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보이 - 시크한 고양이 헨리의 유쾌발랄툰
벤지 네이트 지음, 조윤진 옮김 / 문학테라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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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보이>는 고양이 집사들이 한번쯤 꿈꿔봤을 기분 좋은 상상을 만화로 그려낸 책이에요.

저자 벤지 네이트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현재 파트너와 세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고 있다네요.

주인공 올리브는 어느 날 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어요. 자신의 고양이 헨리가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죠.

소원을 빌 땐 좀더 신중해야 했는데... 다음날 아침, 헨리는 사람만큼 커졌고, "굿모닝~ 안녕, 올리브!"라고 말했어요.

앗, 이럴 수가!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건 진짜 인간의 외모로 바뀌는 거 아닌가?  

검은 고양이 탈을 뒤집어쓴 사람 같아요. ㅋㅋㅋ  홀딱 벗고 있다고 해도 전혀 야하지 않아요. 털복숭이 헨리~ 

저자의 인터뷰를 보니, '만약 고양이 몸에 갇힌 사람이라면 좀 무서울까?'라는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네요. 

결과물은 고양이 헨리가 사람처럼 걸어다니고 말하는 캣보이가 된 거죠.

세상에나, 올리브가 헨리에게 자기 청치마를 줬어요. 혼자 사는 올리브에게 남자 옷이 있을 리 만무.

놀라운 건 헨리가 치마 입은 모습을 본 올리브의 반응이에요. "완전 러블리해!"라며 감탄하네요.

작고 귀여웠던 고양이 헨리가 한 덩치하는 사람 고양이로 변했는데도 러블리하다니, 올리브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꼈나봐요.

드디어 거침없는 성격의 캣보이 헨리와의 유쾌한 일상이 펼쳐져요.

매달 월세 걱정을 해야 하는 올리브는 아직 취직을 못한 상태라서 알바를 구하고 있어요.

마침 딕시의 파티에서 만났던 쟝이 자신의 강아지 제니를 돌봐줄 펫시터를 구한다고 해서, 헨리에게 그 일을 맡겼어요.

으르르르~ 크아아아앙 ~ 온몸으로 거부하는 강아지 제니.

헨리 역시 강아지 제니가 싫기는 매한가지인 듯.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 이제 헨리도 인간이 되었으니 밥값은 해야겠지요.

이런, 쟝이 제니뿐 아니라 펫시터가 필요한 친구들을 더 맡아달라고 부탁하네요. 피자 한 판에 홀딱 넘어간 헨리는 바로 OK!

네 마리의 강아지를 돌보게 된 헨리는 완전 지쳐버렸어요. 

그러나 파티와 친구 사귀기 만큼은 올리브보다 한 수 위인 헨리~ 무엇보다도 패션은 또 얼마나 신경쓰는지 ㅋㅋㅋ 샤워도 안 하면서...

러블리했던 헨리, 알고보니 나름 성깔이 있었어요. 속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게 되니 성격도 확실히 보이네요.

올리브에게 불만을 품게 된 헨리는 올리브가 일하러 간 사이에 가출을 시도해요. 나만의 길을 개척하겠노라~

고양이 헨리였다면 집 나간 김에 놀러 갔을텐데, 인간이 되더니 인생의 소중한 교훈을 터득하게 됐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 아니 고양이고생~

조용히 아무 일 없었던 것마냥 집으로 돌아온 헨리는 문 앞에서 올리브를 만나고, 아주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 이야기로 넘어가네요. 능글능글.

와우, 완전 인간 다 됐어요. 눈치와 적응력 최고!

사실 고양이 집사들에게 고양이의 존재는 인간 못지 않은 베스트프렌드잖아요. 말만 못할 뿐이지, 어쩌면 말을 못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시크한 고양이는 사랑할 수 있지만 시크한 인간은 정 떨어지는 법. 

어찌됐든 고양이 헨리는 사람이 되니 더 매력적이네요. 특히 치마 입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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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2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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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같은 인생이여!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예요.

이번 생에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를 주인으로 둔 수호령이 목격했던 모든 것을 들려주고 있어요.

수호령들은 주인을 위해 간청하려고 천상의 법정에 서 있어요.

사람의 영혼이 오니에우와가 되어 세상에 돌아가는 것,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영혼이 조상들의 땅에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수호령의 목소리가 이토록 마음 깊숙히 들어오게 될 줄은...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 곁에 수호령 같은 존재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수호령은 주인들의 삶에서 실패를 막을 수는 없지만 의지를 심어줄 수는 있어요. 언젠가 그와 비슷한 마음의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의 삶은 정말 너무 가혹해요. 어찌하여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힘 없고 작은 것들의 슬픈 노래예요.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것들보다 잃은 것들로 인해 더 괴로운 것 같아요.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은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졌다가 잃은 것들은 그 빈자리가 너무나 커요. 수호령은 치논소의 육신에 머물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미래를 볼 수 없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직감했던 건지도 몰라요. 치논소가 새들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그 새들의 울부짖음을 통해 슬픈 운명의 노래를 들려줬어요.

은달리는 한눈에 치논소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어요. 운명의 남자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치논소 역시 은달리를 위해서, 오직 사랑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었어요. 엄청난 도박이었어요. 단숨에 모든 걸 잃을 수 있으니까.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건지, 은달리는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치논소를 막을 수 없었어요. 사랑의 힘으로 기다린다고 했어요. 

과연 치논소는 잃어버린 것들을 도로 찾을 수 있을까요. 

읽는 내내 수호령의 심정으로 바라봤어요. 세상의 모든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만물의 창조자이신 추쿠시여, 부디 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소서.


"마음이 너무 아파, 논소. 불쌍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우린 이 새들을 가두고, 원할 때면 죽여. 이 새들에게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깃든 분노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냈습니다.

"얘들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어, 논소. 들어봐, 들어봐. 

매가 공격했을 때 냈던 것과 같은 소리야."  

...

"강자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 논소?"

그녀가 떠날 것처럼 물러서며 말하더니 다시 그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네가 그 사람들처럼 부자가 아니라서야. 사실 아니니?"

"맞아, 마미." 그는 부끄러운 것처럼 말했습니다.

... 다시 그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꺼풀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 세상에! 논소, 정말 그래! 이건 잘 조율된 노래 같아, 장례식에서 부르는 그런 노래 말이야. 합창단처럼.

이건 슬픔의 노래야. 그냥 들어봐, 논소." 

그녀는 잠시 조용히 서 있다가, 약간 물러나 손가락을 꺾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맞아. 이건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야."  (44-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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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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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의 '치'란 영적 세계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지상의 인간을 보완하는 영적인 존재로 말이다.

그 무엇도 혼자 존재할 수는 없기에,

곁에는 항상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한다.

   - 치누아 아체베, <이보 우주론에서의 치>  (9p)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소설이에요.

이보는 나이지리아의 동부 지역 부족을 뜻해요. 

첫 장을 펼치면 <도표로 보는 이보 우주론>과 <이보 우주론에 따른 인간의 구성>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이 소설을 이해하려면 '이보 우주론'부터 알아야 해요. 우주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해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식물 등의 영역인 '우와'와 영혼의 영역인 '벤무오'가 있어요.

수호령들은 두 개의 세계 모두 존재해요.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려 보면, 저승과 이승의 개념이라 할 수 있어요. 



첫 번째 주문, 

오바시디넬루시여 -

저는 피리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영원한 밝은 빛의 땅 엘루이궤의 웅장한 베추쿠 법정에 나아와 당신을 뵈옵니다 -

저 역시 다른 수호령들처럼 여러 차례 환생을 통해 우와로 가 새로 만들어진 육신에 깃들었나이다 -

...

제가 온 까닭은 그분이, 이번 생에 치논소 솔로몬 올리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제 주인을 가리키며 

불리한 증언을 할까 두렵기 때문이옵니다 -

제가 목격한 모든 것을 증언하고, 제가 두려워하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한들

주인은 실수로, 모르고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음을 

당신과 위대한 여신께 알려 두 분을 설득하고자 서둘러 왔나이다 - 

이 일은 거의 모두 제가 전하는 것이오나,

그와 제가 하나이기에 이 이야기는 진실하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제 목소리이옵니다.

... 저는 왕의 혀처럼 대담하게 주인을 위해 빌고자 당신 앞에 섰나이다.

당신께서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실 것을 믿나이다 -      (15-17p)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요. 

네, 이 소설은 전지적 영혼 시점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원래 수호령들은 주인의 모든 일에 간여할 수 없어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인간답게 존재해야 하므로.

그런데 치논소의 수호령은 딱 한 가지를 그의 정신에 집어넣었어요.

그건 바로 '새들을 사랑하며 날짐승들과의 관계를 통해 삶이 변화된 사람'이라는 생각이에요.

수호령은 그 순간, 그가 한때 소유했던 새끼 거위의 흥분된 모습을 그의 정신에 비추었어요.

별다른 효과는 없었어요. 다리 위의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주인은 불과 며칠 전 익사한 여자를 봤는데, 여기 눈앞에 강으로 몸을 던지려는 다른 여자와 마주친 거예요.

운명의 장난처럼. 

주인은 강력하게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강에 빠져 죽으면 안 돼요. 절대로요."

그는 닭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누가 저 안에 떨어지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죽어서 아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고요."  

... "이런 닭들도 똑같아요." 그는 다시 말한 뒤 닭들을 다리 너머 어둠 속으로 내던졌습니다.      (26p)

닭들은 살려고 처절하게 버둥거렸지만 곧이어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깃털 한 장이 그의 손에 내려앉았으나 그는 순간 고통이 느껴질 만큼 서둘러 격하게 그것을 쳐냈어요.

주인은 자신의 소중한 닭들을 희생시키면서 한 여자의 목숨을 구했어요.

그녀의 이름은 은달리.

외로웠던 그의 인생에 불쑥 찾아온 사랑.


치논소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여동생마저 결혼해서 멀리 떠난 후 계속 큰 집에서 홀로 양계장을 하며 지내왔어요.

다리 위의 여자, 은달리가 그를 찾아왔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논소는 은달리를 '마미'라고 불렀어요. 은달리는 논소가 새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요. 논소는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러나 은달리는 그녀의 가족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말만 했어요. 

- "좋지 않을 테니까"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야?" "만나게 될 거야. 그건 약속할게" "그다음에, 언제쯤 널 집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 보자"-  (126p)

그가 이 말들을 소화하고 있을 때 뒤뜰에서 울부짖는 암탉 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새총을 집어들고 달려나갔지만 이미 늦었어요. 매는 병아리 한 마리를 낚아채 날아가버렸어요. 은달리는 매가 새끼를 채 간 다음에 닭들이 낸 소리에 대해 물었어요. 어쩐지 닭들이 전부 같은 걸 말하는 것 같았다고, 같은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고.


"맞아, 마미. 그들이 우는 거야." 주인이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 마미."

"아, 세상에, 논소! 놀랄 것도 없지! 그럼 그 이유는 작은 닭이......"

"맞아."

"그 닭이 매한테 채여 가서 그런 거야."

"그래, 마미."

"너무 슬픈 일이야, 논소."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게 우는 소리라는 걸 넌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는 늘 저게 사라진 닭을 기리는 장례식 노래 같은 거라고 하셨어.

에구 우무 - 오베레 - 이헤 라고 부르셨지. 무슨 뜻인지 알아?

영어로 우무 - 오베레 - 이헤 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작은 것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냐, 소수자, 마이너리티."

"그래, 그래, 맞아.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옮겨야 한다고 했어.

영어로 그렇게 말하셨어, 마이너리티라고. 

아버지는 항상 그걸 마이너리티 '오카스토라'라고 하셨어."

"오케스트라야."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 케 - 스 - 트 - 라."

"맞아, 그렇게 발음하셨어, 마미. 

아버지가 늘 말씀하시기로는, 닭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걸 알고 있대.

울면서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내는 것 말이야."  

시간이 지나 그녀가 다시 잠들자 그는 그녀의 곁에 누워 매의 공격과 닭들에 대한 그녀의 의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고 그녀가 자기 가족에 대해 했던 말로 생각이 되돌아가자 다시 한번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들었습니다.

이번에 그 두려움은 불길한 영혼의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135-136p)


수호령이 곁에 있으니까 내심 안심했어요. 그런데 실망했어요. 수호령은 주인을 보호한답시고 실패를 막아서는 안 된대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망가진 것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고쳐지리라고 주인을 안심시키는 것이래요. 이미 절망에 빠졌는데 부질없는 희망으로 버텨낼 수 있을런지.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논소의 수호령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그가 잠든 시간에 몸에서 빠져나왔어요.

과연 그는 어떻게 될까요. 

영혼의 목소리에 이토록 몰입하게 될 줄 몰랐어요. 작은 것들의 이야기,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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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인터뷰
이재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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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둑두둑 창문을 두들기며 비가 오면 왠지 슬퍼져요.

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흐린 하늘과 축축한 비 때문이에요.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물 같아서.

<비 인터뷰>는 이재은 작가님의 첫 소설집이라고 해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저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요. 읽고나서 알았어요.

아프다, 힘들다, 외롭다...

어쩌자고 다들 가슴 속에 무거운 돌을 안고 살아가는지.

이재은 작가님은 그 무거운 돌들을 채집하는 사람 같아요. 남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돌.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었다면 누구나 탐냈겠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저 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요. 자신이 아프기 전에는. 

아파보지 않고서 아픈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기는 어려워요. 가장 괴롭고 힘든 건 아픔 그 자체가 아니라 아픈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비록 소설이지만 가상의 인물이지만 분명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프고 슬펐어요.



"이 글 어떠냐? 바다를 본 적 없다고 해도 어딘가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규만은 잠시 멈칫했다.

"바다를 본 적 없다고 해도 어딘가에 바다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음에 드냐? 응? 여기에도 네 이름을 달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규만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람들이 얼마나 보게겠느냐고? 찾아주기나 하겠냐고?

쓸데없는 짓이 아니야. 아저씨는 바보가 아니다. 

분명히 보는 사람이 있고, 또리를 아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곧 정보를 공유해 줄거다."

규만은 소년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소년 아닌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자. 따뜻한 국물을 먹자. 

비, 기죽으면 안 돼. 알았냐? 알았느냐고?"

딥. 딥딥. 딥. 딥딥. 딥. 딥딥. 딥. 딥딥딥. 디디디디비디비딥. 디비디비......

소년은 눈물 젖은 입술을 뻥긋거리며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규만을 바라만, 바라만 보고 있었다.

       - <비 인터뷰> 중에서     (60p)


울고 있는 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눈물을 멈추게 해줄 수 있는 건... 당장은 따뜻한 국물이 전부네요.

소년은 자신을 '비'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올해까지만. 내년에는 아닐 수도 있다고. 자신만의 언어로 딥은 예스, 딥딥은 노라고 했어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건데 그게 그리도 어렵네요. 세상은 아직 소년의 언어를 몰라요. 

규만은 본 적 없는 바다를,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믿으라고 말했어요. 무책임하게... 그러니 미안하죠. 하지만 나였어도 똑같이 말했을 것 같아요. 기죽지 말라는 규만의 말에 소년이 할 수 있는 말은 딥. 딥딥.

빗소리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렇게 들릴테죠. 

언제쯤 소년의 언어를, 세상이 알아줄까요.

그 바다, 제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소년의 눈물을 하릴없이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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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빙이 녹기까지
권미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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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가에 앉아서 밖을 바라볼 때가 있어요.

무엇을 꼭 보기 위한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눈앞에 놓인 장면을 볼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상황이죠.

물론 눈을 감아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감고 싶지 않다면 보이는 것들을 봐야 해요.

보이는 것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권미호 작가님의 <유빙이 녹기까지>는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어요.

짧은 단편은 쉽게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읽고 난 후가 문제예요.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요.

덜 닫힌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찬 바람처럼 뭔가 자꾸 마음 한 켠을 서늘하게 하네요.

<오늘 줄서기>는 줄서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휴학생인 '나'의 어떤 하루 이야기예요. 나이키 한정판 매물이나 애플사 핸드폰과 같은 최신 기종의 제품부터 사립유치원 추첨권까지 줄을 서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아요. 자신의 라인에 직접 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돈만 지불하면 줄서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수 있어요. '슬라임'으로 부르는 그 남자는 한 손에 '액체 괴물'이라고 불리는 슬라임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에요. 그는 내 손에 자신의 명함을 쥐여 주었어요.

'무엇이든 대신 서 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핸드폰 번호,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는 명함.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고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연락 주세요. 서길 원하든 서 주길 원하든." (17p)

오늘 '나'의 줄서기 장소는 나이키 매장 앞이에요. 유명한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들어지는 운동화, 전 세계 소량 한정 발매라서 나이키 플래그쉽 스토어에서만 판매가 진행되기 때문에 라인 따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슬라임 같이 주선해 주는 매니저가 따로 생긴 거예요. 밤샘 줄서기를 버텨내고, 오전 여덟 시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어요. 정교수의 논문 제출 시한이 오늘인데, 하필 선배가 지문등록을 해놓지 않아서 연구실 중앙 컴퓨터에 있는 논문 자료를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 나 외에는 열람 가능한 조교가 없으니 얼른 오라는 호출이에요. 등록금 납부 마감일도 오늘이에요. 오늘 줄서기를 성공해야 부족한 등록금을 채울 수 있어요.

슬라임에게 급하게 SOS를 쳤더니 라인맨들의 땜빵 전문인 땜빵이 왔어요. 슬라임이 주선하는 라인은 확실했고, 그는 어떤 문제든 해결능력이 뛰어나서 사안이 중요할수록 의뢰인, 라인맨 모두 그에게 몰려들었어요. 땜빵은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였어요.

"주선자 너무 믿지 말어...... 믿지도 말고, 척지지도 말고."  (26p) 

가족이라고는 함께 살기 힘든 엄마밖에 없는 '나'는 서울에 혼자 올라온 택주와 형제처럼 의지하며 지냈어요. 그래서 뉴질랜드 교환학생의 기회를 택주에게 양보했던 거예요. 복학하고 나서야 그 기회가 천금 같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다리를 저는 택주는 군 면제라서 내가 입대한 사이에 뉴질랜드로 떠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복학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택주는 뉴질랜드까지 가서 뭔가를 깨달았다는데, 그러면 '나'는?  나도 일단 그곳에 가봐야 공평하잖아요. 결국 깨닫는 데도 돈이 필요해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오늘 줄서기가 불안하기만 한데, 그때 그 상황에 절묘하게 나타난 슬라임은 놀랍게도 뚫린 라인을 지나 줄을 서 있는 마지막 사람 다음 차례에 나를 데려갔어요. 

"뭐해, 돈 필요하지 않아?"  (33p)

소름이 돋았어요. 오로지 거래 성공을 목표로 언제나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슬라임이라는 존재가 낯설지 않아서. 

슬라임이 버리고 간 슬라임, 액체 괴물을 바라보던 '나'는 마구 밟아대며 계속, 작게, 중얼거렸어요.

"돈 니드 워터...... 돈, 니드...... 돈, 니드...... 니드...... 니드......"  (36p)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긴 한숨을 내뱉었어요.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다시, 줄을 설 시간이다."  (36p)

이보다 더 현실적인 비유는 없을 것 같아요. 줄서기는 실제이면서 실재라는 점.

일곱 편의 단편 중에서 <오늘 줄서기>가 나의 시선을 가장 오래, 깊이 붙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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