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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 - 고딩을 위한 발칙하고 유쾌한 문학 수업
장인수 지음 / 문학세계사 / 2020년 7월
평점 :
레몬을 떠올리면 입 안에 침이 고이듯이.
고등학교 시절의 문학 수업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려요.
교과서 옆에 두꺼운 참고서를 함께 두고 시대별 문학 작품에 대해 달달 외웠거든요.
작품의 이해와 감상은 건너뛰고 작품 해설을 암기했으니...
<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라는 재미난 제목 때문에 시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웬걸, 고딩을 위한 발칙하고 유쾌한 문학 수업이라네요.
저자는 27년간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국어 교사였고,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20년 동안 시동인 '빈터문학회'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고 해요.
교사 시인으로서 교실을 춤추게 하고, 인생을 춤추게 하는 시 수업 여행을 매일 떠나고 있다고, 책 날개에 적혀 있어요.
진짜?
세상에 발칙하고 유쾌한 문학 수업이 존재한다고?
이 책에 나오는 문학 수업은 선생님이 주도하는 게 아니에요. 학생들의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한, 질문에 대한 탐구 활동이에요. 즉 학생들이 주도하는 학생활동 중심의 문학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놀랍게도 책에 나온 내용이 고등학교 교실 현장에서 실제 수업했던 거래요. 학생들이 선생님의 눈치를 안 보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질문이나 생각들을 툭툭 건넬 수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어찌 보면 문학 수업 자체는 특별할 게 없어요. 그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을 뿐이에요.
주입식 교육만 받았던 세대에게 학교 수업은 선생님이 주인이 되는, 선생님만의 시간이었다면 여기 문학 수업은 학생들을 위한 시간이었어요. 일단 언어를 질서에 가두면 발칙한 상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도발적인 언어나 비속어, 은어, 감각적인 언어, 삐딱한 언어를 잠깐이나마 허용했다고 해요. 문학 수업 시간의 일부를 할애하여 학생들의 말문을 트이게 해준 순간, 학생들은 문학으로 노는 방법을 자연히 터득하게 된 거예요.
문득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것으로 1등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부모들이 그토록 바라던 1등...
뜬금없지만, 문학 수업이 즐거울 수 있다면 다른 수업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기력하고 피곤한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학교 교육도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시를 읽을 때 혹시 전율감을 느껴보셨나요? 부르르 떨리는 느낌! 소름 돋는 느낌! 뭉클한 감동!"
"글쎄요."
시를 읽으면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은 학생은 거의 없구나.
아! 학생들의 심장에 꽂히는 시란 어떤 시일까?
"가장 좋은 느낌으로 와 닿았던 시 구절을 다음 시간까지 조사해 와서 발표해 주세요."
...
어떤 학생은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로 이어지는 릴케의 시를 적어 왔다.
... 어떤 학생은 재밌고 유머러스한 개그의 언어를 찾아와 발표했다.
"설마 믿는 순두부에 이빨 빠개지는 일은 없겠지."
"아니, 그게 무슨 샌드위치에서 미나리 나오는 소리?"
"100년 묵은 육포처럼 질긴 고집이구먼."
이런 표현들은 혓바닥을 자극하는 미각 언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식도락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삶의 의미마저 부여했다. 그 맛과 향이 양념처럼 언어 속에 녹아 있다.
"생긴 것이 저화질이라 죄송합니다."
"아주 200만 화소로 꼴값을......"
"그녀를 바로 앞에서 봤다니, 그 시신경을 제가 거액에 삽니다."
"안구야, 힘을 내."
이런 표현들은 시각 언어다. 비주얼 중심 시대는 가상현실이든 증강현실이든 보여주고 보는 것이 정보 교환의 중심이 됐다.
...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문장 찾아와서 발표하기'라는 문학 수업은 결국 위트, 기지, 재치가 넘치는 짜릿한 문장 구사하기 수업으로 확장되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문학 수업의 올바른 방향이었고, 더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지그재그 빼뚤빼둘 샛길로 빠지는 듯하면서도 결국 가장 멋지고 훌륭한 활동을 했다.
(56-6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