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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물에 대하여 - 2022 우수환경도서
안드리 스나이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12월
평점 :
<시간과 물에 대하여>는 어떤 책일까요.
제목만 보고 연상되는 것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에요.
이 책이 진짜로 보여주는 건 실로 엄청나서, 다 보고 나면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저자는 처음엔 100세가 되어가는 조부모와의 비공식 인터뷰를 통해 자신만의 기록 보관소를 만들고 있었대요.
그해 여름 생존해 있는 할아버지 세 분과 할머니 두 분의 이야기를 채록했대요.
욘 할아버지는 1919년생, 디사 할머니는 1925년생, 휠다 할머니는 1924년생, 아우르드니 할아버지는 1925년생, 비외르든 할아버지는 1921년생.
이분들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나 대공황이라는 유례없는 전환기를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과 20세기의 가장 굵직한 변화들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세대였어요.
놀랍게도 휠다 할머니와 아우르드니 할아버지 댁의 창고방에서 오래된 16밀리 테이프를 찾아냈고,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여 다시 볼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1956년에 찍은 영상으로 흑백에 무성이었지만 화질은 완벽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강변에 지은 커다란 흰색 주택, 그 집 식탁에 아이들이 얌전하게 앉아 있어요. 할머니가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미소를 띤 채 나타나고, 식탁 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열 살짜리 쌍둥이 자매가 웃으며 촛불을 힘차게 불어 끄고 있어요. 아이슬란드 전통 복장을 입은 증조할머니가 모두를 지켜보고 있어요.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바로 저자의 어머니였어요.
지금은 2018년, 우리는 60년 전과 같은 부엌에 앉아 있다. 어머니는 일흔이 넘었고 할머니는 아흔넷이며 내 막내딸은 열 살이다.
... 나는 딸 휠다 필리피아에게 간단한 산수 문제를 내준다.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지?"
휠다가 재깍 대답한다. "아흔넷."
"좋아, 이번엔 진짜로 더하기를 해볼 거야. 넌 언제 아흔넷이 될까?"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2018년에 더하기 94를 하면 되지?"
"그렇지."
휠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종이에 볼펜을 끄적이다가, "2102년 아냐?"
"맞아, 그때 너도 지금 할머니처럼 활기차길. 어쩌면 바로 이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잇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 있을지도 모르고."
휠다가 우유를 홀짝거리며, "그래, 어쩌면."
"계산 한 번 더.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넷이 될까?"
휠다가 내게 약간의 도움을 받으며 종이에 숫자를 적는다.
"2092년에 태어났으면?"
"그래, 맞아."
"2092년에 94를 더하면... 2186년!"
휠다가 가만 생각하더니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휠다가 입을 오므리고 허공을 쳐다보다가, "이제 가도 돼?"
내가 말한다. "거의 다 됐어. 하나만 더 풀고. 1924년에서 2186년까지 전부 몇 년일까?"
휠다가 셈을 한다.
"262년?"
"상상해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2186년이라니! "
(26-28p)
이토록 길게, 저자가 딸과 나눈 대화를 적은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에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
우리는 단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문이나 책에서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 우리가 지각하고 이해하는 세상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를테면 우리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단어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훨씬 사소한 단어들에는 쉽게 발끈하지요.
'지구온난화'라는 단어에 담긴 의미를 속속들이 감지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와 같은 반응을 일으켜야 해요. 완전히 소스라치게 놀라야 해요.
해수 산성도가 8.1pH에서 7.8pH로 바뀌었다는 경고는 어떤가요?
아마 대부분은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할 거예요. 0.3이라는 숫자의 변화가 굉장히 작게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인간의 혈액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혈액이 감당할 수 있는 산성도 변화는 7.35pH에서 7.45pH 사이예요. 이 수치가 한계를 넘으면 장기 부전이나 사망의 위험이 있어요. 많은 동물 종에게 해수 산성도는 인체 혈액의 산성도만큼 중요해요. 실제로 0.3pH의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이를 묘사하는 표현은 대문자에 볼드체를 적용하고 이모티콘을 스무 개는 붙여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현실은, 0.3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에요.
블랙홀을 본 과학자는 아무도 없지만 블랙홀이 태양의 수백만 배나 되는 질량으로 모든 빛을 모조리 흡수해버린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해양생물학자는 해수 산성화와 바닷새 절멸에 대해 이야기했고, 빙하학자는 빙하 해빙에 대해, 생태학자는 지구 식생 감소와 지하수 수위 하강, 임박한 물 부족의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이들은 숫자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수백만 종의 동물들을, 수백만 년 동안 없었던 가장 빠른 변화를 줄기차게 언급했어요. 하지만 대중들은 어떤 자극이나 흥분 없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과학자들의 예측을 접하고도 지금 당장 급진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이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 돌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할 거예요.
이 책은 바트나예퀴들 빙하, 미국의 할아버지,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느끼게 해줬어요.
우리에게 100년은 막연하게 긴 시간일지 몰라도, 지구의 100년은 그리 길지 않아요. 앞으로 100년에 걸쳐 지구상에 있는 물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예요. 예전에는 수십만 년이 걸리던 변화가 이젠 100년 사이에 일어났고, 이 속도는 너무나 가속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썼어요.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블랙홀에 모조리 흡수되기 전에,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걸, 세상이 빗나갔다면 지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저자는 2020년 6월, 코로나 이후에 쓴 후기에서 이렇게 묻고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삶의 토대가 2050년, 2060년, 2080년에도 무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코로나 위기) 지금처럼 긴급한 조치를 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58p)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 바라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시간을 느낄 수 있지만, 바다가 지난 5000만 년간 달라진 것보다 앞으로 100년간 더 많이 달라질 거라는 걸,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기를.
"결국 우리가 간직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뿐이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뿐이요,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배우는 것뿐이다."
- 귀드뮌뒤르 파울 올라프손 (아이슬란드의 동식물 연구가, 환경 운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