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큰활자본/전용박스 + 2020 벽걸이 달력 포함) - 전4권 - 송년 에디션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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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책들은 스스로 골라 읽는 편인데, 요즘은 방송 프로그램 덕분에 읽게 되는 책들이 생겼습니다.

바로 김은성 작가님의 <내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역사임을 만화로 보여준 

정말 위대한 작품입니다."

    - 알쓸신잡 시즌3 최종화 中


어떤 책인지 궁금했습니다.

우선 만화책이라고 해서 어릴 적에 즐겨봤던 순정만화풍의 그림을 떠올렸는데, 의외로 판화 그림책 느낌이라서 놀랐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어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에 꼭 들어맞는 그림이라서 역시 찰떡궁합이구나 싶었습니다.

마흔 살에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김은성 작가님이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책으로 완성하기까지 꼬박 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위대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십 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 같습니다.

그만큼 <내 어머니 이야기>에 담긴 내용은 한 개인의 인생을 뛰어넘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처럼 파란만장한 시기가 또 있을까요.

어쩌면 그토록 잔인하고도 슬픈 시절이 있었나 싶으면서도, 그 시기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암울했던 시기였기에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별히 송년 에디션 세트는 큰활자본이라서 더욱 마음에 듭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크고 예쁜 케이스 안에는 김은성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쓴 친필 편지가 인쇄되어 있고,

2020년 새해 벽걸이 달력까지 들어 있어서

정말 멋진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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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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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신작 시집이 나왔습니다.

『당신을 찾아서』

2020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지나온 세월을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인은 <당신을 찾아서>라는 시에서 결연한 심정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잘린 내 머리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을 향해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닌 성인들처럼

걸어가다가 쓰러진다

따스하다

그래도 봄은 왔구나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26p)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찾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어떻게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므로 그 지향점을 향하여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앞만 보기 때문에 좀더 빨리, 좀더 멀리 갈 생각뿐이지만,

어느 정도 걷다보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문득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기에 고개를 들고 다시 일어섭니다.

당신,

네, 저 역시 당신을 향해, 당신을 찾아서...

따스한 봄이 오듯이 희망을 품어봅니다.


"신작 시집으로는 열세번째, '창비시선'으로는 열번째 시집을 낸다.

이십대 때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낼 때 

이렇게 창비에서 열권의 시집을 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창비에게 아들의 심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그러고 보니 창비에서 열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이십대였던 나는

이제 칠십대가 되었다.

...

이 시집은 불가해한 인간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

즉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 쓰인 시집이다."  (183p)


시인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은 일흔이 된 시인에게 이 시집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며, 그것을 임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입니다.

참으로 인생이란 얄궂게도 딱 제 나이만큼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늘 부족하고 철없이 살아온 사람인지라 시에 담긴 깊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으나 제 분수껏 마음에 담았습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기도>의 마지막 시구를 조용히 읊조리며...


"... 그동안 내리지 못한 함박눈은 다 내리게 하소서

피어나지 못한 꽃들은 다 피어나게 하소서."   (1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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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언어학 -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고양이의 속마음
주잔네 쇠츠 지음, 강영옥 옮김 / 책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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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요.

원래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자꾸 고양이에 관한 것들을 보니까 점점 관심이 가네요.

무섭게 보였던 고양이 눈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 같아 보이고, 나른하게 늘어진 모습이 귀여워 보이는...

묘하게 끌리는 이 마음은 뭘까요.


<고양이 언어학>은 순전히 고양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읽게 된 책이에요.

고양이 소리는 그냥 "야~옹"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음성학을 활용해 고양이 소리를 분석한 연구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물론 고양이 언어와 인간의 언어를 일대일로 번역하는 건 아직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이 책은 음성학을 연구하는 저자의 'Meowsic (Meow + Music)' 프로젝트 결과를 소개하고 있어요.

야옹, 우르르르, 으르렁, 하악, 고로롱고로롱, 아카카칵, 깍깍...

고양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음성학적으로 분류해낸 것을 보면 새로운 외국어 공부를 하는 느낌이 들어요.


"야옹" 소리는 유성음이고, 멜로디는 점점 올라가거나 점점 내려간다.

하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멜로디도 있다.

"야옹" 소리는 단조로운 멜로디이지만 

고양이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 주파수 범위가 50~1,000 헤르츠로 소리의 진동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모음과 멜로디 변화가 이렇게 심한 이유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고양이는 급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감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변형된 소리를 낸다.

대부분의 고양이 주인들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뉘앙스 변화를 잘 파악하고 있다.

...

"야옹"은 "우르르르" (고양이는 다정하게 인사하거나 무언가를 요구할 때 "우르-야옹" 소리를 낸다),

"이아-아-아우", "와우-아우"처럼 2음절이나 다음절로 변형시킨 야옹 소리,

고양이가 만족스러운 상태일 때는 "고로롱고로롱" 등 다른 소리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날 때가 많다.  (103-104p)


사실 이 책을 통해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고양이에게 말 걸기 Q&A> 일 것 같아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질문과 대답을 통해 잘 정리되어 있어요.


Q. 고양이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 단호하게 "안 돼!"라고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간혹 고양이들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부드럽게 "안 돼, 우리 귀염둥이, 이런 짓은 하면 안 된다고 했지?"라고 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낮고 길게 "으르렁" 하다가 "우르르르", 날카롭게 "하악" 하다가 "쉿!" 또는 "쇄애엑" 하다가 "췻!"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때 (여러분의 몸이 커 보이게 하는) 몸짓도 함께 해주면 효과가 더 좋다.

... 단, 이 방법은 내 고양이들에게만 테스트해보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하악"은 충분히 생각하고 써야 한다. 공격적인 울음소리를 사용하기 전에는 수의사, 고양이 심리학자, 치료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227p)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학술논문이 아니라 고양이를 사랑하는 음성학자의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다는 점을 주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 고양이 언어는 풀리지 않은 비밀들이 많기 때문에 고양이 울음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구해볼 수 있다고 해요. 필요한 건 간단한 도구와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과 인내심이라고 하네요. 책의 내용도 고양이 울음소리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측면에서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특히 부록에 있는 <상황별 고양이 소리 _ QR코드 수록>은 저자가 녹음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음성학 측면에서 이해하기가 수월해요.

어쩌면 미래에는 고양이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의 언어가 학문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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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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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나 휴일은 유난히 하루가 짧게 느껴져요.

뒹굴뒹굴 여유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그 느낌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놀며 보내는 하루도 나름 의미있지만 그런 날들이 반복될 때는 왠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오늘 하루를 잘 보냈는지, 부족하거나 고쳐야 할 점은 없는지.

그렇다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하루는 평범한 나와 무엇이 다를까요. 

<예술하는 습관>를 쓴 저자 메이슨 커리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어요.

아이들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교훈을 얻지만 이 책은 놀라운 인물들을 통해 삶의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계발을 위한 목적보다는 삶의 환기 혹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이 모두 예술가들이기 때문이에요.

예술가로 산다는 건 일반적인 직업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인 것 같아요. 

성공을 위한 루틴이 아니라 예술을 위한 루틴이라는 점. 

대부분 성공 비결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지만 예술가들의 습관은 오직 그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무엇보다도 여기에 소개된 예술가들은 131명의 여성 예술가들이에요.

 '여성 예술가'와 그냥 예술가를 구분 짓는 건 매우 부적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저자는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창의적 작업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회에서 성장했고, 부양가족의 욕구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어요.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을 통해 그들의 예술 세계가 현실적 장애에 부딪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엿볼 수 있어요. 사실 중요한 건 그러한 난관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그들의 하루 루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명성을 얻고 인정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이러한 행운을 얻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예술가의 열정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작은 아씨들』의 작가 올콧은 창의적 에너지를 격렬하게 쏟아내면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글을 썼다고 해요. 올콧의 이러한 '폭필' 습관은 『작은 아씨들』에서 주인공 조 마치와 닮아 있어요. 

조는 몇 주마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글쓰기용 작업복을 입고 자기표현대로 말하자면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온 마음과 영혼을 바쳐서 소설을 써내려간다. 작업을 끝낼 때까지는 그 어떤 평화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의 작업복은 펜 자국을 마음대로 닦아낼 수 있는 검정색 모직 앞치마에 깜찍한 빨간색 리본이 달린 같은 재질의 모자를 쓰는 것이다. 이 모자에 머리카락을 말아 넣으면 전투 준비가 끝났다는 뜻이다. 가족들의 호기심 어린 눈에는 이 모자가 신호등처럼 보였다. 이 모자 신호등이 커졌을 때 가족들은 조와 거리를 둔 채 간간이 조의 방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물었다.

"천재성이 불타오르는 거야, 조?" 

항상 대담하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먼저 모자를 잘 지켜보고 판단을 내렸다. 이 모자는 표현력이 풍부한 물건이라서 조의 이마를 푹 덮고 있을 때는 글이 잘 안 써진다는 뜻이었다.  (23-24p)

올콧은 실제로 조의 글쓰기용 모자와 같은 목적으로 쓰는 '기분 베개'가 거실 소파에 있었다고 해요. 베개가 세워져 있으면 가족들이 자유롭게 말을 걸어도 되지만 베개가 옆으로 누워 있으면 소리 죽여 걸어야 했다네요. 안타까운 건 올콧이 생계 문제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고, 1968년에 펴낸 소녀들을 위한 책 『작은 아씨들』의 성공으로 어쩔 수 없이 여아용 서적만을 써야 했다는 점이에요. 올콧의 하루는 글쓰기라는 생산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계 목적의 고행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마음이 아프네요.


클라라 슈만은 독일의 피아노 신동으로 유럽 전역에 유명세를 떨쳤지만 1840년에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하면서 그녀의 경력에 차질이 생겼다고 해요.

로베르트가 자신이 작곡할 때 조용히 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클라라는 몇 주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없었고, 로베르트가 매일 습관적으로 동네 술집에 맥주를 마시러 가는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만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대요. 또한 1841년에 클라라는 첫 아이를 낳기 시작해 여덟째까지 낳아 길렀으며, 조용한 생활을 원하는 남편의 요구까지 들어주면서 자신의 공연 경력을 유지해나갔어요. 결혼 생활 14년 동안 최소 139번의 공공 연주회를 열었다고 하니 거의 슈퍼우먼이 아닌가 싶어요. 

"창의적 활동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시간 동안에는 자신을 잊은 채 소리의 세계에서만 숨 쉰다 하더라도 말이다."  (141p)


영화 「피아노」의 감독 제인 캠피온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창작 과정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름 지을 수 없는 감정이 시발점이에요. 분위기랄까, 뭐 그런게 느껴지죠.

전 그렇게 느껴지거나 떠오르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글을 쓰려고 해요.

그 과정이 잘 진행되면 결국에는 그 분위기가 영화가 되죠."  (2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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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뭐 어때서?! 라임 어린이 문학 30
페드로 마냐스 로메로 지음, 하비에르 바스케스 로메로 그림, 김지애 옮김 / 라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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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종종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해요.

모든 걸 다 챙겨줘야 하는 아기가 아니라는 걸.

특히 십대 아이들은 스스로 다 컸다고 느낀다는 걸.

부모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걸.


<우리가 뭐 어때서?!>는 열한 살 프란츠의 이야기예요.

프란츠는 안과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 프란츠의 왼쪽 눈이 고약한 게으름뱅이라는 거예요.

전형적인 약시!

한쪽 눈이 바쁘게 일하는 동안, 다른 쪽 눈은 편히 쉬고 있다는 뜻.

그러니 건강한 눈을 가리면 게으른 눈이 일을 안 하고는 배길 수가 없다면서 프란츠에게 안대를 건네줬어요.

"... 조금도 걱정할 건 없어. 이걸 눈에 대고 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17p)

그 말을 믿으라고요?

안대는 프란츠의 피부색과 완전히 똑같은 데다가 피부에 착 달라붙지 뭐예요. 안대를 하고 있으면 마치 눈 하나가 없는 괴물 같아요.

바로 이 안대 때문에 평범했던 프란츠의 삶이 큰 변화를 맞이 하게 됐어요.

안대를 하고 학교 간 첫 날부터 크루겔 선생님은 프란츠를 맨 앞에 앉히면서 훌륭한 장애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크루겔 선생님이 프란츠를 배려하려고 한 거라면 완전히 실패했어요. 오히려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죠. 프란츠에게 우르르 몰려와서 질문했어요. 그러나 아이들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어요.

점심마다 하는 농구 시합에서 언제나처럼 에이스인 린다와 올리버가 양 팀의 주장이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줄지어 서서 팀원으로 뽑히길 기다렸어요. 평소 프란츠는 골도 잘 넣고 잽싸기까지 해서 그 누구보다 먼저 뽑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남았어요. 오, 말도 안 되네... 화가 나지만 꾹 참고 실력을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운동장을 힘차게 내달렸어요. 공을 잡기 위해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라 손을 쭉 뻗었는데... 축축한 잔디에 쭈르륵 미끄러지면서 콘크리트 바닥 위로 철퍼덕 나자빠지고 말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 린다가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프란츠는 알지 못했어요. 같은 팀 주장 올리버가 프란츠를 일으켜 세우려고 손을 내밀기 바로 전에, 다음 경기 때는 차라리 뚱보 홀저를 뽑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올리버는 속으로 '안대를 하더니 완전 쓸모 없는 애가 되어 버렸네'라고 투덜거렸어요. 프란츠가 속한 올리버 팀은 22점을 잃었고,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어요. 그 누구도 프란츠를 기다려 주거나 같이 가자며 불러 주지 않았어요. 프란츠는 문득 자기가 키다리 에밀리랑 뚱보 홀저랑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프란츠는 오후 내내 불안해하며 친구들의 눈치를 살폈고, 등 두에서 누군가 속삭이거나 웃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아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어요.

네, 안대를 한 프란츠는 더 이상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안대를 쓰고 몇 주를 보내는 동안 프란츠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아이들은 프란츠 이름 대신 '애꾸눈'이라고 불렀어요.

농구팀을 정할 때마다 꼴찌로 뽑히고, 계단을 뛰어내려갈 수도 없고,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프란츠를 위해 자리를 맡아주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어요. 프란츠는 점점 더 의심이 많아졌고, 아이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어요. 프란츠는 점심시간마다 운동장 모퉁이에 앉아서 공책에 괴물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프란츠는 점심시간의 운동장 풍경을 담은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운동장 모퉁이마다 주인이 있고, 그 모통이는 다른 아이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더 이상한 점은 그 아이들끼리도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어느 목요일, 점심시간에 프란츠는 마침내 지도를 완성했어요. 그때 "하나 빠졌어."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책벌레 자콥이었어요. 자콥은 프란츠에게 너도 그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프란츠에게 안대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모임을 만들 계획이라면서 만날 약속을 했어요.


"엄마 아빠는 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다 있어? 당연히 정상이지?"

엄마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아이들하고 똑같다는 거죠?"

"그럼, 당연하지. 왜 그래? 누가 우리 아들더러 뭐라고 했니?"

"아뇨, 암튼 제가 다른 아이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거네요."

프란츠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진지하게 물었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니까!"

엄마가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럼 누구든 절 대신할 수 있다는 거네요. 누구든 프란츠 코프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43-44p)


아하, 이런 거였구나... 프란츠가 엄마 아빠에게 했던 질문을 보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열한 살 아이에게 학교 생활은 더 이상 부모가 도와줄 수 없는 세계라는 것. 아이가 "괜찮아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것.

또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반성했어요. 다른 아이들과 똑같다는 것, 평범하다는 것에 너무 얽매여 있던 것은 아닐까라는.

프란츠는 안대를 하게 되면서 평범함을 벗어나 남들과 '다름'에 대해 '차별'받는 경험을 했어요. 만약 안대 사건이 아니었다면 프란츠는 자기 자신도 남다른 친구들을 차별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누구나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다름'이 차별과 따돌림의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뭐 어때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해요. 

프란츠는 똑똑한 자콥과 함께 따돌림을 끝장내 버릴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 모임, 비밀클럽의 이름은 '고집불통' (고독하고 집요하며 불의를 못 참는 통 큰 아이들)이에요. 늘 혼자 다니고, 이상한 아이 취급을 당했던 아이들이 드디어 힘을 모았어요. 마치 첩보원처럼 비밀리에 작전을 펼치는데... 정말 멋졌어요. 

우리나라의 학교에도 고집불통 지부가 생겼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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