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철학 하기 - 다시 살아가고 배우기 위한 인문학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5
오하시 겐지 지음, 조추용 옮김 / 씽크스마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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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철학 하기>는 다시 살아가고 배우기 위한 인문학책이에요.

저자 오하시 겐지는 현재 일본동아시아시학연구회 부회장이라고 해요.

2018년부터 1년에 3회에 걸쳐 한국과 일본에서 노년철학과 관련된 학자, 연구자, 현장실무자, 언론인 등이 모여서 포럼을 개최했다고 해요.

한국은 청주를 중심으로, 일본은 교토에서 양국의 30여 명이 모인 이 포럼의 목적은, 21세기 세계가 직면한 노인문제를 철학의 관점에서 노년기에 적합한 철학을 모색하기 위함이라고 해요. 

노년철학은 왜 중요한가.

이는 노인문제의 본질과도 맞물려 있어요.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의 부재는 쓸모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노인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해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단계에 이르렀어요. 노년층의 빈곤과 고독사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요.

노인의 세계는 노동과 자녀양육으로부터 벗어나 있어요. 노년기는 의존적인 약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시기예요. 

그렇다면 노년기의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찾아야 해요. 긴 인생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더 잘 살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고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것이 바로 '노년철학 하기"예요.


노년기에 해야 할 일은 철학을 배우는 일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실 인간에게 철학이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있을까요. 이치를 이해하고 깨우칠 나이가 되었다면 그때부터 평생 철학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바쁘게 자신을 소모해가며 살기 때문에 철학의 가치를 잠시 잊었을 뿐이에요.

우리는 하이데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해요. 인간 중심주의의 서양 근대를 부정적으로 본 하이데거는 근대를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존재를 유용성의 척도로 판단하는 일원적인 사회라고 봤어요. 근대 세계의 본질은 게슈텔이에요. 하이데거가 만든 게슈텔이라는 단어는 유용하게 하는 집합을 의미해요. 자연 지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기술이 서양 과학과 합쳐서 물질만능주의로 나타났어요. 유용한 가치에 의하여 쓸모 있는 것이 되어 물건화되는 인간 존재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하이데거는 게슈텔적 세계에서 기술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이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마음이 외부로 향하는 계산적 사유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성찰적 사유를 깨우처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이데거 철학은 선禪 사상과 유사한데, 노장사상과도 닮아 있어요.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으로의 관심을 가능한 한 절반으로, 나머지 절반은 하늘로 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즉 지상의 가치를 넘어선 것에 대한 사색을 뜻해요.

헤겔과 뢰비트의 "하늘을 우러러보라"라는 요청은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성찰하라는 의미예요. 

저자는 현대 일본인, 특히 노인의 불행은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을 잊어버린 것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노인은 약한 존재이나 철학을 통해 더 나은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이는 끊임없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어요. 

<노년철학 하기>는 노인을 위한 책이 아니라 나이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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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는 길 1 친정 가는 길 1
정용연 지음 / 비아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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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는 길>은 정용연 작가님의 역사만화예요.

역사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면 당연히 대중들이 알 만한 위인이 등장할 거라 짐작했겠지만 이 책은 달라요.

어느 양반가에 시집 온 두 여인이 주인공이에요.

조선 시대 여인들의 이야기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 이유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차별과 소외의 역사, 여전히 바뀌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성차별이냐고 말하겠지만 말뿐이지 현실의 변화는 너무도 더딘 것 같아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어떤 여성 연예인이 SNS에 이 책을 언급했다가 악플에 시달렸어요.

영화는 만들어지기도 전에 별점 테러가 시작되었고 영화 제작을 막아달라는 황당한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어요.

그러나 영화가 개봉되고나자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웠어요. 완전 내 이야기라고 공감하는 이들이 다수였고 대부분 눈물을 흘렸어요.

평범한 82년생 김지영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근래에는 웹툰 <며느라기>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어요. 신혼부부가 겪는 좌충우돌 시월드 이야기라는데,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요즘 시대의 며느리가 주인공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며느리의 입장에서 본 현실을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에요. 


자, 2020년의 며느리와 조선 시대의 며느리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친정 가는 길>은 시대를 넘어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자는 역사 이래 수많은 여성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에 맞서 싸웠고, 그런 당찬 여성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해요.

그리하여 탄생한 인물이 바로 송심과 숙영이에요. 

서로 다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1권에서 그려내고 있어요.


"시집간 여인이 일 년 중 하루 말미를 얻어 

시집과 친정 중간 어드메 경치 좋은 곳에서 

친정 엄마를 만나니

이를 '반보기'라 한다."  (7p)


송심은 어렵사리 친정 방문을 하게 되고, 오랜만에 여유를 누리다가 불편한 장면을 보게 됐어요.

그건 자신 때문에 모실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 바빠진 올케의 모습이었어요.

올케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남동생은 빈둥빈둥 놀기만 하는 모습이었어요. 단지 남자란 이유로.

처음엔 불편했던 마음이 서서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자각에 이르고, 송심은 올케가 아닌 숙영으로서 그녀를 바라보게 되는데.

각자 두 여인의 이야기는 1권 후반부에서 돌연 방향을 틀어 시대적 격랑을 예고하네요.


"우리가 여기 서북으로 오게 된 것이 운명이듯

봉기군에 가담하는 것도 운명이지요."

...

"모 아니면 도.

피해갈 수 없다면 부딪쳐야지요."  (229p)


조선의 변방 서북에서 차별을 참다못한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고 숙영은 그 운명에 맞서 싸우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미 역사의 결과는 정해져 있지만 그들이 직접 마주했던 운명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재연되고 있어요.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이야기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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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다르고 어 다르다 - 슬기로운 낱말 공부
김철호 지음 / 돌베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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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아직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책이 있어요.


<언 다르고 어 다르다>는 슬기로운 낱말 공부책이에요.

일단 공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읽어보세요.

고구마 줄기 캐듯이 주렁주렁 우리말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엔 저자를 몰라봤는데, "한국어 공부의 바이블『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시리즈 이후 십년 공부의 결실!"이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알아차렸네요.

그분이셨군요. 어쩐지 첫 장부터 남다르더군요.


"사람의 이름이든 사물의 이름이든, 모든 말에는 역사가 있다.

'말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력한 방법이 된다." (11p)


'의미소'는 가장 작은 의미 단위예요. 여기서 '소(素)'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더 잘게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단위를 가리키는 데 쓰는 말이래요. 기계로 치면 단어는 완성품이고 의미소는 부품인 거죠. 일본사람들이 'word'를 '단어'로 번역했는데, 토박이말로 옮기면 '낱말'이에요. 영어에서 'beer'는 의미소 하나로 된 낱말이아서 더 쪼갤 수 없지만 '맥주'는 '맥' 麥 과 '주' 酒 라는 두 의미소를 나눌 수 있어요.

낱말을 의미소로 쪼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재미가 있어요. 저자의 말처럼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니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양말'을 '양+말'로 가르는 순간 '서양 버선'이 되고, '참외'를 '참+외'로 쪼개면 '좋은 오이'가 튀어나와요.

이렇듯 낱말을 의미소 단위로 쪼개서 들여다보는 공부 방법을, 저자는 '인수분해 학습법'이라 부른대요. 청소년기에 이런 학습법으로 공부하면 엉뚱한 오해를 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 이를테면 무협지를 읽으면서 '발군'을 '손양'의 남자친구쯤으로 여기거나 소설을 읽다가 '고지식한 사람'을 지식이 높은 사람'으로 새기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겠죠.

실제로 티브이 방송을 보다가 놀란 적이 있어요. '고지식'을 지식이 높다는 걸로 해석하더라고요. 설마 진짜 우리말 실력은 아니겠죠?


이 책은 크게 4가지 주제로 나누어 있어요.

몸, 마음과 생각, 모둠살이, 자연.

각 주제별로 낱말을 쪼개고 합쳐가며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어요.

69개 의미소에 딸린 낱말과 표현 3,000여 가지를 새롭게 만날 수 있어요.

줄줄이 알사탕 마냥 하나씩 까먹는 재미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 관계가 있는 낱말들을 한데 묶어놓고 들여다보니 우리말이 가진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네요.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말공부를 하면 할수록 말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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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맛보다, 와인 치즈 빵
이수정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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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치즈 빵>은 인문학으로 맛보는 책이라고 해요.

이 책의 목적은 알고 즐기는 것이에요. 평소에 맛 좋은 와인과 치즈, 빵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책속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질 거예요.

솔직히 와인은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안내서였어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와인을 만들고 관장하는 신이 등장해요. 바로 디오니소스예요.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에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포도 재배를 시작했대요. 어느 날 지하 동굴을 걷다가 실수로 포도가 가득 담긴 함지박을 밟고 지나갔는데, 며칠 뒤 함지박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셨더니 그 맛이 상큼하고 달콤하며 기분도 좋아졌대요. 재미있는 이야기마다 QR코드가 있어서 관련된 그림이나 자료 사진을 볼 수가 있어요. 책을 읽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이미지 정보를 함께 봤더니 이야기와 설명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어요. 

고대 로마인들이 얼마나 와인을 즐겨 마셨는지는 폼페이 유적에서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QR코드로 확인해보니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와인 가게를 알리는 간판과 와인을 담던 암포라 사진이 나왔어요. 당시 인구 2만 명 정도였던 폼페이에 와인 가게가 100개나 있었다고 하니 정말 놀랍네요. 그때 로마 군인을 위해서 포도를 재배한 지역이 지금의 프랑스와 독일이래요. 프랑스 지역에 살던 갈리아인이 포도를 잘 재배하여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면서 프랑스 와인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때요. 중세에는 보르도 공국을 영국으로 가져갔던 엘레오노르 왕비 덕에 프랑스 와인이 영국 왕가의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근세에도 이어졌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인 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게 되었나봐요. 그러는 동안 이탈리아는 어땠을까요?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마신다고 하지 않고 '먹는다'는 표현을 쓴대요. 와인은 빵, 치즈와 함께 매일 먹는 일상 음식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을 특별한 의미로 발전시키거나 상품으로 마케팅할 생각을 못했던 거예요. 오히려 와인을 다양하게 써먹는 프랑스를 비난하고 무시했대요. 하지만 전 세계가 프랑스를 와인 종주국으로 여기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고 이탈리아도 드디어 현대적인 양조법으로 개선하고 와인의 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대요.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1순위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라고 해요. 이탈리아의 주요 와인 생산 지역인 피에몬테의 아스티에서 생산되는데, 여기에서 재배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인 '모스카토 비앙코'로 만든대요. '모스카토 다스티'라는 이름은 '아스티 지역에서 만든 모스카토'라는 뜻이래요.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경매사 조정용은 그의 책 《올 댓 와인 2 : 명작의 비밀》에서 이렇게 말했대요.


"세상에서 가장 갖기를 열망하는 와인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로마네 콩티를 꼽는다."   (60p)


로마네 콩티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돈이 있어도 몇 년 간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최고급 와인이래요. 

우와, 평생 살면서 로마네 콩티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듯 싶네요.

그 맛이 궁금하긴 해도 못 마신다고 해서 크게 아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세상에는 로마네 콩티만큼 맛좋은 와인이 많으니까요.

소설 《로마네 콩티 살인사건》에 나오는 최고의 와인 전문가 벤자민 쿠커의 말처럼, 하루 중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시느냐,라는 주관적인 변수야말로 와인을 평가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와인뿐 아니라 모든 음식에도 해당되는 변수인 것 같아요.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조용한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인과 치즈, 빵을 곁들인다면 이보다 더 황홀한 맛이 또 있을까요.

도란도란 일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와인을 비롯한 치즈, 빵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눈다면... 상상만으로도 즐겁네요.

신화와 문학, 영화와 음악, 역사와 사건에 얽힌 이야기들 덕분에 와인과의 거리감이 확 줄어든 것 같아요. 유쾌하고 즐겁게 인문학 속 와인, 치즈, 빵을 맛볼 수 있었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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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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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에요.

우선 이 소설은 『눈먼 자들의 도시』의 4년 후 이야기예요. 그러니 아직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지 않았다면 먼저 읽어봐야 해요.

솔직히 전작을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터라 『눈뜬 자들의 도시』는 그리 놀랍지 않았어요.

모든 부조리한 상황들이 이상하게 납득이 되었어요. 그건 소설이라기엔 너무 현실적이라서.


불행의 씨앗은 이미 사회 곳곳에 뿌려져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싹을 틔운 건 바로 백지 투표였어요.

선거 개표 결과, 유효표 숫자가 25퍼센트에 미치지 못했어요.

우익정당이 13퍼센트로 1위였고, 중도정당이 9퍼센트, 좌익정당이 2.5퍼센트였어요. 무효표나 기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나머지 표, 그러니까 전체 표의 70퍼센트 이상이 모두 백지였어요. 

혼란과 망연자실, 또 조롱과 경멸의 분위기가 전국을 휩쓸었어요. 나쁜 날씨 외에는 달리 사건이나 동요 없이 치뤄진 선거였는데 백지투표라니!

대통령을 비롯하여 총리와 각부 장관들은 난색을 표했어요. 이것은 테러다! 

언론은 선거에서 불행한 결과가 나온 이후 시민적 분노를 앞세우며 유권자들의 예상치 못한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했어요. 유권자들이 어떤 이상하고 위험스러운 도착 상태에사로잡혀 나라 전체의 이익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대의에 눈을 감아버렸다면서 반역자 내지 미치광이 취급을 했어요. 그러다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자 정부는 그와 관련된 권한을 행사하여 언론을 옹호해줬어요. 표현과 소통의 자유가 엄격히 규제되고 은밀하게 백지투표에 관한 조사가 시작되었어요. 

정부는 몰래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 요원들을 선발하여 비밀정보부를 운영했고, 현장에 투입되어 수많은 용의자를 소환하여 심문했어요. 

백지투표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상황인 거예요.

도대체 왜? 

백지투표라는 미스터리를 정부는 국가적 위기로 받아들였어요. 무정부주의자의 내란?  그래서 단지 백지투표 때문에 계엄령이 떨어지고 도시는 고립되었어요.

총리는 대통령에게 4년 전 사건을 언급했어요. 백색 실명 전염병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었던 사건. 그들은 전염병의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고, 종요히 그 사건을 묻어뒀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백지투표가 전염병이라고 본 거예요. 익명의 고발장에는 4년 전,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부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그리하여 의사 부인은 백지투표의 배후로 지목되었어요. 이에 대한 수사를 맡은 경정은 4년 전,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 중 한 여자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지적했어요.


백지투표, 계엄령이 떨어진 도시, 지하철역의 폭탄.

현재 도시에 벌어진 상황과 4년 전에 눈이 머는 전염병이 퍼지는 기간에 일어난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고.

여자의 증언으로는 의사 부인이 우리 모두를 구해주었다고 했어요. 그냥 구해주기만 한 게 아니라 보호해주고 먹여주고 돌봐줬다고.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의사 부인이 죽였다는 놈은 강간범이었어요. 

경정은 의사 부인을 수사하면서 진실을 목격했어요. 자신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두려웠다.

뭐가요, 우리가 괴물도 아니잖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죄 지은 사람을 찾아내려 하다가 

앞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368p)

 

이 수사의 결론에 대한 책임은 오직 나 혼자만 지는 거야, 당신들은 진실만 말하면 나를 배반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당신들의 진실이 아닌, 진실의 이름으로 나오는 거짓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마.

알겠습니다, 경정님, 경감이 약속했다.

서로 도우라고, 경정이 말했다, 그게 내가 당신들한테 바라는 전부야, 요구하는 전부야.  (369-370p)


『눈뜬 자들의 도시』는 모두가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백지투표는 하나의 상징일 뿐, 권력자들의 우매함을 여실히 드러나게 만들었어요. 안타까운 비극은 눈뜬 자들의 도시가 우리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

결국 그들에게 희생되는... 눈뜬 자들의 눈먼 도시는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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