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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평점 :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이토록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말이죠.
정말 변하지 않는 게 있어요.
악(惡)...
인간 내면에 뿌리내리는 순간,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게 만드는 그것.
가장 두려운 건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일말의 양심이나 죄책감도 없는 존재.
『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은 주원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올해 신작인가 했더니 2012년 출간작이네요. 지금 OCN 오리지널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의 원작 소설이라고 해요.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처럼 끔찍한 장면들이 떠올라서 소름이 돋았어요.
"서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온전히 보존된 한 구의 시체가 아니었다.
잘린 손, 그 하나였다." (15p)
"정확히 네 명이 죽었다. 서울 시내 곳곳, 강남과 강북을 가리지 않고, 살해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추락사를 가장한 사고, 뺑소니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사체 수습조차 어려운 피해자도 있었다." (23p)
주인공 김서희는 아버지 김승철 의원의 돌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지역구였던 해능시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어요.
당선된 그날밤 새벽 2시, 서울시 광역수사대 강력계 반장 주민서의 전화를 받았어요. 두 사람이 만난 장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일명 '광화문의 잘린 손' 사건으로, 그 손은 서희의 전 남편 정상훈의 손이었어요. 그렇다면 정상훈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일 년 전 이혼한 뒤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전 남편을, 그것도 잘린 손으로 만나게 되다니...
정상훈의 양아버지 정영문 사회통합위원장은 서희에게 한 달 전에 받은 상훈의 편지를 건넸어요. 수신자는 김서희.
헤어진 아내에게 편지를 직접 보내지 않고 양아버지에게 전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군다나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당신에게 미안해"였어요.
그 뒤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과 차례로 발견되는 잘린 발, 잘린 귀... 입과 눈, 머리, 심장까지 토막낸 살인마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광화문 광장에서 자칭 종교 지도자라는 사람이 하느님 계시를 들먹이며 정치 선동을 하는 시국인지라, 책 속에 나오는 대기업 CS 그룹 산하 CS 화학에서 발간하는 정기 사보의 내용이 절묘하게 느껴지네요. 종교, 기업에 손을 내밀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너무나 오랫동안 그것들이 활개치는 세상이었어요. 이제는 똑똑히 그것의 정체를 보고 말았어요. 절단된 신체 일부분이 주는 공포감처럼 진실은 감당하기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져야만 해요. 침묵해서는 안 돼요.
"왜 진실을 알고 싶으세요?"
"......"
"단순한 호기심입니까, 아님 직업적 본능입니까?"
"틀렸어."
"그럼 뭐죠?"
"알고 싶어. 그냥, 막."
말을 이어나가는 민서의 입술이 떨렸다. 민서는 승호를 보지 않았다.
취조실 벽면 너머의 아득한 곳, 희미한 불빛 속에 가려진 실체의 세밀한 면, 그 아득한 곳을 넘보고 있는 듯했다.
"사람 열 명이,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사지가 훼손되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이 침묵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어."
"......"
"답이 되었나?"
"예."
"......"
"어느 정도는." (184-185p)
<반인간선언>은 소설 속 진실을 찾다가 문득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어요.
그래, 우리도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있지... 그 날 바다와 7시간... 모두의 거짓말...
작가는 이 소설을 '스스로 인간이기 위해 반인간을 선언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해요.
적어도 그는 인간이기를 소망했어요. 반인간선언은 절망의 외침이었어요. 광장의 외침이었어요.
그러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는 놀랍게도 선한 얼굴로 우리 곁에 숨어 있어요. 이제 밝혀내야 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