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0주년 개정증보판)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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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보다 오늘날 더 의미 있는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출간 10주년 개정증보판이 나왔어요.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이자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개정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 2020년이 도래했다. 우리는 더 똑똑해지지 않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지도 않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우리가 인터넷을 오해했던 이유를 설명해보려 한다. 

사고와 판단의 질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양'은 우리 사고가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뇌의 용량은 무한하지 않다. 인식에서 이해에 이르는 통로는 좁다. 

... 새로운 정보를 평가하는 과정에는 인내심과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인터넷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 나는 인터넷이 인간 지능의 향상과는 거리가 멀고 지능을 더 저하시킨다고 생각한다."

      (6-7p)


근래 책을 읽으면서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느꼈어요. 그저 나이탓으로 여겼는데, 인터넷 때문에 집중력 저하가 온 것이라면?

클릭 클릭! 터치 터치!

인터넷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검색할 수 있고, 수많은 정보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잠깐의 버퍼링도 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해야만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저자는 이와 똑같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가 등장하네요.

인터넷 사용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에 대해 과학은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느냐는 것.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이 대학의 기억노화센터 소장인 개리 스몰은 디지털 미디어의 생리학적, 신경학적 영향에 대해 연구해왔어요. 그의 발견은 인터넷이 뇌의 집중적인 변화를 유발한다는 마이클 머제니치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2008년, 스몰과 두 동료는 인터넷 사용과 함께 사람들의 뇌가 변하고 있음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을 실시했어요. 뇌 스캔 결과, 숙련된 구글 이용자의 뇌 활동이 초보자들에 비해 훨씬 광범위했어요. 인터넷 초보자들도 단지 5일간의 실험으로 외측 전전두엽 피질이 집중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베테랑 인터넷 사용자들의 뇌 활동과 같았어요. 이 연구 결과는 웹 페이지를 읽을 때와 책을 읽을 때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어요.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을 보여준다는 걸 발견했어요. 전전두엽 피질의 실행 기능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 뇌는 훈련될 뿐 아니라 혹사당하게 돼요. 뇌가 혹사당하면 우리는 산만함이 더 산만해짐을 깨닫게 돼요. 실험 결과들은 작업 기억이 한계에 도달할수록 불필요한 정보와 필요한 정보, 소음에서 신호를 구분하는 것이 더 힘들어짐을 보여주고 있어요. 결국 정보에 대해 분별없는 소비자가 되는 거예요. 

웹 사이트는 보통 방문자의 행동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 기록들은 우리가 온라인에 있을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이동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어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웹 사이트 이용자들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 훑는 양상을 보였다고 해요. 읽기에서 인터넷 검색으로의 전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어요. 디지털 미디어의 출현과 디지털 문서의 증가로 인해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을 읽기에 할애하고 있지만 읽기 방식은 확연히 달라졌어요. 점점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훑어보고, 키워드를 찾아내고, 대강 읽고, 비선형적으로 읽는, 스크린에 기반한 읽기 습관이 확산되면서 이와 반대되는 깊이 읽기와 집중해서 읽는 습관은 줄어들고 있어요.

스탠퍼드대학교의 클리포드 나스 교수는 온라인에서 멀티태스킹을 할 때 우리의 뇌는 쓰레기 같은 소리에만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는 우리의 지적인 생활에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입증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뇌는 인터넷으로 인해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달라지고 있는 거예요. 더 산만해지고, 망각에 익숙해지고 있어요. 우리는 인터넷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풍부한 연관 짓기를 희생하는 위협을 감수하고 있어요. 이제는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과 너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만지지 않을 때에도 집중력을 소모하게 하며 우리의 소중한 인지적 자원을 앗아가고 있어요. 이른바 '뇌의 소모'로 일컫는 이러한 현상들이 이미 우리 삶에 침투했다고 볼 수 있어요. 또한 속지 말아야 할 건 온라인에서 찾은 정보가 우리 머릿속에 담긴 지식이 아니라는 거예요. 온라인에서 정보를 모을 때 사람들은 실제보다 자신이 더 똑똑하고 지적이라고 믿게 되는데, 그건 엄청난 착각인 거죠.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지만 실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현 사회의 위기라고 볼 수 있어요. 자신의 지능을 과대평가한다면 기만적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는 행동에 주저함이 없게 되고, 그 결과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세상이 되고 말아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을 뒤엎자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 우리 뇌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제대로 인지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할 차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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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서양미술 인문여행 시리즈 14
샤를 블랑 지음, 정철 옮김, 하진희 감수 / 인문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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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진지해요.

다소 어렵고 낯설다는 편견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술 교육을 통해 그 간극을 줄여볼 수 있어요. 

<교양 서양미술>은 회화 미학의 교양을 위한 책이에요. 프랑스 최고의 미술평론가 샤를 블랑의 서양미술에 관한 친절한 교양 수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는 그 문법을 이해해야 하듯이,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화 문법을 알아야 해요.

이 책은 회화의 문법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설명해주고 있어요.

독립, 설득, 한계, 표현, 숭고함, 구상, 통일서, 원근법, 제스처, 자연, 빛, 명암, 색상, 터치, 다양성, 생명력, 스타일.

열일곱 개의 키워드는 퍼즐 조각과 같아요.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처럼 서양미술 회화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어요.


#1. 독립

 : 회화는 자연의 모든 실재를 수단으로 영혼의 모든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표면 위에서

형태와 색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 회화는 자주 그리고 상당히 오랫동안 '자연의 모방'으로 정의해왔는데, 이러한 정의는 본질에 있어 잘못 인식된 것으로

회화를 단순히 컬러 사진의 역할로 축소시킨 거이었다. 목적이 수단과 혼돈된 것이다.   

... 화가는 형태를 정확히 그림으로써 거리감을 없애버린다. 우리는 이 기분 좋은 허구를 선뜻 인정하고, 

회화라는 것은 현실을 단순히 보는(see) 것이지 눈으로 보는(see with your eyes) 것이 아니며, 

대상을 모방함으로써 영혼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득하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예술이 자연의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처럼

자연이 예술의 주위를 도는 것이다.   (13-19p)


화가는 자신의 감각과 사용하는 재료와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기법들을 구사할 수 있어요. 화가의 위대함은 그가 시도하는 그림의 난이도에 의해 평가되는 건 아니라고 해요. 

다만 예술의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작품에는 열등한 방법과 우월한 방법이 존재하며, 그 방법에 따라 표현되는 대상은 많든 적든 생명력을 부여받는 거예요. 그래서 회화를 생명력의 그림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또한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면, 모습이나 제스처, 표현, 자연 풍경 등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생각에 의해 통제되고 그려진다고 볼 수 있어요. 마치 화가가 일상의 낡은 동전들을 다시 녹이고 두들겨서 보다 순수하고 보다 가치가 높은 다른 주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니 화가의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풍경과 인물도 전혀 다르게 표현되는 거예요. 

인간은 타고난 감각적 반응으로, 즉 질서와 균형, 통일성에 대한 반응으로 초기 예술을 창조했다고 해요. 이 책은 그 회화를 지배하고 있는 원칙을 되찾고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책 맨뒤에 간략한 서양미술사가 설명되어 있고, 책에 수록된 그림 목록이 나와 있어서 깔끔한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마침내 발견한 회화의 문법은 결국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가장 위대한 화가는 자신의 사유(思惟)의 땅으로, 그가 상상한 궁전이나 들판으로 우리를 이끌고, 

거기에서 신들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상적인 형태와 색상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잠시 동안 그가 만든 허구 속에서의 진실의 힘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곳들이 우리가 항상 살고 있는 곳이고, 그러한 궁전들이 우리들 것이며, 그러한 풍경들 속에서

우리가 태어났음을 믿게 만든다. 

그래서 이 언어가 바로 우리의 언어이며, 화가의 천부적 재능으로 만들어진 형태와 색상이 자연 그 자체의 형태이고 색상인 것이다."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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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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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각자의 집에서 자발적 고립 생활을 하고 있어요.

언제쯤 이런 생활이 끝날까,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과연 끝나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곤 해요.

어쩌면 지금의 변화는 단발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지나고보니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주는 장점들이 있더군요. 그걸 먼저 알고 실천했던 사람이 있어요.


『월든 Walden』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에세이예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8세에 월든 호숫가에 다섯 평도 안 되는 작은 오두막을 직접 짓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았어요.

이 책은 2년 2개월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삶을 기록하고 있어요. 오롯이 '나'로 사는 삶, 자연 속에서 '나'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은 뭔가 구도자의 삶과 닮아 보여요.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이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맡에 놓아둔 책이 바로 <월든>이었다고 해요. 법정 스님은 인적 드문 산골 거처에서 <월든>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시대를 초월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저한테 <월든>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삶의 이야기예요.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거든요. 

그러나 소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숲 속 생활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문제라서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그 우물을 뛰쳐나와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듯이, 소로는 문명에 갇힌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자연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어요.

소로는 문명이 가져온 이점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하는지를 밝히면서, 아무 손실 없이 그 모든 이점을 확보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요. 놀라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소로는 1847년 9월 6일 월든 호숫가를 떠났으며, 그의 책 『월든』은 1854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어요.

그리고 2020년 드디어 읽게 되었네요.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책을 읽는 시간 또한 많아진 것 같아요. 월든 호숫가는 아니지만 나만의 오두막에서 소로를 만나면서 삶의 태도를 배웠어요. 자유로운 삶은 멀리 있지 않았네요.



내가 다음 글을, 아니 이 책을 썼을 때 나는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 속에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혼자 살았다.

그곳은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였다. 나는 그때 오로지 내 두 손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내가 그곳에 산 것은 2년 2개월 동안이었다. 지금 나는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있다.

...

대부분의 책에는 일인칭 대명사 '나'를 쓰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계속 쓰일 것이다.

이 점은 자기 본위라는 점에서 볼 때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 

우리는 흔히, 사정이 어떻든 간에 글 속의 화자는 반드시 일인칭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면 나는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범위에 한정시켰다.  

       (8-9p)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보다 싼 생활비로 살기 위해서라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32p)


"단순화하고 단순화하라."  (137p)


퓨리라는 인디언 부족은 "어제, 오늘, 내일을 뜻하는 말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제일 경우에는 뒤쪽을, 내일일 경우는 앞쪽을,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키는 식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데 

내가 바로 그런 식으로 살았던 것이다.  (169p)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구하려고 애쓰지 마라.

헌 옷을 뒤집어쓰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옷은 팔되 생각은 갖고 있어라. 친구가 모자라지 않도록 신께서 보살펴 줄 것이다.

설혹 평생을 거미처럼 다락방 구석에 갇히더라도 생각만 잃지 않는다면 세상은 내게도 똑같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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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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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곧 명상이 되는 시간.

<마음챙김의 시>를 읽으면서 흙탕물 같았던 마음이 잔잔하게 가라앉았어요.

마음이라는 게 비워내겠다고 비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늘 어딘가 찜찜한 구석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어요.

왜 내 마음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나, 답답해 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어요. 흙탕물 같은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는 없다는 걸. 

그저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면 맑은 물이 보인다는 걸.

뒤죽박죽 섞여서 혼탁해지면, 그때는 마음을 챙겨야 할 시간이라는 걸.


류시화 시인이 엮어낸 시집이라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펼치게 된 책이에요.

언제 어떤 책으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류시화 시인이 쓰거나 엮은 책은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같아요.


"날개를 주웠다, 내 날개였다.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 묻는다.

'마음챙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놓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 아름다운 시들을 모았다고 해서 좋은 시집이 되지는 않는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치유 시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이어 

새롭게 소개하는 마음챙김의 시들. 

삶의 무늬를 담은 한 편 한 편의 시가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 책 앞날개... 류시화


오랜만에 친구의 편지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잘 지내니?"

이 말 한 마디만으로 위로가 되는 친구.

"그래, 잘 지내려고 애쓰고 있어. 너는 어때?"


이 책 속에도 그런 시가 있어요. 

문학 강의를 하던 교수 골웨이 키넬은 실연의 상처로 자살을 하겠다며 찾아온 제자에게 시를 써주었고, 이 시를 읽고 난 여학생은 마음을 돌렸대요. 

시의 제목은 <기다려라>예요. 

제자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 무작정 끌어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교수는 한 편의 시로 제자의 마음을 일깨워주었어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내게는 무명의 멕시코 복화술사 조니 웰치가 쓴 <꼭두각시 인형의 고백>이 마음을 깨웠어요.

처음에 이 시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병상에서 쓴 최후의 시로 신문에 게재되었으나 조니 웰치가 자신의 조수인 꼭두각시 인형을 위해 쓴 시라는 것이 밝혀졌대요. 누가 썼다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얼마나 강렬한 마음의 울림을 주느냐, 그것이 시를 빛나게 하는 것이므로.


"... 아이들에게는 날개를 주리라. 

하지만 스스로 나는 법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면서. 

노인들에게는 일깨워 주리라. 

죽음은 노년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망각과 더불어 온다는 것을. ..."   (30p)


마지막 연에서 꼭두각시가 남긴 말이 경종을 울리네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걸 이야기해도 결국에는 쓸모 없어질 거라고.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여행가방 안에 집어넣으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니까. 아무리 유익한 말들도 깨달음 없이는 한낱 소음이 되고 말아요.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깨달음을 준다면 그 문장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우리를 이끌어줄 거예요.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도록.

어쩌면 자신의 날개를 찾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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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렌드
미셸 프란시스 지음, 이진 옮김 / 크로스로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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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들을 끔찍히도 사랑한 죄.

한 남자를 끔찍하게 사랑한 죄.

<걸프렌드>에 등장하는 두 여자는 한 남자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요.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여자친구.

과연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와, 뭔가 숨죽이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어요. 읽는 내내 두 여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신경전 때문에 덩달아 신경이 곤두섰던 것 같아요.

결말에 이르러서야 휴우~ 긴 숨을 내쉬었어요. 드디어 끝났구나.

그리고 프롤로그를 다시 읽었어요. 처음에는 뭔지 몰랐던 것들이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어요. 진실을 모르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장면이에요. 사실이 모든 진실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는 걸, 이 소설은 반전을 통해 알려주네요. 돌이킬 수 없는 사실들이 존재해요. 앞서 언급한 두 여자의 죄.


프롤로그

3월 2일 월요일


난 내 아들을 사랑해. 중요한 건 그것뿐이다. 이제 곧 악랄한 짓을 저지를 참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졌다. 황폐했던 지난 몇 달을 가르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로라는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몇 시간을 고심했지만, 마침내 결심이 섰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7p)


애정 없는 남편과 살면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올인하는 엄마.

똑똑하지만 가난한 탓에 미래가 암울한 여자.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한 이야기예요. 두 여자는 자신의 결핍을 한 남자를 통해 채우려고 했어요. 그게 비극의 시초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스스로 얻어내야지, 남의 것을 뺏어오면 안 되지요. 그건 기생충.

그러나 두 여자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는 있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공감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랑은 집착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건 뒤틀린 사랑이에요.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은 무엇인가. 딱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두 여자의 사랑이 잘못되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걸프렌드>는 뻔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겉으로 봐서는 속마음을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마음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는 것 같아요. 깜쪽같이 속인 것 같아도, 세상에 완벽한 거짓말은 없나봐요.

이 소설의 관건은 두 여자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일이에요. 그 마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당신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사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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