 다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숨겨도 완벽한 비밀은 없어요. 자신까지 속이는 비밀은 독이 될테니까.


대학교 때 사진학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가 안셀 애덤스의 인용구를 벽에 걸어놓았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난 사진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첫 번째 순간에는 사진작가가 사진을 만든다. 그가 프레임과 각도, 조명, 피사체의 구도를 선택한다.

사진가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연출된, 인공적인, 사진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진은 사람이 그것을 보는 순간 두 번째로 만들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사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자신을 본다.

자신의 고유한 맥락과 이야기, 인식을 더한다.  의미를 만든다.

나는 사진에 실제로 담긴 것보다 사람들이 사진에서 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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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 - 열여덟 살 자퇴생의 어른 입문학 (入文學)
제준 지음 / 센세이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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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학교가 나랑 맞다고 느끼는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요.

초등학교 교사가 아이를 학대하고, 경쟁을 부추기고... 그러면서 학교 폭력을 근절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명문대 진학에 목숨을 건 자칭 하이클래스 부모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는데, 그후 경각심은커녕 '입시 코디'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는...

물론 모두가 똑같이 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건 아닙니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라는 책은 열여덟 살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아이.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아이를 '자퇴생'이라고 부릅니다.


"불확실한 것이 많을수록 가장 확실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책 속 글귀였다.

나에게는 불확실한 시간이 두 번 있었다. 작년 6월에 한 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 번.

작년에는 갈 곳이 안 보여서 불확실했고,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불확실하다.

자퇴 후 세 달 동안은 놀면서 행복했지만, 그다음은 지옥 그 자체였다.

... 자퇴 후에 겪었던 지옥 같은 폭풍우는 흔들림을 견딜 수 있도록 나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근육도 찢어지면서 커진다. 나도 그랬나 보다.   (178-180p)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열여덟 살의 선택... 아마 인생에서 가장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열여덟 소년의 일기장과 같습니다. 자퇴 이후의 솔직한 심경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자퇴 후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감정 때문에 오래 힘들어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것.

'내가 나를 제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나'를 알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독서, 집필, 스피치 수업, 여행, 사진과 목공에 대한 공부 등등

독서 모임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퇴하고 나서 부모님이 해준 말은 "놀아라"였습니다. 마음껏 놀아 보니, 도리어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열여덟 소년은 교실 밖 세상을 통해 인생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인생에 어디 정답이 있던가요.

세상은 이것저것 비교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각자 인생은 비교하지 맙시다.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끝까지 곁에 있을 줄 단 한 사람은 '나'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소년은 벌써 자신의 책을 썼고,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니 주변에서 할 일은 응원뿐인 것 같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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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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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네요.

류시화님의 <지구별 여행자>.

어쩌면 나만 변해버린 느낌이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잊은 것 같아요.

별일 없는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언제든지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오랜만에 다시 읽는 <지구별 여행자>는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워주네요.

살다보면 다 아는 것 같아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 투성이에요.

그래서 나이만 먹은 어린애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살아 온 세월만큼 지혜도 쌓인다면 좋으련만... 잠시 그 지혜를 빌려보려고 해요.


식당 주인 라자 고팔란 씨는 말끝마다 명언을 늘어놓기 좋아했어요.

점심 한 끼 먹으러 왔다가 잘난 체 하는 식당 주인 설교로 허기를 채워야 하니, 손님 입장에서는 절대로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류시화 시인은 그 근처를 갈 때마다 고팔란 씨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대요. 음식 맛도 맛이지만, 한 접시에 명언을 대여섯 개쯤 얹어 내오는 식당 주인이 자꾸 보고 싶어져서. 그 날도 수프에 소금이 너무 들어가 약간 짜다고 지적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라자 고팔란 스승께서 말씀하셨대요.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   (105p)


그날 밤 야간열차를 타고 멀리 떠나야 했는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라자 고팔란 씨가 인도 만두 사모사 몇 개와 함께 마지막 명언 하나를 선물해주었대요.


"어디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106p)


뭔가 이 말이 가슴에 콕 박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인생의 길에서 어디로, 얼만큼 가든 나는 '그곳'에 있다는 사실.

지금 여기.

여행을 떠나면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재미있는 건 가장 낯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

그때도 지금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에요.

다 알게 될 즈음 비로소 자유롭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지구별 여행자.


"내가 누구이든지, 그리고 내가 어디에 서 있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축복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여행자로서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신에게만 의지해 살아가는 방랑 수도승들은

차츰 나의 스승이 되었다.

'단순한 삶, 고결한 생각'이라는 인도의 슬로건이

내 메모지 첫 장에 기록되었다." (246p)


2019년 <지구별 여행자>는 작은 노트가 함께 왔어요. 여행을 하며 메모해도 좋고, 일상을 끄적끄적 낙서해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인도로 떠나야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직까지 가보진 못했네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꼭 인도를 가야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여행의 이유를 알고 있다면 여행 그 자체로 충분한 것 같아요.

여행은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고 즐거워요. 일단 여행이 시작되면 계획이 어긋나고 불편한 것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뭔가 얻는 것이 있다면 그건 마음 속에 모두 담겨 있을 거예요. 그 마음에 담긴 것들이 바로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줄 거예요. 그렇게 조금씩 나를 알아가요.


"아즈 함 바훗 쿠스 헤!" (291p)

(오늘 난 무척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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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줄까? - JM북스
유키 슌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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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메... 집단 따돌림, 괴롭힘을 뜻하는 일본 말이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 현상을 일본의 이지메로 설명했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그 말을 빌려온 것인데, 마치 일본에서 집단 괴롭힘이라는 나쁜 문화가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진짜 유행처럼 왕따가 퍼졌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누군가 한 명을 찍어서 괴롭히고, 당한 아이가 혼자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돼요.

실제로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건 너무나 슬픈 현실이에요.


<밀어줄까?>는 일본 중학교에서 벌어진 지독한 따돌림과 괴롭힘에 관한 이야기예요.

겨우 중학생인데... 이 책을 읽다가 잠시 잊고 있었어요... 나이가 어리다고 다 순수한 건 아니라는...

같은 반 친구에게 장난으로 별명을 붙일 수는 있어요. 어디까지나 장난은 서로 웃을 수 있어야 해요.

만약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장난이라면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건 결코 장난일 수 없어요.


"가이추"

네가 중얼거렸다.

[해충 (害蟲) : ' : 가이추] 인간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곤충.

그 단어의 진짜 뜻을 너는 아직 모른다.       (6p)


아이들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괴롭힘을 당할 때, 동조하건 외면하건 속마음은 똑같았던 거예요.

친구에게 '해충'이라고 불렀던 그 아이는 미처 몰랐을 거예요. 진짜 해충은 남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는 저 자신이라는 걸.

너무 잔인해요. 이 소설은 읽는 사람마저 괴롭게 만드네요.

누가 더 잔인하고 나쁜지, 저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어요.


일본과 우리나라는 교육환경이 유사한 부분이 많아요.

대학 입시를 향한 치열한 경쟁, 그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 그래서 아이들은 친구를 그저 경쟁자로 여기는 것 같아요.

무엇을 하든지 잘해야만 하고, 못하는 아이들은 무시당하거나 놀림을 받아요.

무조건 1등이 되라는 사회 분위기가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엘리트를 양성해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도 우리나라 학교는 바뀌지 않았어요.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근래 읽은 책에서 봤던 "우분투"가 떠오르네요.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서로 앞다퉈 달리지 않고 다같이 손을 잡고 달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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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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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은 대단해요.

이름만으로 선택하게 되는 책.

<잠자는 숲>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에요.

저는 가가 형사가 초면이네요. 가가 교이치로는 누구인가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에 태어나서 30년 넘게 그의 작품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우와, 30년이라니~~ 이 정도 세월이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실존인물과 다를 게 없는 존재감이 느껴질 듯.

재미있는 건 그 존재감이 셜록 홈즈와 같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이웃과 같은 평범함이라는 사실.

과거에 교사로 재직하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형사가 되었다는 점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암튼 <잠자는 숲>에서 가가는 30대 전후의 신입 형사로 등장하여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 사건을 풀어가고 있어요.

실제 수사를 하는 형사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수사 과정을 지켜볼 뿐.


가가 형사는 교사였던 과거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에 관하여 노트에 적으면서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다음과 같이...


4월 10일 일요일, 네리마구 히가시오이즈미의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인사건 발생.

내 차로 직접 현장에 갔다. 23시 25분 현장 도착.

피해자의 신원은 불명. 피의자는 다카야나기 발레단 단원 겸 사무국 직원 사이토 하루코(22세).    (30-31p)


신입 형사 가가는 베테랑 형사 오타와 함께 현장에 갔어요.

석 달 전쯤에 가가는 상사가 소개해준 여자와 발레를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바로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였어요.

생전 처음으로 발레를 관람하는 가가는 화려한 발레 공연 1막은 흥미진진하게 보다가 조용하고 서글픈 멜로디가 나오는 2막에서는 그만 졸고 말았어요. 막간의 휴식 시간, 같이 갔던 여자의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고, 당연히 퇴짜 맞을 예상을 하며 3막에서 실컷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3막에서 검은 의상의 발레리나가 등장하여 가가의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스토리로 봐서는 백조의 연인인 왕자의 마음을 빼앗는 악역인 흑조인데 중간에 연달아 몇 십 번이나 회전하는 장면에서 극장 안에 박수가 일었어요. 가가도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어요.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프리마발레리나는 백조를 연기하는 다카야나기 아키코라고 했는데, 가가의 눈에는 그 흑조 발레리나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를 갖고 있었어요. 그 발레리나가 바로 아사오카 미오였어요. 피의자 사이토 하루코의 절친이자 함께 살고 있는 동거인.

미오,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가가는 생각했어요. 가가 본인은 단순히 팬심이라고 하는데, 이건 누가봐도 첫눈에 반한 거죠.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 살인사건 이후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발생했어요.

이번에는 가지타라는 연출가.

놀라운 건 저녁 6시 반 개막을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 도중에 의자에 앉아 있던 가지타가 돌연 쓰러졌다는 거예요.

가지타가 입고 있던 면 셔츠 등판 한가운데 다갈색 얼룩이 묻어 있었는데, 살갗에 바늘 자국의 상처가 있었어요. 사인은 중독사.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처음엔 이 질문에 답을 찾았어요. 그러다가 발레리나의 삶을 주목하게 됐어요.


발레리나의 삶.

예전에 최고의 발레리나 강수진님의 다큐를 보면서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피나는 노력을 알게 됐어요.

오로지 발레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매일 발레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했어요.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잠자는 숲>을 읽으면서 발레리나의 눈물을 보았어요.

문득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뭘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사랑보다 더 소중한 게 있을까요.

솔직히 가가 형사는 로맨스 능력으로 보면 꽝인 것 같아요. 이토록 어설프다니... 많이 아쉬웠어요.

어쩌다보니 사건 해결보다 딴 데 마음이 가 있었네요.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아요.

무시무시한 살인사건 이면에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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