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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 라이프 - 인생을 바꿔드립니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7
베르나르 무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신은 진짜 인생을 살고 있나요?
영화 <트루먼 쇼>(1998년)를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주인공 트루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30년 동안 일상의 모든 것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는데, 정작 본인만 그 사실을 몰라요.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의 환경까지 전부 가공되어진, 거대한 세트장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돼요.
어릴 때부터 여행가가 꿈인 소년에게 온갖 공포증을 심어서 세트장인 섬을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결국 트루먼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가짜 인생에 종지부를 찍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내 인생도 보이지 않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된 인생을 억지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과연 내가 원하는 것들이 진심인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러다가 상상했던 적은 있어요.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희한하게도 잠깐의 상상은 즐거워도, 진심으로 원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부족한 나로 사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아요.
베르나르 무라드의 소설 <세컨드 라이프>는 굉장히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줘요.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거예요.
그냥 죽을래? vs 새로운 인생을 살래?
처음에는 신이나 천사가 나타나서 뿅!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더 현실적인 발상이에요.
국가가 나서서 절망에 빠진 개인을 구제하는 방식이에요.
자살 예정자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삶을 맞바꾸게 해주는 거예요. 이른바 두번째 기회를 주는 거죠.
각자 사회적 지위, 재산, 기타 등등 조건은 다르지만 자살을 계획했다는 점은 동일하니까 본인이 수락하면 참여할 수 있어요.
어차피 죽음을 선택하려던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내놓고, 제비뽑기라는 우연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예요.
주인공 마르크 바라티에는 마흔번째 생일날,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두번째 기회>라는 제안을 받게 돼요.
신기한 건 이 제안에 수락하면, 그때부터 리얼리티 방송으로 모든 내용이 공개된다는 거예요.
자살 예정자였던 마흔 살의 남자 열 명이 모여서 제비뽑기를 통해 인생을 맞바꾸는 과정이 생방송으로 중계돼요.
마르크 바라티에와 인생을 바꾼 사람은 아르노 드몽탈이에요.
각자 아내와 자녀가 있는데, 이 부분은 아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요. 새로운 인생, 새 남편을 받아들이겠느냐고.
좀 황당하죠?
예전에 외국 방송에서 아내를 바꾸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 있는데, 그건 여름 캠프처럼 일정 기간의 체험 내지 맛보기였다면, 이 소설에서는 국가가 공권력 행사를 통해 개인 간의 인생을 바꿔주는 엄청난 프로젝트인 거예요. 국가가 국민에게 기회 균등을 위한 독톡한 정책을 펴는 거죠. 타고난 인생이 불우했더라도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두번째 기회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횡재일 수 있어요. 하지만 국가는 신이 아니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돼요.
한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건 그 자신이에요. 남들이 바라보는 배경과 조건은 껍데기일뿐.
그래서 마르크를 보면서 슬펐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곁에 두고도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남자.
그의 고백처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자기자신을 향한 증오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게 가장 커다란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