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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평점 :
와, 이건 말도 안 돼요. 너무 기발하잖아요.
방심하다가 훅 한 방 맞은 느낌이랄까.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그들이 뭘 말할지 미리 아는 게 즐거우신가 보네요?"
"넌 상상도 못할 만큼."
(411-412p)
정말 상상 그 이상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우연 제작자들'을 사기 조작단으로 오해했어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비밀 조직인가 싶었어요.
우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니까, 인위적인 우연은 진짜가 아니잖아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가 커피잔을 깨는 바람에 해고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근데 이 우연이 '우연 제작자들'의 치밀한 계획이었다면?
우아하게, 조용하게, 비밀스럽게... 변화를 일으키지만 아무도 그 변화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게, 우연을 만드는 거예요.
가이, 에밀리, 에릭.
세 사람은 3년 전, 우연 제작자 수련 과정 첫날에 처음 만나 열여섯 달 동안 우연 제작자의 역사와 함께 우연 제작 기술을 배웠어요.
이들을 가르친 사람은 자신을 '대장'이라고 소개하면서 우연 제작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줬어요.
"... 우리의 역할은 경계선에 정확히 서는 것이다.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회색지대에 서서, 그곳에서 탁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생각과 결론으로 이어질 상황으로 이어질 상황으로 이어질 상황들을 만든다.
우리의 목표는 경계선 너머의 운명 쪽에서 작은 불꽃을 튀게 하여, 자유의지 쪽에 서 있는 사람이 그 불꽃을 보고 뭔가 하기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 여러분이 과거에 무슨 일을 했을지는 모르나, 여러분은 방금 승진한 것이다. 세상에는 현실 이면의 직업이 다수 존재한다.
상상 속 친구, 꿈 방직공, 행운 유통사...... 그러나 이 과정을 마친 뒤에 여러분이 맡을 역할은 핵심 그 자체를 건드리는 일이다."
이해 됐나요?
우연 제작자가 정말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도 우리가 알아차릴 방법은 없다는 뜻이에요.
주인공 가이는 우연 제작자가 되기 전에는 I.F. 상상 속 친구였어요. 그 시절에 가이는 사람들의 마음속 인물로서 존재했어요. 256명의 인간에게 상상 속 친구 노릇을 해주었는데, 그중 250명이 12세 이하의 어린이였어요. 다른 다섯 사람은 정신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노망이 들어가는 다양한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너무 외로워서, 자신들과 함께 있어줄 누군가를 만들고 그가 존재한다는 걸 그냥 인정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상상을 그만두면, 상상 속 친구의 일은 끝나는 거예요. 가이는 매번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졌어요. 커샌드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 우연 제작자보다 상상 속 친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상상 속 친구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바로 알 수 있었거든요.
"난 사람들이 상상한 내 모습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은 적이 단 한순간도 없어.
이 업계에 오래 있다 보면, 내가 과연 나인지, 사람들이 원하는 존재일 뿐인지 더는 확신할 수가 없으니까.
난 하마터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뻔했어. 현실에서 아무도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아마 난 사실 누군가에게 보일 가치가 없는 거겠지?"
"무슨 소리야? 당연히 넌 보일 가치가 있어."
"우린 내면의 모습을 밖으로 비추기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안으로 흡수하는 경우가 더 많아. 안 그래?"
"나한텐 그런 일도 일어날 뻔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러다가 널 만났어. 구원받은 거야."
(199p)
우연 제작자가 된 가이는 함께 수련했던 에밀리, 에릭과 친구가 되었어요. 수련 과정이 끝난 뒤에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아침을 먹고 있어요. 각자 최근에 작업 중인 우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소한 팁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이들이 어떻게 우연을 만들어내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예요. 이게 다 만들어낸 우연이라고?
아마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길 거예요. 도대체 누가 우연 제작자들을 고용했는가, 그들의 임무는 어떻게 배정되는 걸까.
가이는 첫 사랑 커샌드라를 잊지 못하고, 절친 에밀리는 그런 가이를 혼자 사랑하고 있어요.
우연 제작자들끼리 사랑해도 되나요? 그들도 감정과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건 분명해요. 그래서 그들은 선택을 해요.
와, 정말 놀라워요. 마지막까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네요. 이 소설에 흠뻑 빠진 게 우연은 아니라는 걸 읽어보면 알게 될 거예요.
작가 요아브 블룸의 데뷔작인 《우연 제작자들》은 이스라엘에서 5만 부 넘게 판매되었고, 1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대요.
설마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될 줄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