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큐어 - 면역학의 혁명과 그것이 당신의 건강에 의미하는 것
대니얼 데이비스 지음, 오수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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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면역학을 연구하는 모든 과학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뷰티풀 큐어>를 통해서 면역체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알게 됐어요.

연구소 현미경을 통해 보는 세계, 면역계에 관한 연구들이 마치 우주 탐험처럼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저자 대니얼 M. 데이비스는 맨체스터대학교의 면역학 교수로 임상면역학 분야 전문가라고 해요.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면역계의 수수께끼, 면역학의 혁명 그 놀라운 발견과 우리 몸 속 면역계 지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실제 연구자라서 그런지 책에 소개된 연구자들 이야기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네요.

그 중 캐나다의 면역학자 랠프 스타인먼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스타인먼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그의 업적뿐 아니라 그의 연구 태도 때문이에요. 밝혀질 때까지 시도를 멈추지 않는 끈기와 열정.

처음 스타인먼이 연구하던 주제는 면역세포가 어떻게 자기의 환경에서 분자를 집어삼킬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었어요.

면역반응이 쉽게 일어나는 곳이 비장이었고, 스타인먼은 쥐의 절개한 비장에서 분리시킨 T세포와 B세포를 현미경으로 꼼꼼하게 관찰했어요.

그때 뒤범벅된 세포들 중 별모양처럼 끝이 뾰족뾰족한 돌출 형태의 세포를 발견했어요. 

사실 스타인먼이 이 세포들을 본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세포들은 과거에도 관찰된 적이 있었대요.

무려 100여 년 전인 1868년, 독일의 생물학자 파울 랑게르한스가 피부 속에서 별 모양의 세포를 발견했는데, 신경세포라고 생각했고, 이를 논문으로 발표했던 거예요. 

스타인먼이 이 이상한 세포에 주목하여 알아보고자 했다는 점이 중요해요.

"누구나 보았으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핵심이에요. 이건 모든 훌륭한 과학자들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스타인먼은 이 세포에 '수지상세포 樹枝狀細胞 dendritic cell'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스어 '덴드론'은 나무를 뜻하는데, 세포 모양이 나무 기둥에서 이리저리 튀어나온 가지의 돌출부처럼 특이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해요. 그는 이 세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장장 40년에 걸친 연구를 했어요.

스타인먼의 진정한 가치는 드러난 업적뿐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고, 마지막까지 헌신했다는 점이에요. 

그가 끝까지 연구했기 때문에 수지상세포를 연구하는 다른 과학자들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일본의 여성 면역학자 이나마 카요는 수지상세포를 몸 밖에서 변형시킨 다음 면역반응을 대비하기 위해 다시 몸 속으로 주입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이 실험으로 수지상세포를 기반으로 한 백신, 치료제 연구가 이어졌어요. 

2007년 3월, 스타인먼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연구를 밀고 갔어요. 이 실험을 하며 4년 6개월을 더 살았지만, 2011년 9월 30일 6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어요. 근데 사망한 지 사흘 후 노벨위원회는 그를 수상자로 발표했어요. 만일 노벨위원회가 그의 사망 소식을 미리 알았다면 취소되었을텐데, 예외적으로 그 상을 그대로 수여하기로 결정했어요. 제인웨이가 사망으로 노벨상을 타지 못했던 그 해에 스타인먼은 사망했어도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어요. 

현재 수지상세포 백신은 아직 암 치료에서 흔히 쓰이는 치료법은 아니고, 수지상세포를 기반으로 한 다른 백신들이 임상실험 진행 중이라고 해요.

일명 짐이라 불리는 제임스 앨리스는 그의 연구팀과 함께 암 치료제의 혁명을 가져온 중대한 발견을 했어요. 앨리슨이 찾아낸 신비한 T세포 수용체 단백질의 이름은 세포독성 T세포 관련분자로 , 간략히 CTLA-4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러나 앨리슨이 최초 발견자는 아니에요. 1987년 마르세유에 있던 피에르 골스타인의 연구소에서 발견됐으나 골스타인은 그 역할까지 밝혀내지는 못했어요. CTLA-4 차단이 다양한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뒤로 생명공학 기업인 넥스스타의 면역학자 앨런 코먼이 인간 CTLA-4를 차단할 항체 연구에 돌입했어요. 넥스스타는 다른 제약회사인 메다렉스에 이 아이디어를 재실시할 권한을 줬고, 메다렉스가 인수한 제3의 기업인 젠팜에서 인간에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항체- 이름은 MDX-010-를 전문으로 생산하게 되었어요. 

한때 경쟁자였던 블루스톤과 앨리슨은 이제 파커연구소에서 함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해요. 파커연구소의 목표는 면역관문억제제를 다른 치료법과 결합시킴으로써 환자의 몸 속 암을 탐지해낼 수 있는 면역세포를 환자에게 확실히 제공하는 것이라고 해요. 암 정복의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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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 - 마음과 행동을 결정하는 사회적 상황의 힘
로버트 치알디니.더글러스 켄릭.스티븐 뉴버그 지음, 김아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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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고 지루한 사람을 만나면 단 5분도 견디기 힘들죠.

반면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고무줄 같은 시간의 비밀은 단순해요. 새로운 자극이 주는 흥분, 즐거움, 재미.

글쎄, 사람이 아닌 책도 똑같더라고요.

이 책은,『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의 최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렜어요.

와우, 직접 실물을 영접하니 벽돌 같은 두께에 놀랐어요.

그러나 진짜 놀라웠던 건 이 책을 펼친 이후 벌어진 상황이에요.

소설도 아닌 전공서적을, 이토록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세 명의 저자는, 사회심리학을 제대로 알릴 진정한 틀을 개발하기 위해 모였고, 다양한 접근법을 틀을 드디어 찾아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에요.

사회심리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아직 사회심리학을 모른다, 관심 없다는 사람이라면 일단 서점에 가서 실물책을 펼쳐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전공 서적에 대한 편견이 깨질 거예요. 그리고 곧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가 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닌 우리 모두의 영역이란 걸 알게 될 거예요.


이 책에서는 각각의 사회적 행동을 사람(Person), 상황(Situation), 사람과 상황의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는 3가지 요소로 나누어, 그 안에 어떠한 목표가 내재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있어요. 이때 사회적 행동 모델이 되는 인물이 등장해요. 연구 실험에 참여한 익명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는 유명인이에요.

사회심리학의 어려운 이론을 유명인의 실제 사례에 접목하니 더욱 흥미롭게 집중하게 되네요.

『해리포터』의 작가 J.K.롤링은 왜 기부 천사가 되었나?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 된 마틴 루서 킹은 무엇이 평범한 그를 비범하게 만들었을까?

보수적인 공화당원이었다가 진보적인 민주당원이 된 힐러리 클린턴은 차세대 리더일까, 탐욕스러운 권력가일까?

희대의 사기꾼으로 알려진 페르디난드(프레드) 월도 데마라 주니어는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돌아오기를 바랐다고 해요. 뭇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훔친 사기꾼의 비밀은 무엇일까?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자백한 사나이 피터 라일리, 과연 거짓 자백이 가능했던 설득의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평범한 대학생 스티브 하산은 왜 사이비종교(통일교)에 빠졌을까?

인도의 영국인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하인리히 하러는 어떻게 달라이라마와 돈독한 관계가 되었을까?

스물두 살 프리다 칼로와 마흔두 살 디에고 리베라의 전쟁 같은 사랑의 실체는 무엇일까?

유대인들을 살린 일본인 스기하라 지우네의 위대한 희생, 왜 사람들은 타인을 도울까?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과 지금까지 악명 높은 맨슨 패밀리, 무엇이 그들을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었는가?

KKK 단원 C.P.엘리스와 시민권 운동가 앤 애트워터의 놀라운 반전, 그들은 어떻게 진짜 친구가 되었을까?

조직의 치부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들의 최후 - FBI의 콜린 롤리, 엔론의 셰런 왓킨스, 월드컴의 신시아 쿠퍼 - 조직은 왜 그런 형편없는 결정을 내렸을까?

이탈리아와 방글라데시의 상반된 미래, 사회적 딜레마는 왜 생기는가?

마틴 루서 킹, 세기의 연설 뒤에 가려진 이상한 음모 - FBI 국장이 왜 킹 목사에게 그토록 강력한 개인적 공격을 가했을까? 케네디 형제는 왜 후버의 음모에 협조했을까? 킹은 왜 가까운 친구들과 자신을 갈라놓으려는 후버의 계획에 순순히 굴복했을까?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각자 개인적 동기에서 움직인 가운데 어떻게 그토록 어마어마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유명인의 사례는 기본적인 연구 방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줘요. 사회적 행동의 연구 방법은 범죄 수사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요. 수사관이 의문점에 대해 목격자와 면담을 하고, 범행 동기를 찾고, 다양한 용의자를 배제해나고, 증거를 탐색하는 등 일련의 절차를 밟듯이, 사회심리학자는 가설을 세우고 사회적 행동의 근거를 찾는 연구를 하는 거죠. 사회심리학은 심리학의 다른 영역뿐 아니라 여러 기초과학과도 연결된, 통섭의 학문이라고 해요. 또한 인간 탐구, 일상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분야인 것 같아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전공 서적이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사용되는 전문 학술 도서인 셈이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심리학으로 한정 짓기에는 다루는 영역이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회에 대해 궁금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게 바로 사회심리학이다.

게다가 임상 및 상담, 발달, 교육심리학을 비롯해 가장 딱딱하다는 신경심리학과 인지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심리학 연구들을 망라하는 것 또한 사회심리학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 이토록 어려운 일을 그 누구보다도 잘해낸 최고의 적임자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 더글러스 켄릭, 그리고 스티븐 뉴버그.

... 심리학도가 아니라도 늘 곁에 두며 참조하고 곱씹어볼 내용들로 가득찬,

가장 지혜로운 심리학자들이 인류와 사회에 대해 들려주는 과학적인 이야기들이 지금 시작된다.

전공 서적 같다는 선입견만 버리시라. 

그럼 그 열매는 인생에 두고두고 남을 만큼 달콤하고 귀할 것이다."  

      - 아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심리학 교수 김경일, 추천의 글  (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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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 히가시노 게이고 에세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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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입니다.

바나나우유 속에 바나나 대신 바나나향이 들어있듯이, '과학?'이라는 책은 과학 대신 과학이 스며든 현대인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읽어봤지만 에세이는 처음입니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이아몬드 LOOP》와 《책의 여행자》라는 잡지에 연재한 짧은 에세이를 묶은 것이라 합니다.

원래 과학을 소재로 코너를 기획했던 모양인데, 과학자가 아닌 작가이다보니 과학 이야기는 곧 일상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결과물이며 독자로서는 환영할 만한 합니다.

우리와 동떨어진 과학의 세계, 전문적인 과학자의 시선이 아니라서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지식이나 정보를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기술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탐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은 추리소설을 변화시켰는가" 에서는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추리소설의 트릭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전화나 카메라같이 자잘한 물건만 추리소설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교통기관의 발달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근데 정말로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소설 전개 방식이라고 합니다. 추리소설은 보통 소설과는 달리 치밀한 계산 아래 인물들이 움직이는데,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중요 인물이 아깝게 엇갈리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기가 몹시 까다로워졌다는 겁니다. 또한 인터넷 보급으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신종범죄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작가가 현실을 앞질러 소설 속에서 새로운 범죄를 예견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그저 뒤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될 거라고 2003년에 말했는데 벌써 2020년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으니... 지금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엇 때문에?"에서는 소설 취재차 메이지대학교 수학과 마스다 교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줍니다. 저자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수학 관련 강의를 들었고, 늘 궁금했다고 합니다. 수학 연구자들은 왜 수학자가 되려고 한 걸까. 마스다 교수님의 답변은, 어릴 적부터 수학을 좋아했다고, 단지 그뿐이랍니다.

이공계 출신인 저자에게 수학은 어디까지나 전기공학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였지, 그 도구를 직접 만들겠다는 발상은 없었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컴퓨터고 휴대전화고 수학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발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수학 강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교수님이 보기에도 최근 학생들의 학력이 현저하게 저하됐다고 하니, 저자는 왜 국가가 이렇게 수학을 경시하는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수학에서 멀어지는 원인은 그들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을 무엇때문에 공부해야 하는지, 부모나 교사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어떤 인기 연예인은 당당하게 수학은 필요없다고 단언하면서, 더 나아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괴짜라고 놀리고 수학을 싫어하는 자신들이야말로 정상이라고 떠드는 분위기라는 것.

인류가 발전하려면 수학의 진보가 필수적이므로 누군가는 연구해 그 수준을 높여가야 합니다. 

저자의 해법은 수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모두에게 수학을 가르쳐야 걸러낼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똑같은 상황이라서 수학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우리도 수포자라는 말은 없애고 수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공계는 장점인가"에서 저자는 이과 출신 작가라는 점에서 업계의 이질감을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까지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한 모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과학적인 모순이 있는 작품에 대해 지적했는데 뜻밖에도 다른 심사위원은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작품에 과학적인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 나만큼 연연하지 않는다고 느낀 건 이때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작가의 작품 중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을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각본가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답니다. 작가는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서로 절충안을 찾다가 결국 그 장면을 삭제했답니다. 이때 한 가지 교훈을 얻었는데, 과학에 무지한 프로듀서와 각본가는 그 무지함 덕분에 멋진 결말을 구상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과 출신 작가라서 과학이란 틀에 너무 얽매였던 게 아닌가라는 자기 반성이었지만,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의 이과적 경험과 지식 그리고 꼼꼼함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 소설이야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겠지만 추리 소설만큼은 과학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공계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 문학의 꽃을 피워내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가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를 얻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혈액형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걸 싫어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 안 믿는다는 사람들도 속설에 영향을 받는 걸 보면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혈액형 성격 판단을 믿는 친누나에게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누나는 O형이고 매형은 AB형이잖아. 그럼 아이는 A형 아니면 B형이야.

즉 누나 부부는 부모와 성격이 다른 아이밖에 못 낳는다는 소리인데, 그건 이상하지 않아?"

그러자 누나는 전화 너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구나! 요새 아이들 마음을 통 모르겠어서 고민이었거든.

모르는 게 당연하네."

괜한 소리를 했구나 싶어 후회했다.  

     《책의 여행자》2005년 5월호   (194-1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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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보이
가쿠타 미쓰요 지음, 이은숙 옮김 / 하다(HadA)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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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라고 묻는 책.

<마마보이>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세상에 엄마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일까요, 왠지 엄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특권을 가진 사람 같아요.

여덟 편의 이야기 속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듯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파슬리와 온천>의 엄마는 타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악의를 느끼는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에요. 어릴 때 엄마는 레스토랑에서 요리에 곁들여 나온 파슬리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 파슬리는 손님이 남긴 것을 재사용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직 어린 나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파슬리는 먹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어요. 지금 엄마는 병원에 입원 중인데 나에게 자꾸 이상한 이야기를 해요. 온천지 여관에서 아가씨의 춤을 보았다니...엄마의 망상은 어쩌면 접시 위 파슬리와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세상은 나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엄마의 눈으로 본 한 장의 천 같은 것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해졌어요.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은 엄마를 봐 왔기 때문이에요.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지, 사람은 다 악의로 가득 찼다고 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미대에 가지 않고 여대에 진학한 것도, 스물두 살 때부터 8년간 직장을 세 번 옮긴 것도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죽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깨달았어요. 나도 뭔가에 매달리듯이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지금의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없다는 걸. 만일 그런 탓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나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요. 

주인공 나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성격의 엄마가 아니어도, 엄마 손에 자란 사람들은 엄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요. 그가 유독 약해서 엄마에게 끌려간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엄마 앞에서는 약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애증의 관계,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할 수밖에 없죠. 엄마와의 육체적인 연결고리는 태어나는 순간 탯줄이 잘리면서 끝난 것 같지만 정신적인 연결고리는 더욱 견고하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자녀의 입장에서 그 고리를 끊는다는 건 마치 엄청난 배신 같아서 혹은 불안해서 끊어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홀로서기,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면 부모와의 고리를 끊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자녀에게 시시콜콜 모든 걸 간섭하는 부모라면, 그 연결고리는 사랑보다는 집착으로 변질된 것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마마보이와 마마걸이 존재하는 이유겠지요.

엄마의 파슬리와 온천으로 인해 주인공 나는 씁쓸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어요. 자신은 더 이상 엄마 말에 끌려다니는 어린애가 아닌 걸, 비로소 어른이 되는 아픔을 겪게 된 거죠.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는 수많은 엄마들의 모습 중 일부분을 보여주고 있어요.

모성애로 똘똘 뭉친 희생적인 엄마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들 덕분에 오히려 엄마라는 틀을 깨고,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아무도 '엄마'라는 존재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엄마도 한때는 아이였고, 여전히 여자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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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일락
이규진 지음 / 하다(HadA)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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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 작가님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파체> 이후 두 번째 만남이라 반가웠습니다.

이번엔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리게 하는 판타지라서 놀랐습니다.

정말 영화를 보듯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주인공에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여 나만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누구였는지는 비밀!

아마 다들 읽고나면 자신만의 주인공 얼굴을 상상하게 될지도... 누가봐도 첫눈에 반할 만한 미모.

주인공 윤석진은 스물여덟 나이에 죽음을 맞았고, 끝도 없는 시험과 고난의 길을 거쳐 천국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불쑥 블루진을 입은 사내가 다가오더니 자신은 수호천사라면서, 아직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석진이 그동안 있던 곳은 연옥으로, 이십 년 동안 지상에서 지은 죄를 씻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죄가 남았기 때문에 그 죄를 씻기 전에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 남은 죄는, 석진이 자신의 아들을 혼자이게 한 죄라는 것, 그 죄에 대한 보속은 직접 그 아이를 돌봐야 된다는 겁니다.

석진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건 아들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런 몹쓸, 무책임한 남자같으니라고!

천사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대형 모니터가 나타났고, 화면에는 꽃집인 듯한 실내에 소년 하나가 보였습니다. (오호! 하늘에도 첨단기술이~ 이른바 천공기술!)

아, 누구지? 

생의 모든 기억 속에 한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에게 주문한 꽃을 가져다주던 작고 초라한 꽃집 아가씨 라혜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석진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의 아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들의 이름은 라일락.

석진은 꽃집으로 들어가 자신의 아들을 와락 끌어안으며, "안녕, 라일락! 내 아들!"이라고 외쳤습니다.

깜짝 놀란 일락은 석진을 밀쳐냈습니다. 

사실 석진의 외모는 많아봐야 서른 살로 보이는데 다가, 완전 꽃미남이었으니... 일단 일락은 아버지 석진을 닮지 않았다는 점.

만약 아버지와 똑닮았다면 서로 보자마자 알아봤을텐데. 

스무 살이 된 일락은 3년 전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 혼자 꽃집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버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석진이 갑자기 일락의 눈앞에 나타나서 내가 니 애비다, 라고 우기며 같이 살게 되면서 별별 일들이 벌어지는데....

뻔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석진과 일락 이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약간의 미스터리를 포함.

타고난 꽃미남 윤석진은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만 했을뿐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속마음은 그들의 사랑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일락의 엄마 혜진과도 스치는 인연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일락이 태어나기 전에 석진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혜진은 죽을 때까지 첫사랑 석진을 마음에 품고 사랑했습니다. 일락에게는 아빠가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일락은 언젠가 아빠가 찾아올 날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석진에게 아들 일락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아빠가 되어 아들의 진실한 사랑을 받으라는 미션을 준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겪을 일이 없겠지만 (내 수호천사는 어디있는겨?) 석진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삶이 준 기적,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봄날에 핀 라일락... 그 향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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