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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새로운 대중의 탄생>에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면이 소개됩니다.
대중운동을 통해 정권을 무혈로 전복한 이례적인 사례.
바로 2016년 촛불 혁명, 매주 서울 도심 광화문 네거리에 모여 대규모 거리축제의 성격을 띠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도 많이 포함된 시위대는 촛불을 손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평화롭고 민주적인 한국 시위는 성공했습니다.
바그너라는 한 독일 작가는 이때 자신이 받은 인상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자신감 넘치고, 행복해하고, 감동받고 또 매우 결의에 찬 많은 얼굴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사항이 이뤄질 때까지 여기에 앉아 잇고, 여기에 서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다음 주에도 다시 나올 것이다. 그 후에도 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여기서는 시위를 벌여도 되는 자유가 스스로 자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72-73p)
이 책은 새로운 대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과거 대중 이론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대중운동의 발생과 흐름을 대표하는 몇 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1966년의 베를린, 1968년의 파리, 1989년의 라이프치히, 2016년의 서울.
이 대사건에 참가한 사람들은 대중이 형성되는 순간을 자아-강화라는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대중 이론(르봉, 타르드, 프로이트, 카네티)이 새로운 대중운동과 대조해볼 때 얼마나 단면적인지 확인해주는 지표가 됩니다.
똑같이 대중이라는 명칭으로 과거의 현상과 새로운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새로운 대중과 포퓰리즘적 대중은 엄격히 구분이 됩니다.
새로운 대중은 과거의 이론들이 주장하듯이 집단적 주체인 대중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의식 없이 행동하는 대중의 개념은 과감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중 행사에 참가한 주체들, 즉 개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관점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포퓰리즘적 대중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것과 거리를 둔 폐쇄적 대중을 뜻합니다. 오늘날 포퓰리즘이 '국민'이라고 외치는 것은 전체 국민을 대표해서 하는 말이 아니며, 정치적 본질주의와 결합하여 대의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포퓰리즘적 대중은 누가 그 나라의 특권을 받은 본래의 국민인지, 그리고 누가 거기서 배제되는지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퓰리즘의 목표는 진정으로 국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국민에게서 분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대중은 끊임없이 다양한 사회적 접촉을 통해 날마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활동을 하는데, 포퓰리즘은 남들과의 사회적 접촉을 오염처럼 여기며 기피함으로써 상시적인 위급 사태를 일으키고 일상성을 파괴하려 듭니다.
인터넷, 컴퓨터기술,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가상의 대중이 형성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네트워크 가상공간에서 형성되는 대중은 개개인의 활동 범위를 상상도 못할 정도로 넓혀줍니다. 이들 중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고 부릅니다. 가상의 대중은 거리와 광장에서 모이는 실제의 대중보다 조작에 더 쉽게 넘어갑니다.
지난 몇십 년간 일어난 중요한 모든 대중 현상들은 일단 발효 과정이 시작되었다면 더 이상 제지될 수 없습니다. 대중의 권력 체험은 비록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행위자들의 자부심을 강화함으로써 확신과 권력의 느낌을 줍니다. 이 감정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유됩니다. 과거에는 대중의 파괴적인 작용들이 강조되었다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중들은 사회적 구조화 과정에 가담하고 있으며 변화를 이끄는 주축이 되고 있습니다. 대중 속 개인은 동일한 사회적 취향을 다른 개인들과 공유함으로써 문화 대중을 형성합니다.
이렇듯 새로운 대중의 탄생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를 읽었습니다. 과연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발전할 것인지 주목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