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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의 '치'란 영적 세계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지상의 인간을 보완하는 영적인 존재로 말이다.
그 무엇도 혼자 존재할 수는 없기에,
곁에는 항상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한다.
- 치누아 아체베, <이보 우주론에서의 치> (9p)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소설이에요.
이보는 나이지리아의 동부 지역 부족을 뜻해요.
첫 장을 펼치면 <도표로 보는 이보 우주론>과 <이보 우주론에 따른 인간의 구성>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이보 우주론'부터 알아야 해요. 우주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해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식물 등의 영역인 '우와'와 영혼의 영역인 '벤무오'가 있어요.
수호령들은 두 개의 세계 모두 존재해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려 보면, 저승과 이승의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주문,
오바시디넬루시여 -
저는 피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영원한 밝은 빛의 땅 엘루이궤의 웅장한 베추쿠 법정에 나아와 당신을 뵈옵니다 -
저 역시 다른 수호령들처럼 여러 차례 환생을 통해 우와로 가 새로 만들어진 육신에 깃들었나이다 -
...
제가 온 까닭은 그분이, 이번 생에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제 주인을 가리키며
불리한 증언을 할까 두렵기 때문이옵니다 -
제가 목격한 모든 것을 증언하고, 제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한들
주인은 실수로, 모르고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음을
당신과 위대한 여신께 알려 두 분을 설득하고자 서둘러 왔나이다 -
이 일은 거의 모두 제가 전하는 것이오나,
그와 제가 하나이기에 이 이야기는 진실하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제 목소리이옵니다.
... 저는 왕의 혀처럼 대담하게 주인을 위해 빌고자 당신 앞에 섰나이다.
당신께서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믿나이다 - (15-17p)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요.
네, 이 소설은 전지적 영혼 시점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원래 수호령들은 주인의 모든 일에 간여할 수 없어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답게 존재해야 하므로.
그런데 치논소의 수호령은 딱 한 가지를 그의 정신에 집어넣었어요.
그건 바로 '새들을 사랑하며 날짐승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이 변화된 사람'이라는 생각이에요.
수호령은 그 순간, 그가 한때 소유했던 새끼 거위의 흥분된 모습을 그의 정신에 비추었어요.
별다른 효과는 없었어요. 다리 위의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주인은 불과 며칠 전 익사한 여자를 봤는데, 여기 눈앞에 강으로 몸을 던지려는 다른 여자와 마주친 거예요.
운명의 장난처럼.
주인은 강력하게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강에 빠져 죽으면 안 돼요. 절대로요."
그는 닭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누가 저 안에 떨어지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죽어서 아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고요."
... "이런 닭들도 똑같아요." 그는 다시 말한 뒤 닭들을 다리 너머 어둠 속으로 내던졌습니다. (26p)
닭들은 살려고 처절하게 버둥거렸지만 곧이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깃털 한 장이 그의 손에 내려앉았으나 그는 순간 고통이 느껴질 만큼 서둘러 격하게 그것을 쳐냈어요.
주인은 자신의 소중한 닭들을 희생시키면서 한 여자의 목숨을 구했어요.
그녀의 이름은 은달리.
외로웠던 그의 인생에 불쑥 찾아온 사랑.
치논소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마저 결혼해서 멀리 떠난 후 계속 큰 집에서 홀로 양계장을 하며 지내왔어요.
다리 위의 여자, 은달리가 그를 찾아왔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논소는 은달리를 '마미'라고 불렀어요. 은달리는 논소가 새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요. 논소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러나 은달리는 그녀의 가족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말만 했어요.
- "좋지 않을 테니까"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만나게 될 거야. 그건 약속할게" "그다음에, 언제쯤 널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 보자"- (126p)
그가 이 말들을 소화하고 있을 때 뒤뜰에서 울부짖는 암탉 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새총을 집어들고 달려나갔지만 이미 늦었어요. 매는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채 날아가버렸어요. 은달리는 매가 새끼를 채 간 다음에 닭들이 낸 소리에 대해 물었어요. 어쩐지 닭들이 전부 같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고,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고.
"맞아, 마미. 그들이 우는 거야." 주인이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 마미."
"아, 세상에, 논소! 놀랄 것도 없지! 그럼 그 이유는 작은 닭이......"
"맞아."
"그 닭이 매한테 채여 가서 그런 거야."
"그래, 마미."
"너무 슬픈 일이야, 논소."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게 우는 소리라는 걸 넌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는 늘 저게 사라진 닭을 기리는 장례식 노래 같은 거라고 하셨어.
에구 우무 - 오베레 - 이헤 라고 부르셨지. 무슨 뜻인지 알아?
영어로 우무 - 오베레 - 이헤 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작은 것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냐, 소수자, 마이너리티."
"그래, 그래, 맞아.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옮겨야 한다고 했어.
영어로 그렇게 말하셨어, 마이너리티라고.
아버지는 항상 그걸 마이너리티 '오카스토라'라고 하셨어."
"오케스트라야."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 케 - 스 - 트 - 라."
"맞아, 그렇게 발음하셨어, 마미.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기로는, 닭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대.
울면서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내는 것 말이야."
시간이 지나 그녀가 다시 잠들자 그는 그녀의 곁에 누워 매의 공격과 닭들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고 그녀가 자기 가족에 대해 했던 말로 생각이 되돌아가자 다시 한번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들었습니다.
이번에 그 두려움은 불길한 영혼의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135-136p)
수호령이 곁에 있으니까 내심 안심했어요. 그런데 실망했어요. 수호령은 주인을 보호한답시고 실패를 막아서는 안 된대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망가진 것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고쳐지리라고 주인을 안심시키는 것이래요. 이미 절망에 빠졌는데 부질없는 희망으로 버텨낼 수 있을런지.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논소의 수호령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그가 잠든 시간에 몸에서 빠져나왔어요.
과연 그는 어떻게 될까요.
영혼의 목소리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 몰랐어요. 작은 것들의 이야기,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