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하지 못한 말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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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몰랐어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나 몰랐으니 괜찮다고 넘길 수 없는, 넘어가지 않는 뾰족한 가시들이 있네요.

누구든 꼭 말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삼켜야 했던 순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 용기내어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한다면 꼭 들어야만 해요.

최영미 시인의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읽으면서 다시금 <괴물>이 떠올랐어요.

이런, 시인의 모습을 한 괴물 하나 잡아서 끝날 일이 아니구나.

괴물들이 저렇게 커질 동안 우리는 무얼 했나.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다함께 힘을 합쳐 잡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


사실 이 책은 최영미 시인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신문 잡지 등 매체에 발표했던 글들과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엮어낸 산문집이에요. 첫 번째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이후 순탄치 않았던 시인의 삶.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보였어요. 시인이기 이전에 인간 최영미로서 살기가 만만치 않았겠구나. 

세상의 오해와 편견에 맞서 내 할 말을 하는 사람, 내 길을 가는 사람.

2017년 3월,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개정판이 12년 만에 출간되었는데,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에서 누락된 표현이 있음을 발견하고 속이 쓰렸다고 하네요.

소설 내용은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5·16 반혁명 사건'에 가담해 구속되며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시장에서 빵 가게를 차린 엄마에게 점심 도시락을 나르던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 하경의 70년대, 서울 변두리의 이야기라고 해요. 3년이 지난 지금 2쇄를 찍어 마지막 문장이 원래대로 복원되었을지 궁금하네요. 암튼 속이 쓰렸을 시인을 위하여, 멋진 마지막 문장의 완성을 위하여 누락된 '내겐 더'를 첨부하여 적어볼게요.


생성되고 잊혀지고 다시금 발굴된 과거도 지워지리라.

시간의 모래 위에 새겨진 낙서처럼, 해변의 발자욱처럼 이 밤이 지나면 파도에 씻겨질 것을......

스스로 할퀴었던 칼날을 세상 속에 그만 파묻고 싶다. 

내겐 더 흘릴 피가 없으니까.    
  
 (86p)


'내겐 더'라는 문장의 무게를 느꼈어요. 

언젠가 어느 기업의 연구원과 간부들을 상대로 진행한 강의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대요.


"원칙을 지키는 건 쉬워요. 그냥 (원칙을) 지키면 돼요.

그러나 타협은 어려워요." 

타협하면서도 망가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킬 자신이 있으면 악마하고도 거래하는 게 정치 아닌가.

세상에 내가 타협을 가르치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더 변해야 쓰겠다. 

   _ 2017.06.03   (109p)


절충은 곧 배신이며 타락이고, 원칙을 지키는 게 어렵지 타협은 쉬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젊은 시인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타협을 말하게 되었네요. 한때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추악한 변신을 보면서 나와 다른 진영에도 옳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대요. 

즉 늘 옳은 쪽도 없고, 늘 틀린 쪽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철이 들었다는 말. 백번 공감했어요.

또한 도로시 파커의 시처럼 선과 악이 미친 격자무늬처럼 얽혀 있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때가 있다는 말. 역시 공감했어요.

그러나 결정적 순간이 있어요. 반드시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할 때. 흉터와 무늬를 구분해야 할 때.

다른 건 다 변해도 오직 이것만은, 변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요.

어쩌면 "아무도 못한 말"은, 이미(Already) 했던 말이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던 말이 아니었을까요.

이 시대의 바른 목소리.

들리시나요?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황해문화> , 2017 겨울,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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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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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고 싶어요.

나무와 풀향 가득한 푸르른 길.

4월이 다 가기 전에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야생의 위로>를 읽고나서 더욱 그 마음이 커졌어요.

이 책은 엠마 미첼이 숲과 정원에서 찾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저자는 자신이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날마다 숲속을 산책하는 일이 그 어떤 상담 치료나 의약품 못지않은 치유 효과가 있었다고 해요. 

만약 처음부터 이런 고백이 없었다면 이 책은 사계절 숲에 관한 일기로 봐도 무방했을 거예요.

저자 개인에 관한 일기였다면 힘들고 우울한 마음들이 적혀 있겠지만 숲에 관한 일기는 늘 생생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득한 것 같아요.

참 신비롭게 느껴져요.

저자는 집 대문을 나서 800여 미터를 걸으면 동네 숲 어귀에 이른다고 해요. 솔직히 집 근처에 숲이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인 것 같아요.

우리가 숲을 만나려면 멀리 산을 찾아가야 해요. 요즘은 벚꽃 나들이도 못하는 상황이니 숲길 산책은...

숲을 산책하다가 여러 식물을 관찰하고 꽃과 잎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의 책꽂이에서 찾아낸 책 《영국 식물 컬러 소사전 The Concise British Flora in Colour》덕분이래요. 윌리엄 케블 마틴 목사가 이십 대에 영국의 야생화를 수채화로 그리기 시작해서 이 책을 출간할 때는 여든여덟 살이었다고 해요. 거의 평생을 바쳐 만든 이 아름다운 책 속에는 소형 수채화가 1,400점 이상 담겨 있다네요. 저자는 우울증이 극심한 날이면 《영국 식물 컬러 소사전》의 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원에 나가 있을 때와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고 해요. 어쩐지, <야생의 위로>가 탄생한 이유가 있었네요.

일 년 동안 자신의 집 주변의 숲을 거닐며 관찰한 자연들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 것들이 한 권의 책이 된 거예요.

책 속 사진들 중 숲 속 작은 오솔길을 한참 들여다봤어요. 왠지 저 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숲이 품어내는 싱그럽고 푸른 내음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숲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요.

숲의 마음이 있다면 사계절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는데도 매번 새로운 행복을 느낄 것만 같아요. 

사람의 마음이란 시시때때로 오르락내리락 변하곤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유독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기분 조절이 어려울 때가 종종 있어요. 

숲을 거닌다는 건 변함없이 든든한 숲의 마음을 느끼는 일이에요. 뭔가 안심되고 평화로워져요.

무엇보다도 이 책은 숲이 주는 위로뿐 아니라 저자의 심경이 그대로 나와 있어서 공감할 수 있어요.

완전하지 않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걸 숲이 도와주는 것 같아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교회에서 느꼈어야 마땅하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모든 감정이 자연 속에서는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소설가 앨리스 워커 Alice Walker    (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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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는 과학 -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즘 과학계의 이슈들
다비드 루아프르 외 지음, 이규빈 외 감수 / 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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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시작은 호기심인 것 같아요.

<지금 만나는 과학>은 오늘날 과학계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가장 쟁점이 되는 문제 18개를 소개한 책이에요.

과학계에서 이른바 '열린 문제'라고 일컫는 문제들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라는 점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어요.

저자 역시 물리학 연구자로서 양자 중력을 주제로 연구했다는데, 지금은 응용물리학으로 전향해 과학 대중화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네요.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누군가 풀어낸다면 노벨상은 물론 1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도전 과제라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거죠.

우와, 쉽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인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어요.

일단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내용은 심오하다는 점.


◈ 다섯 번째 문제 : 단백질은 어떻게 자기 모양을 찾을까?

... 단백질은 원자들이 긴 사슬을 형성해서 만들어진 복합 분자로, 각양각색의 단백질이 존재한다.

단백질은 물론 성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인체 내에서 그 모양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어떤 단백질은 뱀처럼 똬리를 튼 모양이고, 다른 단백질은 터널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런데 단백질을 항상 그 모양과 밀전합 연관이 있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단백질의 유일한 구성 성분으로부터 단백질의 기하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생물학자들에게 결국 신약을 개발하고 생물체의 무수히 다양한 구조를 더 잘 이해하는 데 엄청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십 년간 연구하고 관련 분야에서 여러 번 노벨상을 받았는데도 과학계에서는 여전히, 

계속해서 단백질에 관해 온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백질의 기하학? 생물학자들이 골머리를 썩이는 문제다.  (66-68p)


▣ 오늘의 뉴스 :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지도를 완성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미지의 바이러스입니다.

유전정보를 담은 RNA 그리고 그걸 둘러싼 단백질 껍데기로 돼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침투하면, 작은 RNA 조각들을 아주 많이 만들어냅니다.

이 RNA 조각들이 사람의 면역체계를 공격하고, 대량증식에 필요한 단백질들을 만들어냅니다.

... 국내 연구진은 코로나19가 만드는 작은 RNA 조각이 모두 9종류라는 사실과 함께 9종 전체의 유전자를 처음으로 모두 풀어냈습니다.

조각 RNA까지 전부 해독하려면 보통 6개월이 걸리지만 국내 연구진은 3주만에 끝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가이자 계산생물학자의 힘이 컸습니다.  [출처 : MBC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어요.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위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VS 인류 라는 대결구도가 된 것 같아요. 또한 감염병을 비롯한 질병의학과 과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된 것 같아요.

마침 이 책을 읽으면서 다소 어려운 과학 이슈들이 호기심 자극뿐 아니라 좀더 알고 싶다는 지적욕구까지 높여준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생물학자를 도와주는 온라인게임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온라인게임을 통해 단백질 모양을 다양하게 바꿔보며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형태를 찾는 미션을 주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해요.

2011년 <폴드잇>게임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마카크 원숭이에게서 HIV 유형의 면역결핍과 관련 있는 효소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어요.

이 문제는 15년 전부터 미결 상태였는데, 게임 참가자들이 이 문제를 열흘 만에 해결해버린 거예요.

과학의 영역이 과학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영역과 접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굉장히 놀라운 사례인 것 같아요. 과학의 영역을 재미있는 게임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창의적 발상이 돋보였어요. 

지금 과학계의 '열린 문제'들이 해결되려면 젊은 과학자들의 도전 정신 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의 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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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 물과 공기가 빚어낸, 우리가 몰랐던 하늘 위 진짜 세상
아라키 켄타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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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요즘은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 되었어요.

알고 보면, 우리 일상은 참으로 소소해서 그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어요.

바로 하늘 위 구름처럼 늘 거기 있지만 미처 몰랐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어요.

이 책 덕분이에요.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

제목부터 멋지죠?

저자는 기상 전문가이자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 연구원이라고 해요.

전작 《구름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을 집필하면서 연구 대상이던 구름이, 마음을 가진 대상으로 느껴졌다고 해요.

구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좋아져서, 마침내 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설렜어요.


'구름 연구자'가 알려주는 구름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면 흥미롭기는 해도 설레지는 않았을 거예요.

구름을 단순히 바라보고 즐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구름에 관한 정보 혹은 지식은 과학책을 통해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구름을 사랑하기 위한 기술은 이 책에만 나와 있어요.

구름을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더욱 깊이 사랑하려면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어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마음을 널리 확산시키고 싶어서 펜을 들었대요.

재미있어요. 우주와 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무엇보다도 구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구름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구름이 만들어지는 대기 조건은 공기가 주위의 열과 습기의 영향을 받아 팽창하고 압축되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요. 여기에 바람까지 영향을 주면서 일기예보에서 등장하는 기압과 전선이 생겨나면서 구름은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하는 거예요.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은 생긴 사람이 없듯이 구름도 완벽하게 똑같은 구름은 없다고 해요. 시시때때로 늘 변한다는 점에서 오늘 만난 구름은 일생에 오직 한 번뿐인 특별한 구름인 거예요. 

그래서 구름을 사랑하는 기술은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처음엔 아름답고 멋진 구름에 쉽게 반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굉장한 노력이 필요해요. 구름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

괜히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제목 때문에 달달한 에세이로 착각해선 안 돼요.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기상 과학, 그 중 구름에 관한 과학 지식을 담고 있어요.

과학적 흥미와 관심으로 접근해도 좋지만 그보다는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해요.

아무리 구름이 복잡하고 어려운 대상일지라도 사랑한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거든요.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들이 기분 좋아요.


책 속 구름 사진을 보면 완전 멋져서 반할 수밖에 없어요. 신비롭고 아름다운 구름 사진 덕분에 직접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일반적인 구름의 분류 방법은 생김새와 높이, 발생과정 등을 바탕으로 한 '10종 기본 운형'이 있어요. 1956년에 세계 기상 기구가 발행한 국제 구름 도감에서 정의내렸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 기상 관측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10종 기본 운형종으로는 권운, 권적운, 권층운, 고적운, 고층운, 난층운, 층적운, 층운, 적운, 적란운이 있어요. 구름은 그 높이에 따라서도 상층운, 중층운, 하층운으로 분류하며 각각 구름 입자의 상에 따라 수운, 혼합운, 빙운으로 분류한대요. 구름을 구분하려면 각 구름의 특징을 알아야 해요.

기상 관측을 위해서는 운량도 관측 항목 중 하나예요. 운량은 하늘 전체를 10으로 놓고 눈에 보이는 구름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표시하는 거예요. 

한국 기상청에서는 운량을 0.0~10.0으로 표시하며, 강수 현상이나 강수 유무와 관계없이 하루 평균 구름의 양을 따져요. 

0~2는 맑음, 3~5는 구름 조금, 6~8은 구름 많음, 9~10은 흐림이에요.

구름은 우리에게 대기의 상태나 흐름을 가르쳐줘요. 구름의 목소리를 들으면 날씨의 변화를 미리 알 수 있어요. 특히 적란운은 국지적으로 갑자기 발생해 큰 비나 용오름 같은 돌풍, 낙뢰, 우박 등 여러 가지 격심한 기상 현상을 일으킴으로써 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해요. 우리가 적란운의 마음을 읽는다면 위험을 감지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어요. 그밖에도 재해를 불러오는 구름들이 많아요. 

우박은 싸라기눈과 비슷한 성장 메커니즘을 지닌 얼음 알갱이예요. 싸라기눈은 적란운의 내부에서 눈 결정이나 얼음 알갱이가 과냉각 구름방울을 포착해 성장하는데, 강한 상승류가 이 싸라기눈을 융해층보다 상공으로 올려 보내면 표면이 동결되고, 다시 낙하했다가 올라가는 상승 운동을 반복하면서 우박이 되는 거래요. 우박이 그친 후에 우박이 녹기 전에 쪼개서 단면을 보면 몇 번이나 구름 속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알수 있대요. 

사랑이 깊어지려면 일상에서 구름과 자주 만나야 해요. 하늘을 올려다 보며 구름의 목소리를 듣고 하늘의 기분을 읽으면 돼요.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즐겨도 좋아요. 구름과 관련된 재미난 구름 물리 놀이도 책에 소개되어 있어요. 구름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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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시슨 -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6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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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주로 방송국에서 보여주는 외화가 색다른 즐거움을 줬던 기억이 나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이국적인 풍경 속에 외국인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말을 엄청 잘한다는... 물론 더빙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 중에서 <환상특급>은 굉장히 놀라워서 거의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어요.

긴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짧은 에피소드가 여러 개 나오는 옴니버스였는데 각 내용들이 정말 강렬했어요.

기승전결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라 기승전까지만 보여준다고 해야 하나.

직접적으로 결말을 보여주지 않지만 짐작할 수 있어서 소름끼쳤어요.

그래서 두고두고 그 내용들이 뇌리에 남았던 것 같아요. 

장황하게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전부 <환상특급>의 원작자 때문이에요.


리처드 매시슨 Richard Matheson

(1926년 2월 20일 ~ 2013년 6월 23일)


스티븐 킹과 더불어 현대 호러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라고 해요. 

바로 그의 작품들이 1960년대부터 영화와 TV드라마로 확장되면서, 작가 본인이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네요.

『나는 전설이다』는 출간 이후 2007년까지 세 차례나 영화화되었고, 단편들은 드라마 <환상특급>의 에피소드로 각색되었다고 해요.

우와, 리처드 매시슨의 원작이라니... 

그걸 여태껏 몰랐냐고 묻는다면 진짜 할 말이 없네요. 만약 진즉에 알았더라면 당연히 꼭 읽었을 거예요.

SF영화와 호러영화를 즐기면서도 깊이가 부족했네요. (반성모드)

솔직히 스티븐 킹의 작품만 읽었기 때문에 미국 호러 문학의 대가는 스티븐 킹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호러 장르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내 이름을 언급한다.

하지만 리처드 매시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 스티븐 킹    (629p)


휴우,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군요.

<환상특급>의 인기를 생각한다면, 원작자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언급만 있었다면 분명 그 이름을 기억했을 거예요.

마치 무슨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듯이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환호했어요. 이것이 SF 호러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 중 서른여섯 번째 책이에요. 작가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정한 건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아요.

아마도 이 책을 읽고나면 리.처.드.매.시.슨 이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을테니.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뭐, 사실 이미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작품들이라서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피의 아들>이나 <시체의 춤>에서 묘사된 장면들은 짧지만 강렬하게 상황을 압도해요. 아무나 상상할 수 없는 기묘하고도 섬뜩한 설정이라서.

<죄수>에서는 한 죄수가 자신은 존 라일리가 아니라 필립 존슨이라고 주장해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희망이 없어." 그가 말했다. 
"희망이 없어. 아무도 날 믿어 주지 않아. 아무도."
  (282p)


사람이 느끼는 극한 공포는 뭘까요. 

리처드 매시슨이라는 작가는 그 감정의 정체를 정확하게 또한 예리하게 자극하고 있어요.

피를 철철 흘리며 달려드는 좀비나 괴생물체는 일종의 장치일 뿐이지 공포의 본질은 아니에요.

어쩌면 그러한 끔찍한 대상들은 존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감당할 여지가 있어요. 보이는 적이니까.

그러나 철저한 고립, 완벽한 배신으로 혼자가 된다면 어떨까요.

세상에 아무도 날 믿어주지 않는다면...

<죄수>의 경우처럼 죄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죄수가 자신을 라일리가 아닌 필립이라고 믿는다는 게 중요하죠.

<2만 피트 상공의 악몽>의 주인공 윌슨도 죄수와 다르지 않아요. 오직 혼자만 아는 진실은 악몽이에요.

뜬금없지만 근래 TV드라마 <부부의 관계>에서 주인공 지선우가 남편의 불륜보다 더 경악했던 건 자신만 빼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매일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동료,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가짜라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과 공포.

그들 전부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은 곧 나에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인 거니까.

흔히 SF영화나 공포영화에서 무서운 장면들은 대부분 나와는 무관한 설정이기 때문에 좀 놀라긴 해도 소름돋게 무섭지는 않아요.

반면에 평범한 일상을 파고드는 의심 혹은 배신은 엄청난 파급력이 있어요.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훨씬 상상하기 쉬워요.

신기한 건 리처드 매시슨의 단편들은 우리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기괴한 상황인데도 묘하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거예요. 그의 능력이겠죠.

리처드 매시슨이 선사하는 공포는 한 번에 확 터지는 폭탄이 아니라 서서히 퍼져나가는 독가스 같아요. 다 읽고나서도 긴 여운을 남기죠.

절대로 함부로 열지 마세요. 감당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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